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취재를 끝내고 라디오를 들으며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는데, 어느 대목에서 라디오 진행자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여러분은 고민과 걱정을 구분할 수 있나요?” 엄연히 다른 두 단어임에도 구분할 수 없음에 필자는 적잖이 당황했다. 이어진 다음 질문은 “이것을 할지, 저것을 할지 생각하는 것은 고민일까요, 걱정일까요?”였다. 이번에도 어느 것 하나 선뜻 결정할 수 없음에 다시 한 번 필자는 당황했다. 진행자의 마지막 질문은 “여러분은 지금 고민하고 있나요? 걱정하고 있나요?”였는데, 순간 모든 질문에 말문이 막힌 이 상황에 웃음이 나왔다.
라디오 진행자의 말에 따르면 ‘이것을 할지, 저것을 할지 생각하는 것’은 고민이요, ‘이것을 하게 되면 혹은 저것을 하게 되면’은 걱정이라고 한다.
우리는 어느 것 하나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기로에 설 때가 많다. 우리는 그럴 때마다 ‘무엇이 옳을지’ 고민하기도 하고, ‘무엇이 벌어질지’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대체로 ‘고민’에 앞서 ‘걱정’을 한다. 아직 펼쳐지지 않은 일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경험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은 우리의 인식이 믿음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사건 A’와 ‘사건 B’를 연결 짓는 우리의 인식은 필연성이 없는 습관과 기억에서 비롯된 ‘믿음’일 뿐이라는 것이다. ‘불이 나면 연기가 난다’는 식의 습관과 경험에 따른 믿음은, 우리가 만일 ‘가짜 연기’를 본다면 불이 난다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게 만든다.
흄의 말처럼 우리는 이전의 짧은 경험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걱정하고 있는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고 있지는 않을까.
중요한 일이라면 가능성을 열어두고 고민해 보자. 걱정해서 하지 않는 것보다 고민해 보고 하는 것이 더 낫다.
서민지 기자 sophyseo@m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