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ㆍ19 혁명을 되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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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ㆍ19 혁명을 되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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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0.06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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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ㆍ19 혁명을 되새기자

 

1960년 4월 19일은 피의 화요일이라고 불리는 4ㆍ19 혁명이 일어난 날이다. 이날 전국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사명감에 가득 찬 학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4ㆍ19 혁명은 부패한 독재 정권에 대한 반정부 항쟁인 동시에 오로지 학생이 주체가 된 민주적 운동이다. 이로 인해 긴 독재 정권은 끝났으나, 186명이 목숨을 잃었고 6천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그럼에도 4ㆍ19 혁명은 한때 4ㆍ19 의거 등으로 불리며 제 대접을 정당하게 받을 수 없었다.
4ㆍ19 혁명은 정권을 바꾸는 데 성공했지만 정치와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  한 채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새 49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지난날 선혈로 쓴 이 거룩한 사실도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먼 과거의 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특히, 직접 겪어 보거나 들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바라보는 대학생들의 시각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기억 속에서 지워지게 되었다. 아직도 일부 대학생들은 4ㆍ19 혁명의 의의를 높이 평가해 그들의 기본 정신을 계승하고, 4ㆍ19 혁명 추모 기간 즈음 ‘4ㆍ19 정신 계승 달리기’, ‘4ㆍ19 기념 걷기대회’ 등의 행사를 도처에서 하고 있다. 그러나 현 대학생 다수는 4ㆍ19 혁명을 무관심으로 일관하거나 낡은 시대정신에 하나라고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러나 우습게도 당시와 50여 년이 지난 지금을 비교해 보면 크게 변한 바가 없는데, 대학생들의 시각은 너무나 달라졌다. 1960년 전후 당시 우리나라는 물가 상승, 조세 부담, 경제 위기 등으로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고조된 상태였다. 또, 대학을 졸업한 실업자가 계속 늘어나는 추세였고, 학생운동과 노동 운동 등에 대한 탄압도 끊이질 않았던 시기였다. 한 마디로 부정(不正)이 판을 치던 시대였다.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당시를 살아가던 많은 대학생은 정치와 사회 구조를 바꾸려고 무던히 노력하였다. 그러나 지금 대학생은 어떤가. 이와 같은 현상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는지 모르나 씁쓸하기 그지없다.
모든 혁명은 처참한 희생이 뒷받침되어 일어났다. 4ㆍ19 혁명은 당시를 살아가던 정의감에 불타는 학생들이 희생을 아끼지 않고 이 땅의 대학생에게 남겨준 잊지 말아야 할 메시지이다. 4ㆍ19 혁명의 희생된 많은 자의 혼을 추모하기 위해서라도 4ㆍ19 혁명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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