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의 인물들 <1051호, 개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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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인물들 <1051호, 개강호>
  •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3.03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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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나 화폐의 인물은 그 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 미국은 1달러의 워싱턴 초대 대통령, 2달러의 제퍼슨 대통령, 5달러의 링컨 대통령을 비롯한 10달러의 해밀턴 초대 재무장관 100달러의 프랭클린 같은 ‘건국 아버지(Founding Father)’가 지폐의 얼굴이다. 

영국은 모든 지폐에 엘리자베스 여왕, 중국과 베트남은 국부 모택동과 호찌민 일색이다. 일본은 1천 엔에 세균학자 노구치 히데요, 5천 엔은 폐결핵으로 24세에 요절한 여류 소설가 히구치 이치요, 1만 엔은 계몽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가 있다. 이들은 일본이 대국굴기를 이룬 메이지 시대(1868-1912)의 인물이다. 

우리나라 화폐엔 5명의 인물이 나온다. 100원짜리 동전에는 이순신 장군(1545~1598), 천 원 지폐는 퇴계 이황(1501~1570), 오천 원은 율곡 이이(1536~1584), 만 원은 세종대왕(1397~1450), 오만 원은 신사임당(1504~1551)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먼저 만 원의 세종대왕부터 살펴보자. 지폐 
앞면에는 세종대왕과 일월오봉도 · 용비어천가가 디자인 되어 있고, 뒷면에는 혼천의가 보인다.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 과학기술 개발, 4군 6진 개척, 대마도 정벌 등 조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임금이었다. 
눈여겨볼 것은 용비어천가가 한글로 적혀 있는 점이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라매 아니 그츨쌔,”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꽃 좋고 열매도 많으니,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마르지 않으니)

더구나 세종대왕은 백성을 소중히 여긴 군주였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民本)이니, 근본이 튼튼해야 나라가 평안하게 된다.” 
다음은 100원짜리 동전의 인물 이순신 장군이다. 이순신은 1970년 11월 100원 동전에 처음 
등장한 이후 1973년 9월에 500원 지폐의 인물이 됐다. 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이순신과 
거북선이 그려진 50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며 그리스 선주를 설득하여 울산의 허허벌판에 조
선소를 지은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그런데 1982년에 500원이 동전으로 바뀌면서 이순신의 500원 지폐는 사라졌고, 이순신은 다시 100원 동전 인물이 되었다. 일부 네티즌은 이순신 장군을 100원 동전 뒷면에 흐릿한 문관 모습으로 한 것은 ‘구국(救國)의 영웅’ 대접이 아니라고 불만을 표시한다. 
한편 천 원 지폐에는 퇴계 이황과 명륜당 그리고 매화가 그려져 있다. 동방의 주자 이황은 성균관 대사성(국립대학교 총장)을 하였고 매화를 무척 사랑한 유학자였다. 그가 죽던 날 아침에 남긴 말은 “화분의 매화에 물을 주라”였다. 또한 임진왜란 때 퇴계의 저서들은 약탈당했는데 일본 식자층이 탐독하여 에도 막부의 사상적 원류가 되었다. 
오천 원 지폐엔 율곡 이이와 오죽헌, 오죽이 그려져 있다. 강릉 오죽헌은 신사임당이 율곡을 낳은 곳이다. 신사임당은 2009년에 발행된 오만 원 권의 인물인데 모자(母子)가 화폐인물인 나라는 한국이 유일(唯一)하다. 본명이 신인선인 신사임당은 현모양처(賢母良妻)의 상징으로 시서화(詩書畵)에 능한 예술가였다. 하지만 신사임당은 현모이지만 양처는 아니었던 같다. 유교사회에서 남편에게 순종만 하지 않았다.
특이한 것은 조선을 대표하는 유학자 이황과 이이는 영남학파와 기호학파의 종장(宗匠)이라는 점이다. 퇴계의 영남학파는 동인(나중에 남인), 율곡의 기호학파는 서인(나중에 노론)으로 당쟁을 하였다. 한 가지 곁들이면 세종대왕(본명은 이도) · 이황 · 이이 · 이순신이 모두 이씨(李氏)이다. 
그런데 한국의 화폐인물이 모두 조선 전기(前期)의 인물이란 점은 약점이다. 정조, 다산 정약용, 안용복, 안중근, 윤동주, 안창호, 유관순, 한용운, 김구(십만 원 권 인물로 선정되었지만 미 발행), 윤봉길, 신채호 등 존경받을 만한 인물이 얼마나 많은가? 
일본이 2004년에 화폐인물을 대폭 교체 했듯이 대한민국도 정체성 확립을 위해 화폐인물을 바꿀 때가 되었다. 더구나 금년은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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