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예스러움, 뉴트로(NEW-tro) <1052호>
상태바
새로운 예스러움, 뉴트로(NEW-tro) <1052호>
  • 곽태훈 기자
  • 승인 2019.03.17 16: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옛것과 새것 사이에서 얻는 즐거움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에서는 지난해 10월 발간한「트렌드코리아 2019」를 통해 2019년을 이끌 트렌드 중 하나로 ‘뉴트로(New-tro)’를 꼽았다. 뉴트로란 새로움을 뜻하는 ‘New’와 복고를 뜻하는 ‘Retro’가 합쳐진 단어로 단순한 복고를 넘어서 이를 재해석하여 새롭게 즐기는 현상을 의미한다. 특히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뉴트로는 음식 · 예술 ·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 활용되고 있다. 옛것은 촌스럽다는 틀을 깨고 어느덧 20대의 문화로 자리한 뉴트로. 본지와 함께 새로운 옛것의 즐거움에 빠져보자.

 

복고에서 느끼는 새로움, 20대를 사로잡다.

“현대식 가게이면서도 외적으로는 요즘에 잘 볼 수 없는 옛날 건물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게 신기했다” 얼마 전 친구와 익선동 한옥거리를 방문한 25세 이연정 씨는 익선동 한옥거리의 첫 느낌을 이와 같이 설명했다. 이연정 씨가 방문한 익선동 일대는 낡은 건물들을 현대식 감성에 맞게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으로 1980년대 지어진 ‘그린필드’라는 여관을 리모델링한 부티크 호텔 ‘낙원장’과 1979년 지어진 ‘쎄느장 여관’의 기존 건축 양식을 그대로 살려 카페와 복합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시킨 ‘호텔 세느장’이 있다.

▲ ‘호텔 세느장’의 측면(좌) 및 정면(우) 사진이다.

 

 

이처럼 과거의 건축양식을 바탕으로 현대식 서비스를 제공해 익선동 일대는 옛날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현대 장소로 여겨진다. 옛날 감성을 몸소 느끼기 위해 개화기 의상을 대여해 입고 익선동 곳곳을 누볐다는 이연정 씨는 “건물양식, 패션, 소품 등이 특히 지금 세대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것들이라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익선동에 방문했을 당시에도 또래로 보이는 청년들이 상당히 많았다”고 전했다.

옛것을 단순히 체험하는 것을 넘어 일상적인 취미로 삼고 있는 20대 청년도 있다. 가톨릭대학교 자연과학부 화학전공에 4학년으로 재학 중인 이지현 학생은 여행이나 전시회 등을 갈 때 항상 챙기는 게 있다. 바로 필름카메라다.

▲ 이지현 학생이 사용하는 필름카메라인 신도리코 FF-9D 제품이다. 해당 제품은 1988년 3월 출시됐다.

필름카메라로 사진 찍는 것을 취미로 삼고 있는 이지현 학생은 개인 SNS 계정에 본인이 찍은 필름 사진을 주기적으로 게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취미를 통해 느끼는 즐거움에 대해 이지현 학생은 “즉각적으로 사진을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카메라와 달리 필름카메라는 필름을 넣는 순간부터 사진을 찍고 필름을 현상하고 현상된 사진을 받기까지 모든 게 기다림이다. 또한, 한 번 셔터를 누르면 수정이 불가능하고 필름을 현상하기 전까지는 곧바로 찍은 사진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 컷 한 컷 신중하게 애정을 담아 찍게 되고 그 과정에서 얻는 설렘이 있다. 필름카메라의 이러한 특징들이 디지털카메라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매력이다”고 전했다. 

레트로? 뉴트로!

앞서 제시한 사례들의 공통점은 20대들이 기존에 경험해보지 못했던 옛것을 체험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감성을 느꼈다는 점이다. 이는 레트로(Retro)라고 불리는 복고 열풍의 한 예라고 볼 수 있지만 '익숙하지 않은 옛것에서 느낀 새로운 감성'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으면 레트로보다는 뉴트로(New-tro)에 가깝다.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유행하는 뉴트로는 레트로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개념으로, 레트로가 과거를 그대로 재현한 것인 반면에 뉴트로는 과거의 것에 현대적인 재해석이 들어간다는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구분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영향을 주고받는 주요 대상이 다르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레트로는 기성세대로 불리는 40~50대 이상 중장년층에게, 뉴트로는 밀레니얼 세대에 해당하는 10~20대 청년층에게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같은 복고 제품을 경험하더라도 중장년층이 이를 통해 향수를 느낀다면 레트로, 청년층이 새로움을 느낀다면 뉴트로인 것이다. 상명대학교 경제금융학부 이준영 교수(이하 이 교수)는 이러한 차이점에 대해 “과거에 레트로는 기성세대들에게는 일종의 노스탤지어로 다가와 추억하고 회상하며 힐링받고 위로받는 느낌이라면 뉴트로는 젊은 세대들이 옛날 아이템이나 복고 콘텐츠를 보며 새롭고 신선하게 느끼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5월 23일, 리빙잡지 ‘강남인류’가 SM C&C의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를 통해 20~50대 성인 남녀 400명에게 뉴트로 트렌드에 대한 인식 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71.7%가 복고풍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20대의 경우 30~50대와 달리 호감의 이유로 ‘신기함’을 꼽은 것으로 나타났다. 

메가트렌드가 된 뉴트로

이 교수는 뉴트로의 전망에 대해 “뉴트로는 하이테크, 디지털 시대에서 오히려 아날로그적인 감성, 인간적인 매력을 내세움으로써 일종의 메인스트림에 반하는 카운터트렌드로 강하게 자리할 것이다. 때문에 기업들도 뉴트로에 관심을 갖고 마케팅이나 제품 출시에 이를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자제품 △주방식기 △외식산업 △식품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뉴트로 감성을 내세운 제품들이 주목 받고 있다. 온라인 쇼핑업체 ‘G마켓’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레코드판(LP)과 턴테이블의 국내 판매량이 전년 대비 286%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식산업에서도 뉴트로는 빠지지 않는 트렌드로 여겨진다. 지난해 12월 열린 ‘2019 외식소비 트렌드 발표대회’에서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20명의 전문가 인터뷰 및 3,000명의 소비자 설문에 기반해 2019년을 이끌 외식 트렌드 중 하나로 ‘뉴트로 감성’을 꼽기도 했다. <말죽거리 잔혹사>, <응답하라 1988> 등 1970~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볼 수 있던 녹색 플라스틱 그릇이나 ‘서울우유’, ‘콜드’ 같은 옛날 제품 로고와 이름이 크게 박힌 유리컵 등이 유명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매매되기도 하며 이를 활용한 외식업체들도 유명세를 얻고 있다. 녹색 플라스틱 그릇을 이용해 과거 분식집 감성을 내세운 ‘도산분식’이나 ‘남도분식’의 경우 인스타그램에서 관련된 해시태그 게시물이 10만 건을 넘을 정도다. 남도분식의 김명숙 실장은 “1970년대, 1980년대 남도의 분위기를 살리고자 일부러 옛날 소품을 사용했다”며 “실제로 가게를 방문하신 손님들이 옛날 식기를 보고 많이 재미있어하고 좋아한다”고 전했다.

▲ 익선동 한옥거리에 위치한 ‘남도분식’에서 사용 중인 식기다.

식품 분야에서는 뉴트로 열풍에 힘입어 단종된 제품들이 재출시되기도 한다. SPC삼립은 지난달 27일, 각각 1984년과 1989년에 출시됐다가 단종된 ‘우카빵’과 ‘떡방아빵’을, 농심에서는 지난달 1982년 출시했다가 명맥이 끊긴 ‘해피라면’을 초기 출시 당시의 디자인을 살려 재출시했다. 이와 관련해 농심 홍보팀 관계자는 “해피라면은 2019년 10대 트렌드 중 하나인 뉴트로 트렌드에 맞춰서 출시한 제품이다. 해당 제품이 완전히 떴다고 할 수는 없지만 새로 출시한 제품 치고는 나쁘지 않은 판매량을 기록 중이다”고 밝혔다. 

◀ 지난달 농심에서 재출시한 해피라면 제품 사진이다.

이처럼 광범위한 산업분야에서 메가트렌드가 된 뉴트로가 갖는 의의에 대해 이 교수는 “뉴트로 콘텐츠를 통해 세대가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가교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고고 19XX!

뉴트로 열풍을 몸소 느껴보고자 지난 9일과 12일 양일간 일명 ‘뉴트로 성지’라 불리는 익선동 한옥거리와 을지로 일대를 본지 기자가 직접 방문했다. 아래 내용은 그 생생한 후기다. 본지 기자의 눈을 따라 뉴트로 감성을 만끽해보기 바란다. 

 

종로3가역 4번 출구를 나오자마자 ‘쎄느장’이라고 적힌 옛날 풍의 간판이 눈에 띈다. 해당 간판을 지나 본격적으로 익선동 한옥거리에 진입하자 골목길이 나타난다. 골목 양 옆으로는 한옥양식의 건물들과 ‘동백양과점’, ‘르블란서’와 같은 옛 느낌의 가게들이 즐비하고 그 앞을 청년들이 가득 메운다. 간혹 개화기 의상을 입은 청년들이 지나가기도 한다. 마치 영화 <모던 보이>의 한 장면이 연상되는 분위기다. 

조금 더 걸어가니 오락실이 나온다. 문 앞에는 ‘#16비트’, ‘#콤퓨타게임’, ‘#추억의오락실’과 같은 글자들이 굵은 글씨로 적혀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전자오락기가 빼곡하게 붙어있다. 오락실 천장에 달려 있는 스피커에서는 박기영, 박광현, 조성모 등 1990년대 인기를 끌던 가수들의 노래와 게임하는 소리가 섞여 소란스럽다. 최신 컴퓨터게임을 하기 위해 가는 PC방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다. PC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얇은 LCD 모니터와 현란한 키보드 대신 툭 튀어나온 CRT 모니터와 조이스틱만 존재한다. 오락기 위에 조그맣게 붙어 있는 종이에는 각 오락기에서 할 수 있는 게임이 적혀 있다. 1986년 출시된 ‘보글보글’, 1994년 출시된 ‘스노우 브라더스’ 등 대부분이 1980년대와 1990년대를 대표하는 전자오락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된 게임들이지만 그 앞을 오가며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교복 입은 학생부터 대학교 학과 점퍼를 
입은 청년 등 젊은 사람들이 대다수다. 이 같은 오락실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박석모(디미 14) 학우는 “옛날 게임임에도 너무 재미있었고, 동전을 넣고 조이스틱으로 게임을 하는 게 아날로그적이지만 뭔가 더 생생하고 조작감이 사는 것 같다”고 전했다.

오락실을 나와서는 소란스러운 익선동을 뒤로하고 을지로로 향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개화기 감성을 살린 뉴트로 카페 ‘커피한약방’이다. 뉴트로 열풍이 일기 한참 전인 2012년 개업해 최근에는 을지로에서 뉴트로를 대표하는 카페가 됐다. 그 명성에 걸맞게 들어서자마자 주문대 전체를 장식하고 있는 자개장이 보인다. 카페는 만석일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었다. 이 같은 인기에 대해 커피한약방 박용범 이사는 “가게를 처음 오픈할 때만 해도 자개가 길거리에 많이 버려져있었다. 그게 너무 아쉬워 자개 활용을 가장 많이 했는데, 이 부분이 특히 젊은 층한테 신선하게 다가왔던 것 같고 동시에 연배가 많은 분들도 공감할 수 있게 했던 것 같다”며 “뉴트로가 성행하는 게 옛것이 버려지지 않고 재조명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현상인 것 같다”고 전했다.

 

 

 을지로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평균율’이라는 LP바. 들어서자마자 한쪽 벽면에 가득 수납돼있는 LP판이 시선을 잡는다. 그 앞에는 두 대의 턴테이블이 번갈아 돌아가며 재즈 음악을 송출한다. 고음질의 스트리밍 음원에서는 듣기 어려운 ‘지지직’거리는 저음질의 소리가 이따금씩 들린다. 주문을 받는 직원 뒤 벽면에는 이름 모를 서부 영화의 옛날 포스터가 붙어 있다. 커피를 주문하고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니 옛날 영화 포스터와 LP 음반 표지 등이 드문드문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들을 유심히 찾아보는 사이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 그와 동시에 노래가 끝나가자 직원은 능숙하게 턴테이블의 재생바늘을 들어 다음 LP판으로 갈아 끼운다. 노래가 안 끊기도록 재빠른 손놀림으로 갈아 끼운 LP판에서는 부기우기 스타일의 음악이 나왔다. 흥겨운 리듬을 뒤로한 채 커피를 받아들고 바 문을 나섰다. 바 문이 닫히자 ‘지지직’ 소리도 같이 닫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