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성우 선은혜(경정04) 동문을 만나다! <1042호(개강호,개교기념호)>
상태바
대한민국 성우 선은혜(경정04) 동문을 만나다! <1042호(개강호,개교기념호)>
  • 김현정 기자
  • 승인 2018.09.03 08: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은 꿈이다."

2011년 KBS 36기 공채 성우로 데뷔해 올해 8년 차가 된 그녀는 방송 프로그램, 애니메이션 구분 없이 여러 방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꿈을 이루기까지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꿈을 이룬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열심히 자신을 개발해나가고 싶다는 선은혜(경정 04) 동문을 만났다.

대학 시절의 선은혜
“우리 대학에 합격할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 했어요. 그래서 입시 결과를 확인했을 때 깜짝 놀랐죠.” 입학 초기를 회상하던 그녀는 학교생활에 대해 묻자 곧바로 통학 이야기부터 꺼냈다. “집이 송도 쪽이라 학교가 굉장히 멀었어요. 학교까지 오는데 두 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데, 7612번 버스로 갈아탈 때 사람이 너무 많아서 버스를 타지 못하면 더 오래 걸리곤 했죠.” 당시를 회상하던 그녀는 긴 통학시간 때문에 힘이 들기도 했지만, 우리 대학에 입학한 이후 새로운 삶이 시작된 것 같다고 전했다. 경영과 컴퓨터를 함께 배우는 경영정보학과 수업을 따라가는 것이 버겁기도 했다. “전공과목을 공부하는 것이 힘들었을 때 친구의 제안으로 경영정보학과 응원학회 ‘크로커스’와 밴드학회 ‘발광’에 입단하게 됐어요. 꿈을 찾지 못해서 힘들었을 때 학회를 하면서 같은 과 동기들과 선배님들한테 많이 의지했던 것 같아요. 꿈을 찾지 못한 상태여서 주로 무엇을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는데, 우연히 1학년 2학기 말에 성우를 꿈꾸게 됐어요. 휴학 계획을 세우고, 어렵게 부모님의 허락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학원에 다니면서 성우를 준비한 거예요.” 우리 대학을 졸업하겠다는 다짐으로 1년 만에 학교로 돌아온 그녀는 학업과 성우 준비를 병행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복학한 뒤에 조별과제에서 발표를 맡았는데 저희 조가 준비했던 주제가 교수님이 제시하신 발표 주제와 비껴갔던 적이 있어요. 발표가 끝났을 때 교수님께서 이 조는 주제가 아예 빗나갔기 때문에 제일 낮은 점수를 받아야 하지만, 발표자 덕분에 높은 점수를 주겠다고 말씀하신 거예요. 수업을 마친 후에 교수님께서 따로 부르셨는데,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아나운서나 성우를 준비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성우를 준비하던 때에 교수님께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신 것 같아서 혼자 속으로 기뻐했었죠"

성우를 꿈꾸며
그녀가 처음부터 성우를 꿈꿨던 건 아니다. “누가 툭 던진 한 마디에 성우를 결심하게 됐어요. 원래 연기를 하고 싶었지만, 워낙 어릴 때부터 연기자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많다 보니 단념하게 되더라고요.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 목소리로 연기하는 성우가 된 게 정말 천운인 것 같아요.” 그러나, 성우를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1년에 한 방송사만 시험이 있을 때도 있고, 한번 뽑을 때 10명 남짓밖에 뽑지 않는데 그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겠느냐는 지인들의 말에 압박을 받기도 했다. “아버지 성화에 잠깐 공무원 준비를 했던 적도 있어요. 그런데 가만히 앉아서 일하는 건 제 적성에 안 맞더라고요. 부모님께서 성우 공채 최종까지 갔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 힘들어하는 제 모습을 보기 힘드셨는지 취직하고 돈을 벌면서 성우를 준비하는 건 어떠냐고 제안하셨어요. 그래서 영어학원에서 8개월 정도 일을 했는데, 그때가 제 삶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죠. 꿈이 있는데 그 공부를 끝까지 못하고, 나와는 맞지 않는 곳으로 취직하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영어를 좋아하긴 하지만 가르치는 것과 공부하는 것은 별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강의하면서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았었는데, 성우 버전으로 캐릭터를 넣어서 교재를 읽어주는 거였어요. 당시에는 정말 힘들고 인생에서 지우고 싶었던 순간이었지만, 지나고 나니까 그 시간이 있었기에 더 성우가 되려고 노력했던 게 아닐까요? (웃음) 그렇게 복학 후에 학교를 졸업하고, 중간에 취직하면서 성우가 되는데 4년 반이 걸렸어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나가는 선은혜
“합격발표가 나면 예비 소집일때 동기들을 만날 기회가 생겨요. 성우 공채에 합격했을 때, 나랑 같이 합격한 동기는 누굴까 궁금하더라고요. 동기들끼리 KBS 로비에서 모이게 됐는데, 서로 합격해서 기쁨을 주체할 수 없지만, 회사 안이라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웃었던 기억이 나요.” 동기들을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는 그녀는 KBS 전속 성우로 입사하고, 첫 녹음을 했던 때를 회상했다. “라디오드라마에서 딸 역할을 맡으신 선배님께서 목소리가 안 나올 정도로 감기가 심하게 걸리셨었어요. 보통 역할을 맡은 사람이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 전속 성우가 대기하고 있다가 PD님께서 요청하시면 대독을 해요. 그날은 PD님께서 저에게 대독 요청을 하셨어요. 그래서 당연히 대독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 역할을 맡기시더라고요. 대사가 꽤 많은 큰 역할을 연습이 안 된 상태에서 맡게 되니까 긴장도 되고, 떨려서 NG도 많이 냈어요. KBS 라디오 드라마에서는 *폴리 아티스트 선배님들께서 직접 효과음을 내주시는데 NG를 내서 효과음을 내주시는 선배님들과 배역을 맡으신 선배님들께 정말 죄송했어요. 설상가상으로 PD님께서 화를 내셔서 주눅이 들기도 하고 눈 밑까지 눈물이 차기도 했지만, 극 중 쾌활한 딸 역할에 몰입해야 했어요. 녹음을 마친 후에 PD님께서 당차다고 칭찬해주셨을 땐 정말이지 뿌듯했어요.”어느덧 KBS 전속 성우로 활동한 지 2년 차가 된 선 성우는 전속 첫해보다 많은 분야에 도전할 수 있어서 좋다고 전했다. “2년 차가 되니 활동할 수 있는 분야가 넓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여러 가지 분야에 도전했어요. 아나운서분들과 함께 라디오뉴스도 진행하고, 가수분들과 노래를 부르는 프로그램에 투입돼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했어요. 이 당시에 정말 성우가 도전할 수 있는 분야가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제가 이렇게 많은 분야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곤 정말 상상도 못 했죠.”그 후, 전속 생활 2년을 마치고 프리랜서로 활동하자마자 애니메이션 첫 주연을 맡게 됐다. “감사하게도 프리랜서가 되자마자 주연을 맡겨주셔서 ‘프리티 리듬 오로라 드림’의 미온 역을 맡았어요. 첫 주연이라 긴장감이 심해서 선배님께 조언을 받기도 했죠. 영상을 보면서 입 길이를 맞추는 것을 시사라고 하는데, 선배님께서 시사 100번하면 떨리겠느냐며 연습만이 살길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을 듣고, 진짜 100번 해보자 결심하고 외울 정도로 연습했어요. 그렇게 열심히 연습했는데도 막상 가면 선배님들의 기량을 쫓아갈 수 없어 죄송스러웠죠. 정말 열심히 했기에 제 첫 주연인 미온 역할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목소리(대사)와 음악(배경음악)을 제외한 소리 중에서 물체 고유의 소리를 녹음하는 역할

시간이 흐르며…
“올해로 8년 차 성우인데도 불구하고, 녹음은 항상 떨려요. 사실 5년 차까지는 무조건 잘해야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주변을 신경 쓰기보다는 내 역할, 내 대본에만 집중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성우들과 호흡을 맞추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역할 뿐만 아니라 다른 배역도 보이게 된 거죠.” 그렇게 그녀는 연차가 쌓일수록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보다 즐기면서 기량을 펼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엄청난 확률로 공채를 통과해 성우활동을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그녀는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가 가장 힘들다고 한다.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가졌고, 꿈꿔왔던 일을 하는 거기 때문에 항상 행복해요. 일이 없을 때조차 잠시 쉬어간다고 생각하면 행복하고, 일을 많이 주셔서 바빠지면 더 좋은 거죠. 프리랜서의 특성상 하루에 한 작품을 녹음할 때도 있지만, 스케줄이 많을 때는 여러 작품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여러 작품을 하면 배역에 몰입하기 힘들지 않으냐고 걱정해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오히려 녹음하다가 나도 몰랐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해요. 그래서 일에 대한 슬럼프는 없는 편인데, 녹음할 때 PD님께 목소리 상태가 안 좋다는 말을 들으면 속상하죠. 배역을 해내는 과정에서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잘 해내지 못할 때, 그럴 때는 정말 힘들지만, 제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어서 일에 대한 슬럼프는 없어요.”인터뷰를 마무리하며 그녀는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혔던 당시를 담담히 회고했다. “정말 힘들지만 아무에게도 기댈 수 없고, 그 누구의 위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순간에 나를 잡아줄 수 있었던 건 꿈이었어요. 꿈을 향해 나아가다 힘들었을 때, 그 꿈이 나를 지탱해준다면 포기하지 않게 될 거예요. 부모님께서 내 꿈을 반대해도, 내가 정말 좋아서 준비하는 거라면 이겨낼 수 있어요. 그 꿈만이 어떤 시련도 힘듦도 이겨내는 힘이 되더라고요. 되든 안 되든 몇 년 동안 노력해보고 정말 내가 최선을 다해서, 기력을 다했을 정도로 노력했는데 안 될 때. 나 자신이 그 꿈이 포기될 때는 포기를 할지언정 꿈이 있다면 이룰 때까지 끝까지 쫓아가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녀는 꿈의 힘을 강조하며 포기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은 꿈이라고 생각해요. 제게 성우라는 두 글자는 단순히 직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에요. 앞으로 살아갈 ‘나’는 성우라는 두 글자를 빼놓고 살아갈 수 없어요. 성우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지만, 정말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성우라는 직업을 이룬 것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 개발해나가야죠. 저는 앞으로도 이 꿈을 위해 더 열심히 살아갈 거예요.” 성우가 삶의 원동력이라는 그녀. 지금 이 시각에도 꿈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대한민국 성우 선은혜의 앞날을 기원해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인문캠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거북골로 34 (명지대학교) 학생회관 2층
  • 자연캠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명지로 116 학생회관 2층
  • 대표전화 : 02-300-1750~1(인문캠) 031-330-6111(자연캠)
  • 팩스 : 02-300-175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승환
  • 제호 : 명대신문
  • 창간일 : 1954년 11월
  • 발행인 : 유병진
  • 편집인 : 송재일
  • 편집장 : 한지유(정외 21)
  • 디자인·인쇄 : 중앙일보M&P
  • - 명대신문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명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jupress@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