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의 호찌민 -1- <10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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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의 호찌민 -1- <1052호>
  •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3.17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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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노이 바딘 광장
지난 2월 28일에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었다. 3월 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베트남의 국부(國父) 호찌민(1890∽1969) 묘에 헌화했다. 하노이 바딘 광장은 두 가지 모습이다. 하나는 정부수립 선언, 또 하나는 호찌민 영묘(靈廟). 1945년 9월 2일 호찌민은 50만 명 앞에서 ‘베트남 민주공화국 임시정부’ 수립을 선언했다. 

“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이들은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생존, 자유, 행복의 추구권이 그러한 권리이다’ 이 불멸의 선언은 1776년 미국 독립선언문에 나오는 문구입니다.”

이렇게 연설을 시작한 호찌민은 프랑스와 일본의 지배를 이야기하고 베트남은 자유와 독립을 누릴 권리가 있고 베트남 인민은 이를 수호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역설했다. 
호찌민은 프랑스 식민지 치하에 유학자(儒學者)의 아들로 태어났다. 18세에 그는 조세 반대 시위를 하다가 퇴학당했다. 21세인 1911년에 호찌민은 외국 배에 올라 요리사 보조 일을 하며 프랑스로 건너갔다. 이후 각종 잡일을 하면서 인도 · 사우디아라비아 · 미국 · 영국 등을 일주하고 지피지기(知彼知己: 상대를 알고 나를 알다)를 배웠다. 

1919년에 호찌민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고무되어 프랑스에서 ‘베트남 애국자 연합’을 결성하고 「베트남 민족의 요구」 글을 발표했다. 이후 호찌민은 주목받기 시작했다. 1930년에 호찌민은 홍콩에서 베트남공산당을 창당했고, 1941년에 베트남에 돌아와 ‘베트남독립동맹’을 결성했고 투옥되기도 했다. 


# 중국의 똥이냐, 프랑스의 똥 냄새냐
임시정부 수립을 선언했지만 베트남 독립의 길은 멀었다. 1945년 7월 미 · 영 · 소 3개국 정상은 포츠담 회담에서 베트남 16도 이북은 중국군이, 16도 이남은 영국군이 주둔토록 하고 향후 치안이 안정되면 베트남 주권을 프랑스에게 다시 돌려준다고 결의했다. 어이없었다. 8월 하순부터 북베트남에 중국군이, 남베트남에 영국군이 들어왔다. 그런데 중국군은 약탈을 일삼았고, 영국군은 감옥에 갇힌 프랑스 군인을 풀어주었다. 

호찌민은 북베트남이라도 독립정부를 만들기로 했다. 무엇보다도 중국이 큰 걸림돌이었다. 호찌민은 중국을 몰아내기 위하여 프랑스와 협상하였다. 호찌민은 프랑스에게 경제적 이익을 양보하는 대신에 프랑스 군대가 중국군을 몰아내고 베트남의 독립을 인정해 주는 전략을 택했다. 프랑스측은 중국군을 몰아내는 것은 동의했지만 독립은 ‘NO’였다. 협상은 6개월이나 진행되었다. 그러나 양측은 접점을 찾지 못했다. 이러자 일부 강경파들은 프랑스와 당장 싸우자고 주장했다. 호찌민은 지금은 세력이 약하니 냉정을 호소했다. 

“중국이 주둔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요? 중국은 우리나라를 1천 년 간 지배했소. 하지
만 프랑스는 잠깐 있다가 떠날 것이요. 평생 중국인의 똥을 먹는 것보다 프랑스인의 똥 냄새를 잠시 맡는 게 낫소.” 


1946년 3월 6일에 호찌민은 합의안에 서명했다. 호찌민은 ‘독립’이라는 문구를 포기하는 대신 ‘베트남의 자치원칙을 프랑스가 인정할 것’이라는 조항을 넣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또한 북베트남에서 프랑스군의 주둔을 허용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였다. 
다음날 아침에 합의 소식이 신문에 실리자, 일부 시민들은 분노했다. 심지어 호찌민을 반역자라고 불렀다. 사태가 심각하자, 당 지도부는 성난 군중 설득에 나섰다. 국방장관 지압이 합의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나서 호찌민이 연설했다. 

“우리나라는 1945년 8월에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강대국 중 어느 나라도 우리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프랑스와의 합의는 우리가 국제무대에서 입지를 강화하는 길이 될 것입니다. 합의서대로 1만 5천 명의 프랑스군이 5년간 주둔하고 베트남에서 철수 할 것입니다. 5년 안에 독립을 달성할 수 있는데 왜 100만 명의 목숨을 희생시켜야 합니까? 우리는 냉정을 유지하고 단결을 강화해야 합니다.” 

연설 끝에 호찌민은 단호한 어조로 베트남 국민에게 약속했다. 


“나 호찌민은 평생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여러분과 함께 싸워 왔습니다. 나는 조국을 배반
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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