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일제강점기 일본 기업 ‘신일철주금’의 강제노동과 관련한 이춘식 등 4명의 손해배상 청구에 대한 판결을 내렸다. 원고의 승소였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란 대법원장과 대법관 13명으로 구성된 합의체로, 여기서 나온 판결은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갖는다. 한편, 이번 판결은 그들이 피해를 겪은 지 75년여, 소송을 제기한 지는 13년여 만이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기다리게 한 것일까.
지난 1965년 박정희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한일기본조약’에 서명했다. 그리고 부속협정에는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를 합의한 ‘한일청구권협정’이 포함됐고, 무상 3억 달러와 2억 달러의 차관이 제공됐다. 당시 정부는 이를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의 의미로 발표했지만, 일본은 독립축하금 혹은 경제협력자금으로 규정할 뿐이었다. 개인에 대한 용서와 사죄는 철저히 배제된 국가 간 이해관계에 따른 합의였다. 이 협정이 빌미가 돼 이춘식 등 4명은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한 시민단체의 도움을 통해 지난 2005년 한국에서 손해배상 청구를 진행했지만, 결과는 같았다. 일본의 확정판결이 우리나라에서도 인정된다는 이유였다. 상소 끝에 지난 2012년 대법원은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고, 이후 승소했지만 신일철주금은 다시 대법원에 재상고했다. 피해자들은 조만간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이 날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사건은 이유 없이 5년여 동안 계류됐다. 그리고 양승태 前사법부는 현재 강제 징용과 관련된 사건을 사법 거래한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이를 수사 중이며, 강제 징용과 관련한 사건의 판결을 일부러 지연시킨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뒤늦게라도 판결을 통해 사법 질서를 바로잡은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이미 원고 중 3명은 사망했고, 생존자는 98세의 이춘식 씨뿐이다. 그들에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국가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