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난 1046호의 ‘존재하고 있습니다’라는 기사를 통해 학보사의 위기에 관해 썼다. 기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유재희 교수님과 인터뷰를 하던 중, 교수님은 오히려 “구독률이 낮아서 학보사가 위기라는 거예요? 그럼 구독률이 높으면 진보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셨다. 당황스러웠다. 학보사가 위기에 있다는 것은 증명할 필요가 없는 전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매체는 수용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대가로 얻은 수신료나 광고 수익 등으로 연명한다. 그래서 매체는 수용자가 중요하다. 이는 신문도 마찬가지다. 구독률 저하로 이어진 광고주의 발뺌은 경영난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학보사는 수익을 낼 필요가 없었다. 통념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학보사의 위기가 아닌 그것을 통념으로 보는 시각이다. 사회에는 무심코 받아들여지는 통념들이 많고 그것은 집단 지성의 실패 사례로 존재한다. 필자가 최근에 느낀 잘못된 통념은 저출산이 노동력 저하로 귀결된다는 것과 성소수자가 에이즈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례들은 사실 관계 여부와 상관 없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사실로 인식된다. 그릇된 통념은 깨지는 순간이 있는데, 깊은 관심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그리고 이를 가장 잘 하는 것은 기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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