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음서제도? <10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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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음서제도? <1048호>
  • 오상훈 기자
  • 승인 2018.11.25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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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거지는 세습 의혹, 대부분 제재 방안 없어

세습의 사전적 정의는 ‘한 집안의 재산이나 신분, 직업 따위를 대대로 물려주고 물려받음’이다. 현대사회에서 세습은 특정 권력을 친족간에 되풀이한다는 형평성과 효율성의 부재 때문에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현 정부는 출범 당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특정 부문에서 세습 의혹이 불거져 공정성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대학가와 고용시장에서의 세습 의혹은 많은 청년들에게 정의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이에 본지가 세습이 어떤 식으로 존재하며, 왜 문제가 되는지 알아봤다. 

▶사진은지난달27일,한국대학포럼이경희대학교에내건고용세습규탄대자보다.(제공/한국대학생포럼)

수면 위로 드러난 대학가 세습

최근 대학가에 세습이 존재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학생이 부모가 교수인 대학으로 편입학해 존속으로 인한 학점 특혜 이점을 취했다는 내용이다. 지난달 18일, 자유한국당 김현아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서울과학기술대학교(이하 서울과기대)로부터 받은 자료를 공개했다. 자료는 현직 서울과기대 A 교수가 지난 2014년, 자신의 아들을 같은 대학에 편입학시킨 후 8개의 강의에서 아들의 성적에 A+를 부여한 사실을 담고 있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서울과기대는 학칙상 교내에 근무하는 직원의 친인척에 해당하는 학생이 입학했을 때 신고해야 하는 것이 의무인데, A 교수는 아들이 편입학했을 당시 신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교육부는 지난달 23일부터 서울과기대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해 학점 이수 과정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고 그 사실관계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서울과기대의 한 학생은 “가족관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이익을 취한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해당 교직원 가족과 교수는 파면, 그 교수의 아들은 입학취소 및 출교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한편, 대학 연구 부문에서도 세습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달 23일, 더불어민주당 김성수 의원은 △한국과학기술원 △광주과학기술원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울산과학기술원으로부터 받은 ‘최근 5년간 지도교수가 존속이었던 케이스’를 분석해 총 4건의 사례를 적발했다. 이 중, 한국과학기술원(KAIST) 대학원생 B 씨는 지도교수인 아버지의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급 논문 4편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드러났다. SCI는 국제적으로도 권위가 인정되는 논문으로, 교수 임용 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학원생 B 씨의 행위를 둘러싸고 특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공저자에 자녀의 이름을 올리는 형태의 연구세습은 한국과학기술원의 내부 규정인 ‘임직원 행동강령’ 제5조(특혜의 배제)에 위반되는 것이다. 이러한 대학가 세습의 문제는 제재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지난달 30일, 자유한국당 전희경 의원은 교육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공개했는데 교육부가 약 100개의 대학을 조사한 결과, 대학생이 교수인 부모로부터 취하는 이점을 회피하거나 제척할 시스템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약 1,500여 명의 대학생이 부모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대학에 재학 중인 것으로 드러났다.

 

공기업 세습 채용 의혹, 청년들 가슴에 못 박아

고용시장에서도 세습이 존재한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15일, 서울교통공사는 자유한국당 유민봉 의원에게 ‘정규직 전환자의 친인척 재직 현황’을 제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는 지난 3월, 1,285명의 무기계약직 근무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는데 그 중 108명이 기존 서울교통공사 직원의 친인척인 것으로 드러나 고용세습 논란을 빚었다. 이에 현재는 감사원이 서울교통공사의 정규직 전환 과정의 적정성에 대해 감사에 착수한 상태다. 철도취업 커뮤니티 드림레일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의 올해 신규직원 공채 일반 전형 총 합계 경쟁률은 65.9: 1이다. 그만큼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공기업인 것이다. 공기업의 고용세습 의혹은 서울교통공사에서 처음 등장한 것이 아니다. 인천공항공사와 한국가스공사도 협력업체에 친인척을 우선 채용하거나 정규직화한 사례가 있다. 인천공항공사는 ‘인크루트’가 대학생 총 1,100명의 설문을 기반으로 선정한 ‘2018 대학생이 꼽은 일 하고 싶은 기업’ 10곳 중 1곳이다.

많은 구직자가 선망하는 공기업 부문에서 고용세습 의혹이 불거지는 것은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절망감을 안겨 줄 수 있다. 이는 채용이 공정한지에 대한 구직자들의 의문 표출로 이어졌다. 지난 7월,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구직자 47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업의 채용 공정성 신뢰도’에 따르면 59.5%의 구직자들이 채용을 불공정하다고 느꼈고, 이들 중 45.8%의 응답자가 채용 공정성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로 ‘채용 청탁 비리가 팽배해서’를 꼽았다. 또한, 채용이 불공정하다고 느낀 상황 중 ‘내정자가 있는 듯한 채용 진행’이 54.0%로 가장 많은 수치를 기록했다.

실제로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안동언 학우(정외 13)는 고용세습 의혹과 관련해 “만약, 고용세습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화가 날 수밖에 없다. 블라인드 채용으로 인한 채용 공정성을 믿고 취업을 준비하는 중인데, 고용세습은 블라인드 채용을 빛 좋은 개살구로 만들기 때문이다. 사실 여부를 빠른 시일 내에 밝히고, 관련자 처벌과 제도 개선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고용 세습, 정부 정책의 부작용으로 발생해

통계청의 ‘2018년 8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15세~29세 구직자의 실업률을 의미하는 ‘청년실업률’이 전체 약 435만 명 중 10.0%로 나타났다. 외환위기의 직격타가 있었던 지난 1999년 이후로 청년실업률이 최대치를 기록한 것이다. 전체 실업률로 확장해서 봤을 때도 청년실업률의 심각성이 부각되는데, 약 113만 3,000명의 전체 실업자 중 38.4%인 43만 5,000명의 청년들이 일자리가 없는 것이다. 이처럼 청년들의 열악한 상황과 채용 신뢰도 하락에도 불구하고 공공부문의 고용세습 의혹은 풀리지 않고 있다. 고용세습 의혹이 끊이지 않는 원인은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정책의 전환 기준과 절차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해 7월,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세부적으로는 공공부문의 기관들을 3단계로 나눠 비정규직 근무자들을 전환 기준에 따라 단계적으로 정규직화 하겠다는 것이다. 1단계 정규직화 대상 기관은 △중앙행정기관 △지방공기업 △지방자치단체 △교육기관 등 853곳이고, 이곳에서 근무하던 약 8만 5,000명의 비정규직 근무자가 정규직화 됐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6월에 공공부문 2단계 정규직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현재 2단계 기관들의 정규직화가 진행 중이다. 문제는 정규직화 전환 기준이 ‘상시 지속 업무’가 전부라는 것이다. 즉, 연간 9개월 이상 지속하는 업무나 향후 2년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는 업무를 하는 비정규직 근무자들은 모두 정규직 전환의 대상이 된다. 또한, 전환 절차는 근무 형태에 따라 다른데, 기간제 근무자들은 ‘정규직 전환 심의 위원회’에 따라, 파견 · 용역 근무자들은 노사 및 전문가 합의에 따라서 정규직 전환 여부가 판단된다. 정규직 전환 심의 위원회는 4인에서 8인으로 구성하도록 권고 받고, 기관 자체적으로 인사를 선정해 심의하는 것이 원칙이다. 노사 및 전문가 합의 또한 기관별 특성을 고려하여 자율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모든 근무 형태의 정규직 전환 절차가 기관 내부의 협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전환 절차 자체를 기관에 자율적으로 맡기는 수준이기 때문에, 정규직 전환 과정에 있어 친인척으로 인한 채용 특혜에 제재를 가할 방안이 마련돼 있지 않다.

 

다른 원인은 노조와 사측의 단체 협약이 고용세습을 용인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체 협약은 노사관계에 있어 사측과 노조 간에 단체적으로 맺는 협약으로, 노동 환경에 대한 노동자와 기업의 의무를 의미한다. 하지만 단체 협약 또한 고용세습의 문제점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6년, 고용노동부가 100명 이상의 유노조 사업장 2,769개를 조사한 ‘단체협약 실태조사’에 따르면, 25.1%의 단체 협약이 ‘우선 · 특별채용’ 조항을 포함하고 있었다. ‘우선 · 특별채용’ 조항은 자연 및 인위적인 감원으로 결원이 생겼을 경우 조합이 추천하는 자에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우선적으로 채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조가 친인척을 추천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실태조사에서 이같은 내용을 ‘위법 · 불합리한 사항’이라고 지정했다. 우리 대학 법과대학 최석환 교수(이하 최 교수)는 이와 관련해 “‘우선 · 특별채용’ 조항은 산업재해를 당한 조합원의 가족에 대해 채용의 기회를 부여하는 내용으로 단체협약에 포함된 배경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문제가 되는 조항들은 위의 취지를 넘어 조합의 추천을 받은 자 혹은 그 가족을 우선적으로 채용하거나 이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식으로 운용되고 있다”며 “이러한 조항들은 민법 103조에 의해 강행법규 또는 사회질서 위반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위와 같이 정년 전 산업재해를 조합원의 가족에 대한 우선 채용 조항까지 위법 무효로 판단하는 최근 일부 법원의 경향은 노사자치라고 하는 노동관계의 기본적 원칙에 비추어보면, 보다 신중할 필요가 있어야 한다”는 의견을 전했다.

고용세습, 문제되는 이유

대학가는 고용세습 의혹에 분노하는 모습을 보인다. 지난달 28일, 한국대학생포럼은 고용세습을 규탄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서울 시청과 서울교통공사, 그리고 일부 대학에 붙였다. 이에 대해 한국대학생포럼 박종선 대표는 “특정 이익 집단의 담합으로 힘들게 노력하는 취준생들이 기만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대자보를 붙였다”며 “고용세습은 물론, 공기업이 정치권 낙하산의 장으로 전락한 것은, 특히 청년들에게 많은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는 의견을 전했다.

만약 고용세습 의혹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이는「고용정책기본법」제7조 1항과「직업안정법」제2조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

「고용정책기본법」제7조 1항 :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 · 채용할 때에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신앙, 연령, 신체조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학력, 출신학교, 혼인 · 임신 또는 병력 등을 이유로 차별하여서는 아니 되며, 균등한 취업기회를 보장하여야 한다.

「직업안정법」제2조 : 누구든지 성별, 연령, 종교, 신체적 조건, 사회적 신분 또는 혼인 여부 등을 이유로 직업소개 또는 직업지도를 받거나 고용관계를 결정할 때 차별대우를 받지 아니한다.

하지만 최 교수는 법적 제재와 관련해 “고용정책기본법 7조나 직업안정법 2조의 규정은 벌칙규정을 수반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며 “고용세습 의혹을 막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공기업을 중심으로 한 공정한 절차의 확보와 함께 단체협약 시정명령 등을 통해 불합리한 채용 과정의 개선을 도모해야 할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사회의 전반적 영역에 걸쳐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하는 입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즉, 고용세습에 대한 제재 방안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있는 법적 조항도 위법 사항에 대해 처벌을 가할 수 없는 것이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공정 채용 절차

지난 6일, 고용노동부는 청년들의 공공부문 취업률을 재고하기 위해 ‘공공기관 청년고용 의무제’의 유효기간을 올해 말에서 2021년 말까지 연장하는 내용을 포함하는 ‘청년고용촉진특별법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공기업 청년인턴’과 같은 제도도 도입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김동연 장관은 지난달 24일에 열린 ‘경제관계 장관회의’에서 ‘최근 고용 · 경제 상황에 따른 혁신 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 방안’을 언급하며 공공기관에 2~3개월짜리 단기 일자리 약 5만 9,000개를 추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추가된 일자리 중 ‘국립대학교 빈 강의실 불 끄기’와 같은 아르바이트는 실효성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일부 공공기관은 이 같은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전라북도청은 지난 21일, 도내 15개의 지방 공공기관을 전수조사해 개선책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세부 내용으로는 △필기시험 의무 배치 △면접시험 외부 위원 절반 이상 포함 △채용 공고 홈페이지 일괄 게재 등이 있다. 이에 대해 전라북도청 임상규 기획조정실장은 ‘전북도 산하 공공기관 직원 채용 제도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보도자료를 통해 “도 공기업 및 출연기관은 도내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 가운데 하나로서, 비록 대규모 채용은 어렵지만, 공정하게 채용될 수 있도록 지도 · 감독 하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한편, 지난 21일 이뤄진 ‘5당 원내대표 회동’은 ‘공공기관 채용 비리 의혹 국정조사’를 전면 합의했다. 이제 막 고용세습 의혹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에 합의한 것이다. 고용세습 의혹은 청년들의 사회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중대한 사안일 수 있다. 때문에 신속한 해결이 요구되며 어떤 방식으로 의혹이 해소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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