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을 날아가는 벌'같은 시인, 안미옥(문창 04)을 만나다 <1049호, (종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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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겨울을 날아가는 벌'같은 시인, 안미옥(문창 04)을 만나다 <1049호, (종강호)>
  • 오상훈 기자
  • 승인 2018.12.09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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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믿어서는 안된다. 문을 닫는 손으로, 열리는 문을 가지고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식탁에서」, 안미옥) 김영희 평론가는 안미옥 시인의 첫 시집 『온』에 대해 “시에서 작동하는 힘은 원심력이며 구심점은 특별히 설정되어 있지 않다”고 평가한다. 안미옥 시인은 그런 사람이었다. 벽 안에 거울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내가 나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시인은 사물을 판단하는 기준을 두지 않고 그런 사유로 쓰인 시를 통해 사물을 정의하고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말들로 사람들을 위로하는 안미옥 시인을 본지가 만나봤다.

 

첫 걸음

Q : 지난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셨잖아요. 등단하는 것이 시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A : 등단이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자격증 같다고 말할 수 있어요. 제도권 안에 들어가게 되는 일이죠. 등단을 하면 청탁을 받아 지면에 시를 발표할 수 있는 기회들이 생겨요. 이런 목소리를 가진 시인이 있다, 라는 걸 알리게 되는 일이기도 하고요. 요즘엔 등단과 비등단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는 추세여서, 꼭 등단을 해야만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제게는 혼자서만 쓰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제 시를 읽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된 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Q : 첫 시집 『온』은 어떤 시집인가요?

A : 시를 쓸 때와 시집이 나온 직후에는 잘 몰랐어요. 그저 첫 시집이라는 의미밖에 없었죠. 근데 시간이 지나고 시집과 거리감이 생기고 나니 ‘내가 이런 시를 썼구나’라는 걸 느끼기 시작했어요. 『온』에 있는 시들은 무언가가 있다, 없다, 그런 기준이 명확하게 구분 지어질 수 없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할 때 쓴 것들이에요. 그래서 시를 쓸 때, ‘내가 믿고 있는 세계가 진짜로 그럴까’라는 의심에서부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아니었던 것이 맞을 수도 있듯이.

 

Q : 제목이 뜻하는 바가 궁금해요. 뭔가 따듯한 느낌이 나거든요.

A : 처음 제목을 ‘온’이라고 정했을 때는 ‘따뜻할 온(溫)’과 ‘오다’ 정도의 의미를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 글자를 시집의 제목으로 정하는 것이 모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조금 불친절 할 수도 있고. 그런데 편집자 선생님이 본인이 생각하는 온의 여러 가지 다른 의미들을 이야기해 주셨어요. 그 말이 최종 결정하는데 도움이 되었어요. ‘백(百)’의 옛말이기도 해서, ‘모든 것’이라는 뜻이 되기도 하고. 온 · 오프할 때의 켠다는 의미를 갖기도 해요. 그래서 좋았어요. 온이 의미를 확정할 수 없어서. 시라는 것이 사람 읽기 나름이잖아요. ‘온’이라는 제목도 해석을 열어두는 시의 방식이랑 잘 맞다 생각해서 제목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됐어요.

 

Q : 시집이 탄생하기까지, 에피소드나 우여곡절이 있으셨나요?

A : 너무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죠. 약 5년 동안 쓴 시들을 묶은 시집이니까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제 시도 많이 달라졌어요. 그것을 한 권으로 묶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등단한다고 해서 시집을 바로 낼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자신의 시집이 나온다는 보장이 없는 상태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많이 힘들었어요. 시집을 못 낼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으로 이어졌거든요. 그래도 다행히 몇 년 지나서 작품을 검토해 보고 싶다고 보내달라고 한 출판사가 있었어요. 약 50편 정도를 보냈고, 회의를 거치는 시간동안 또 오래 기다렸어요. 최종적으로 시집을 내자는 연락을 받기까지 마음 졸였던 기억이 나네요. 그 이후로도 제 시집이 나오기까지 2년 정도 기다렸어요.

 

Q : 시집에 담긴 모든 시를 아끼실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그중 가장 사랑하시는 시가 있나요?

A : 시집을 내고 나면 사실 그 시들로부터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리고 애정을 가지는 시는 시기마다 다르고요.「천국」이라는 연작 시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 이 시들이 시집을 관통하는 시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거론은 많이 안되더라고요. (웃음) 이미지의 밀도가 높아서 독자분들이 어려워하시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담아낸 시들이라고 생각해요.

「시집」이라는 시는 시집을 묶을 때 쓴 시에요. 제가 시 쓰기를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어서 혼자 땅굴 파듯이 쓰거든요. 사실 아무도 압박하는 사람이 없는데 저 혼자 힘들어하는 거예요. 근데 그것을 해소하는 방식으로 쓴 시가「시집」이에요. 시가 감옥도 아니고 굴레도 아닌 편하게 써도 되는 것인데 그렇게 못했던 절절한 심정을 쓴 시여서 쓰고 난 후 마음이 조금 자유로워졌어요.

「구월」이라는 시는 시가 울고 싶을 정도로 안 써질 때 쓴 시에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교토 여행을 가게 됐어요. 여행이라고 했지만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교토에 가서 풍경 구경도 못 하고 스타벅스에 갇혀서 우는 심정으로 썼던 시예요.

 

Q : 『온』에 수록된 시들의 화자가 명백하지 않다고 느꼈어요. 주로 누구를 생각하며 시를 쓰셨나요?

A : 그건 시마다 다른데, 화자가 명백하지 않은 이유는 제가 주어를 생략하는 방식으로 써서 그래요. 그 이유는 나라는 사람이 나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제 안에 나라고 생각했던 지점에 타인이 들어와서 내가 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화자를 정확하게 지칭하지 않는 방식으로 시를 썼던 것 같아요. 나와 타인을 나눠놓고 시를 쓰다가도 경계가 없어지는 경험을 자주 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주변으로부터 끙끙 앓는 사람의 언어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할 말을 겨우겨우 하는 방식으로밖에 말할 수 없는 사람의 언어라는 거죠. 그런 심정으로 썼기 때문에 언어가 그렇게 쓰여진 건 당연한 것 같아요.

 

Q : ‘김준성문학상’과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셨어요. 정말 축하합니다! 소감 한마디 부탁해도 괜찮을까요?

A : 고마워요. (웃음) ‘김준성문학상’은 그해 동안 나오는 첫 시집 중에 한 권에게만 수상 되는 상이에요. 그래서 신인들한테는 받고 싶은 상이죠. 받고 싶다는 생각은 했는데 진짜 받게 될 줄은 몰랐어요. 좋은 첫 시집들이 많았거든요.‘현대문학상’은 올 한해 문학잡지에 발표된 시들 중 좋은 작품을 썼다고 생각되는 시인에게 주는 상이에요. 물론 상은 다 좋지만 시인들은 첫 시집을 내면 헤매는 시간들이 있어요. 첫 시집에서 이야기 했던 주제나 세계를 두 번째 시집에서도 똑같이 얘기할 수는 없거든요. 달라지고 싶고 이제 뭘 쓸 수 있을지 고민하는 거예요. 그래서 첫 시집이 나온 뒤 몇 개월 동안 시를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첫 시집을 내고 울며불며 쓴 시들로 상을 받으니까 ‘너 잘하고 있어’라는 격려의 의미로 다가와서 힘이 됐던 것 같아요.

 

시를 쓰는 이유

Q : 시를 쓰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A : 고등학교 때 처음 썼어요. 중학생 때 ‘가을동화’라는 드라마를 감명 깊게 봐서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문예부에 지원했어요. 근데 문예부는 아무나 받는 곳이 아니었고 뭔가를 써서 선발이 돼야만 했어요. 소설 같은 긴 글은 쓰기 힘들어서 시를 썼고 뽑히게 됐죠. 후일담인데, 알고보니 그 문예부는 순수 문학을 추구했어요. 드라마 작가와는 관련이 없었던 거죠. (웃음) 문예부에서 쓴 시들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엄청 철학적인 척하는 촌스러운 시였던 것 같아요.

 

Q : 주로 어떤 부분에서 영감을 얻으시나요?

A : 영감이라고 하기는 거창하지만 시적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데, 일상적인 단어가 갑자기 이상하게 다가올 때가 있어요. 최근에 쓴 시중에 ‘잠영’이라는 시가 있는데, 그냥 별 의미 없는 단어가 갑자기 이유 없이 이상하게 다가오는 거예요. 그럼 적어 놓는 거죠. 그리

고 나중에 시를 쓸 때, 그 단어의 의미와 이미지, ‘왜 이게 이상했지’라는 생각을 막 적어봐요. 그렇게 시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시집의「적재량」이라는 시도 그렇게 탄생했어요. 고속도로를 가다가 표지판에 적힌 ‘적재량’이라는 단어가 이상하게 다가와서.그리고 시를 쓰기 전에 일기를 좀 많이 써요. 사실 일기라고 하기도 거창하고 아무 말을 막 쓰는 거예요. 생각이나 감정을 워밍업 시킨다고 할까. 시 쓰는 몸이랑 일상생활을 하는 몸이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모드 전환이 돼야 하는데 그걸 위해 아무 말을 막 쓰는 것 같아요. 생각 없이 살면서 덮어 두었던 것들을 막 끄집어내서 써보다가, 중요하게 다가오는 이미지나 문장으로부터 시를 시작해서 차곡차곡 쓰는 거예요. 아무 말이 담긴 한글 파일이 있는데, 이건 죽기 전에 꼭 지워야 하는 파일이에요. (웃음) 들여다보기 싫을 때가 많을 정도거든요.

 

Q : 시인님의 다른 인터뷰를 보면서, 커튼과 벽의 구분을 꺼려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혹시 이것이 안미옥이라는 사람이 사물을 보는 시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A : 꺼려한다기 보다는 사실 어떤 대상이 있으면 그것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보는 식이에요. 벽도 내가 벽으로 대했을 때 벽인 거지 나를 들여다보는 거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바라보는 태도에 따라서 대상이 변하는 것에 대해 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대상이 그것으로만 있지는 않은 거죠. 사실 시라는 것이 A를 A라고 말하는 장르가 아니잖아요. 벽인데 거울이나 사람, 커튼이 숨겨질 수 있고 그걸 발견하는 작업이 시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Q : 등단 당시, 당선 소감으로 “시 앞에서 좀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A : 쓰는 일이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쓴 글을 다른 사람이 판단하기 전에는 저만 보거나 억지로 보여줘야 읽는 정도인데 등단하면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제 글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무서웠거든요. 하지만 무섭다고 쓰기를 멈추는 사람이 아니라, 용기를 내서 계속 쓰겠다는 포부로 말했던 것 같아요.

 

Q : 현재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셨나요? 아니면 아직 두려운 부분이 있으신가요?

A : 사실 지금도 백지 앞에 앉으면 항상 두려워요. 시인이 된 지 햇수로 7년 정도 됐는데 아직도 무섭고, ‘어떻게 또 쓰지’, ‘뭘 쓰지’ 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사람들이 안 좋게 볼 수도 있다는 걱정을 많이 해요. 그런데 보니까, 저보다 오래 활동하신 선배들도 똑같더라고요. 그 어려움이 시를 익숙해지지 않는 지점에서 계속 생각해보게 하고 돌아보게 하는 것 같아요. 용기는 아직 없는 것 같은데, 계속 그럴 것 같아요. 하지만 당연한 거죠.

 

Q : 시를 읽으면 좋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A :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 같아요. 반대로 시를 읽지 않는 이유는 생각을 많이 해야 해서인 것 같아요. 어느 정도 훈련이 되어있지 않으면 한국말임에도 불구하고 읽기가 쉽지 않은 것이 시거든요. 하지만 조금씩 시를 읽다 보면 사유하는 힘이 길러지고, 사물과 세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장르라서 그래요.SNS가 피부가 돼버린 시대에요. 즉각적으로 오는 정보들에 대한 감정적 반응들에 마음을 쏟게 되는 것이 피로하게 느껴지는 시대. 그렇게 하지 않고 사안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하게 할 수 있는 힘들이 필요하고 이것을 시가 충족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 템포 쉴 수 있고, ‘한 문장, 한 단어가 왜 쓰여졌을까’라는 걸 이 빠른 시대에서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시 같아요. 시가 덕후의 장르가 돼가는 것 같아서 아쉽긴 해요. 그래도 요즘은 독자분들이 늘어나는 것 같아서 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학부생 시절

Q :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A : 문예부 활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문예창작학과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문예창작학과가 있는 학교가 많지 않았어요. 그중 좋은 작가들이 많았던 명지대학교가 눈에 들어왔죠. 남진우 교수님께서 제가 입학했을 때 처음 부임하셨어요. 현직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 분들이 가르쳐주시니까 가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것 같아요. 지금 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오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Q : 청년 안미옥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재학시절이 궁금해요.

A : 저는 제가 아싸라고 생각했는데 주변 친구들하고 얘기해보면 인싸였던 것 같아요. (웃음) 앞에서 막 나서는 게 아니라 소리소문없이 동기들과 두루두루 친했던 사람이었대요. 학생회도 잠깐 했었고, 과 대표도 했었어요.

 

Q : 재학 시절, 우리 대학에서 좋아하셨던 장소가 있나요?

A : 여러 군데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요. 1,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도서관은 본관 건물 8층, 9층이었어요. 그런데 도서관이 바뀐 거죠. 새로운 도서관 하면 유비쿼터스와 노아의 방주가 생각나요. 아무튼 바뀐 도서관의 3층에 문예지 정기 간행물이 있는 곳이 있거든요. 거기서 문예지를 가져다가 도서관 중앙을 바라볼 수 있는 테이블에 앉아서 햇빛을 받으며 읽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시도 거기서 많이 썼고요.

또 정문 앞에 있었던 이디야 커피를 많이 갔어요. 저 때만 해도 테이블이 두 개 있을 정도로 조그만 카페였는데 많이 커졌더라고요. 제가 먹여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웃음) 1학년 때 커피를 잘 먹을 줄 몰랐는데, 선배들이 아침에 아메리카노를 한 잔씩 들고 강의실에 오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맛인지 궁금해 억지로 카페에 가서 커피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나요.

 

Q : 시 외에 좋아하는 것들이 많을 것 같아요. 시를 쓰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하시나요?

A : 시를 안 쓸 때 좋아하는 건 침대에 누워있는 거예요. 대학 다닐 때는 17시간씩 자고 그랬는데 체력이 안 돼서 요샌 그렇게 못 자요. 허리하고 등이 아파서. 그래서 뜬 눈으로 누워있는 것을 많이 해요. 불광천 산책과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해요. 불광천에서 30분 정도 달리면 한강에 갈 수 있는데, 가서 라면 먹는 것도 좋아해요.

 

‘무서워하면서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이 되기 위해

Q : 어떤 시인으로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A : 예전에는 시가 혼자 쓰는 장르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그런데 시를 쓰면서 점점 세계에 혼자 존재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함께 산다는 걸 시를 통해 배워가는 중이에요. 그래서 지금은 주변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시를 쓰려고 고군분투하는 시인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Q : 안미옥에게 명지대란?

A : 문학을 한다는 것이 사실 수면 위에서 둥둥 떠 있는 것이 아니라 수면 아래에서 고요하고 깊게 잠겨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하려면 필요한 것이 많은데, 우선 잠수복이 있어야 하잖아요. 명지대학교는 저에게 ‘잠수복’같은 거예요. 제게 수면 아래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을 줬죠. 다른 학교에 갔다면 ‘시를 계속 쓸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거든요.

 

Q :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요.

A : 산문집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제가 원고를 무사히 넘긴다면 내년 여름 지나서 나올 거예요. 그리고 앞으로도 시를 계속 쓸 것 같아요. 시를 통해 다시 만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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