"열정에 나이는 없습니다" <10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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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에 나이는 없습니다" <1053호>
  • 곽태훈 기자
  • 승인 2019.04.01 0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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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모델 강사 박세련(산디 95) 슈퍼모델의 열정

모델은 ‘젊고, 예쁘고, 멋지고, 몸매가 좋아야한다’는 통념을 깨고 ‘평범하고, 친숙하고, 익숙하지만’, 열정으로 제2의 인생을 여는 시니어모델. 이들은 잡지와 TV광고를 넘나들며 최근 모델 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일례로 지난 3월 주류 브랜드 카스에서 공식 페이스북 계정에 게시한 광고가 있다. 해당 광고에는 김칠두 시니어모델의 사진과 함께 ‘집에서 손주 보셔야죠! 그건 니 생각이고. 런웨이에선 손주들이 날 봐줘!’라는 문구가 어우러져 3천 명이 넘는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시작하고 있는 시니어모델. 박세련(산디 95) 모델은 그들을 양성하는 데 힘쓰고 있다. 명대신문이 지난달 20일에 진행된 시니어모델 수업 현장에서 박세련 모델을 만나 그녀의 열정 가득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디자이너를 꿈꾸던 그녀, 런웨이 위로

그녀는 2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모델로 데뷔했다.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진로였다. “원래는 제가 선택한 전공처럼 제품 디자이너나 인테리어 디자이너를 하고 싶었어요. 대학교 1학년 때 휴학을 할 즈음 제가 키가 크니까 주위에서 모델을해보라는 제안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휴학하는 동안 모델 아르바이트를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모델 학원에 들어가게 됐죠. 그게 지금까지 올 줄은 몰랐어요. 나비효과가 크게 나타난 거죠.” 모델 아카데미에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전문 모델이 될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평범하다’라고 생각하잖아요. 더군다나 저는 지방 출신이거든요. 그러다보니까 더욱 그런 계열의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감히 내가 모델을?’이런 마음 있잖아요. 그래서 모델 학원을 다니기는 하지만 제가 전문 모델이 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죠.”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일이 많이 들어왔어요. 신인이었음에도 잡지 촬영도 많이 하고 패션쇼에도 자주 섰죠. 활발하게 활동하다가 1999년 SBS에서 진행한 슈퍼모델 대회에 나갔는데 거기서 3등을 하고, 바로 다음 해인 2000년도에는 뉴욕국제모델 대회에서 3등을 하기도 했죠. 나름 승승장구 했어요.” 그 바탕에는 디자인에 대한 그녀의 남다른 안목도 뒷받침된 걸로 보인다. “요즘 인기 있는 슈스스(슈퍼스타 스타일리스트) 언니 있잖아요, 한혜연 스타일리스트. 잡지촬영 때 그 언니가 스타일링을 하는데 제가 ‘여기에 이 가방 들어도 돼요? 이 신발 신어도 돼요?’라고 물으면 언니는 ‘어, 너는 네가 선택하는 걸로 해’라고 인정을 해줬어요. 아무래도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한 게 인생 전반에 큰 도움이 됐죠.”

이처럼 신인시절부터 큰 좌절 없이 모델 활동을 지속한 듯 보이지만, 어린 나이에 데뷔했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들도 있었다. “사회 경험이 없는 나이에 모델 일을 하다 보니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어요. 일단 사회생활에서 선후배간 벌어지는 시기와 질투를 처음 겪어보기도 했고 신인 모델이라서 돈을 많이 못 받기도 했어요. 쉽게 말해서 열정 페이, 그런 개념이 많았거든요. 특히 당시에는 관련해서 법도 제대로 없었고, 관행처럼 ‘넌 신인이니까 그냥 해야 해’, ‘네가 내 옷 입는 걸 영광으로 알아야지’, ‘무대 서는 걸로 만족해라’ 그랬었죠. 지금 돌이켜보면 끝까지 독촉전화를 하면서 못 받은 돈을 차곡차곡 챙겼어야 하는데 신인모델 때는 일이 돈보다도 너무 좋으니까 재무관리에는 신경을 못 썼죠. 이러한 신인모델과 디자이너의 관계는 글로벌하게 아직까지도 조금은 남아 있어요. 그런 게 많이 안타까워요.”

승승장구하던 슈퍼모델, 런웨이에서 벗어나며

전문 모델로서 입지를 다져가던 그녀는 20대 중반을 지나 30대로 접어들면서 큰 벽에 부딪친다. 나이가 그녀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제가 30대에 접어들었을 때만 해도 30대 모델들은 거의 다 조용히 은퇴하거나 사라지게 됐어요. 시니어모델을 제외하고 기성의 10대, 20대 모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나이제한이라는 게 있었거든요. 이유는 간단해요.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신선한 이미지를 가지면서도 비용까지 저렴한 어린 친구들이 있는데 굳이 저물기 시작했으면서 애매하게 비싼 모델은 쓰지 않게 되는 거죠. 그렇게 20대 중반을 지나면서 점점 일이 줄어들기 시작했어요. 그때 느꼈던 게 있어요. 사람들이 소위 말해 잘 나갈 때만 찾고 못나가면 버리는구나. 다른 사회생활도 마찬가지겠지만 패션 바닥은 그게 더 심한 거 같아요.”

그렇게 나이가 듦에 따라 10년 넘게 하던 모델 일을 그만두게 되자 막막했다. 모델 쪽만 알고 있었다보니 우선 다른 직업을 구하는 것부터가 녹록지 않았다. “전 그동안 모델 경력이 있으니까 화장품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제품도 많이 써보고 화장품 브랜드에 대해서도 많이 알았기 때문에 쉬울 줄 알았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무지했던 거죠. 거기다가 대학교를 갓 졸업한 사원급도 아니고 나이는 과장급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구인구직 사이트에 제 이력서를 올려놓기도 하고 화장품 회사에 이력서도 넣었는데 뭐, 면접 제의조차도 안 오더라고요.” 그래도 열정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최선을 다했던 그녀는 모델 입시반 강사부터 모델 매니저, 헤드헌터* 치킨 가게 사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일을 경험한다. 하지만 그 어떤 일도 그녀가 모델 일을 하며 얻은 만족감을 주지는 못했다. “예전에는 늘 나를 가꾸고 관리하는 게 일이었는데 모델 은퇴를 하면서 제가 하게 된 일은 나를 버려야하는 일이더라고요. 아예 정반대의 일을 하게 되면서 자아실현이 안 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당시를 회상하면 그게 가장 힘들었죠.” 그렇게 힘든 시기를 보내던 도중 그녀는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고급인력을 필요로 하는 업체에 적정인력을 소개해주는 일을 하는 직업

시니어모델의 선생님으로 런웨이 곁에 다시 서다 
“화장품을 런칭하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어요. 갑자기 전화가 걸려온 거예요. 전화를 받자 ‘시니어모델 교육 사업이 있는데 관심이 있으신가요?’라고 물어보더라고요. 질문을 받는 순간, 무릎을 탁 쳤죠. 아, 이거다. 이 일이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그래서 통화 끝나자마자 바로 회사 대표님 만나 뵙고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기존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했어요.” 현재 시니어모델 강사로 몸담고 있는 제이액터스와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이곳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맞는 옷을 되찾았다. “수업 자체가 바른 자세와 바른 걸음에, 신나는 음악을 듣는 거라서 많은 시니어모델 분들이 더 건강해지시고, 예뻐지시고, 자신감도 많이 찾으세요. 시니어모델 분들은 애초에 훈련을 받으신 분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변화들이 눈에 띄게 드러나요.” 이와 관련해 그녀에게는 잊지 못할 한 제자가 있다. “평소 간이 좋지 않았던 제자 한 분이 저한테 ‘선생님, 저 건강검진 했는데요. 간이 커졌대요.’ 이러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가 했어요. 알고 보니 수업 전에 건강검진을 하고 오신 거였어요. 거기서 간이 커졌다고, 건강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으셨나 봐요. 제 손을 꼭 잡고 ‘선생님 너무 감사해요. 제가 건강해져서’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니 덩달아 저도 기뻤어요.” 이처럼 변화되는 모습을 보며 벅찬 감동을 느낀다는 그녀는 한 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시니어모델 분들은 굉장히 따뜻해요. 맨날 수업이 끝나면 가방 안은 시니어모델 분들이 주신 초콜릿, 떡, 음료수 같은 것들로 가득해요. 이렇게 항상 챙겨주시고 고생했다는 말이라도 한 번 더 건네주세요. 변화된 모습을 보며 느끼는 보람과 따뜻함이 있어 수업을 하고 나면 힘들기보다는 오히려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거 같아요.” 

박세련 모델, 시니어모델을 말하다
지난 2017년부터 2년 여간 시니어모델을 가르쳐 온 그녀는 시니어모델에 대해 전반적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아래는 박세련 모델과의 일문일답이다.

Q. 시니어모델의 주 연령대는 어떻게 되나요?
A. 몇 세부터 몇 세까지라고 딱 정해진 건 없어요. 40대부터 80대까지 계시기도 해요. 저희 학원에서도 제일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모델 분 연세가 74세에요. 그래도 제일 많은 연령대를 말씀드리자면 60대 분들이 가장 많아요. 첫 수업 때 개인소개를 하는데, 어렸을 때 꿈이었는데 집안이 엄격해서 못했다고, 해서 지금이라도, 하루라도 더 늦기 전에 도전해보려고 왔다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Q. 시니어모델만이 갖는 특징에는 어떤 게 있나요?
A. 예를 들면, 연기자 중에서도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 이웃집에서 봄직한 평범한 사람들이 조연으로 인기를 얻는 경우도 있잖아요. 시니어모델도 그런 거 같아요. 엄청 날씬하고, 마르고, 어리다는 게 포인트가 아니라 정말 우리 주변에 있는 엄마아빠 같은 사람, 할머니할아버지 같은 사람. 그런 사람들이 멋지게 워킹을 하면 오히려 평범했던 사람들 마음
이 더 동요될 거 같아요. ‘저 사람도 나와 다르지 않는데 저렇게 무대에 서니까 멋있구나’하는 거 있잖아요. 그래서 시니어모델 분들은 멋진 몸매를 가지는 것보다 각자 인생을 살아 온 스토리가 외모에 자연스레 묻어난다는 게 특징인 거 같아요. 

Q. 최근 국내 모델 업계에 시니어 열풍이 불고 있는 걸 실감하시나요?
A. 현 시점의 큰 트렌드는 광고를 보면 알잖아요. 현재 TV광고 시장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모델이 시니어, 반려동물, 아기들이에요. 그리고 저희 회사에서 운영하는 외부강의만 해도 39개나 돼요. 앞으로도 그 개수가 더 늘어날 예정이고요. 이것만 봐도 시니어모델 분들의 열정이 넘치고 있는 거 같아요. 하지만 열풍인지는 모르겠어요. 아직은 미풍이라고 생각해요.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는 벌써 몇 년 전부터 시니어모델 분들이 많은 활동을 했거든요.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늦은 편이죠. 그래도 관심이 많아지고 있어 그 바람이 더 거세질 거라고 생각해요. 

“열정이 없는 자! 집으로 돌아가라”
수업시간이 다가오자 시니어모델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었다. 인터뷰 막바지에 박세련 모델의 가치관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제가 20대 때 승승장구하던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고 가정하면 제 자신을 돌아보지 못했을 거예요. 교만하거나 이기적이게 됐을 수도 있겠죠. 그런데 조기은퇴를 하면서 여러 가지 직업으로 전향하며 저한테 맞지 않는 일을 하게 되면서 좌절을 많이 했어요. 하지만 끝까지 꿈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로 어떤 일이든 열심히 했어요. 부끄럽지 않게 얘기할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결국에는 저한테 맞는 옷을 입게 됐잖아요. 어쨌거나 인생은 길고 굴곡은 누구에게나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잘될 때에도 너무 자만하지 말고 교만하지 말고 또 시련이나 좌절이 닥치더라도 그때만 이겨내면 언젠가는 봄이 오게 된다는 희망을 가지고 꿈을 버리지 않고 계속 목표의식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녀의 말마따나 그녀는 지금도 목표를 가지고 있다. “항상 수업할 때 하는 얘기가 있어요. ‘SBS 슈퍼모델 대회에서도, 뉴욕국제모델대회에서도 3등을 했을 뿐 아직까지 1등을 한 번도 못해봤다. 이제는 시니어모델 강사로서 세계적으로 1등을 꼭 해보겠다. 그러니 모델 분들께서 많이 도와주셔야한다’는 얘기에요. 그래서 지금 제 목표는 시니어모델 스타 강사가 돼서 많은 시니어 분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좋은 강사가 되는 게 꿈이에요. 그러니까, 시니어모델 강사로 1등하는 거. (웃음).” 그렇다면 혹시 먼 훗날 시니어모델로도 활동할 계획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웃으며 답했다. “뭐, 한 번 모델은 영원한 모델인 거 같은데요?” 인터뷰를 마치고 90분 동안 진행된 수업에서도 그녀의 열정은 계속됐다. 목표를 향해 저벅저벅 발을 내딛는 박세련 모델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학원 문을 나서려는데 문에 붙어 있는 한 문구가 기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열정이 없는 자! 집으로 돌아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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