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1호(종강호)]시조 창작 시간
상태바
[1041호(종강호)]시조 창작 시간
  • 육민수(방목기초교육대학 인문교양) 교수
  • 승인 2018.06.04 09: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지(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어”와 같은 황진이의 작품이나, “이 몸이 주거
주거 일백 번 고쳐 주거”와 같은 정몽주의 작품은 우리들에게 익숙한 시조 작품이다. 굳이 시조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이 정도로 널리 알려진 작품은 외우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 2012년에 편찬한 『고시조대전』에는 5,563수의 시조를 수록하고 이의 이본을 비교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전승 양상을 고려해 보더라도 시조는 국문학 갈래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갈래임을 알 수 있다.
시조는 현재 주로 ‘읽기’ 텍스트로 창작하고 향유한다. 그러나 시조의 전성 시대였던 조선시대에는 ‘노래’ 텍스트로 창작하고 향유하였다. “시언지(詩言志) 가영언(歌永言)”이라는 말이 있다. 시는 뜻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며, 노래는 말을 길게 읊조리는 것이라는 뜻이다. 마음속에 품은 바 감정이나 생각을 언어적 구조물로 형상화하면 시가 되고 그 언어적 구조물을 길게 늘려 표현하면 노래가 된다는 것이다. 시조를 모아 놓은 책을 가집(歌集)이라고 하는데 현재까지 알려진 첫 번째 가집이 바로 『청구영언(靑丘永言)』이다. 청구(靑丘)라는 말이 우리나라를 뜻하므로 청구영언은 ‘우리나라의 노래’라는 뜻이다. 이후에 편찬된 『해동가요(海東歌謠)』도 ‘우리나라의 가요’라는 뜻이고, 『가곡원류(歌曲源流)』 또한 노래 갈래 중 ‘가곡의 원류’라는 뜻이다. 조선시대의 시조는 사대부가 향유의 중심이 되어 가곡창이나 시조창의 방식으로 부르던 노래였다.
이렇듯 시조는 한국문학의 대표적 서정 갈래이다. 그래서 필자는, 관련 강좌에서 수업 중 활동으로 시조를 창작해 보게 하는 경우가 있다. 3장 4음보를 지켜야 하고, 종장의 첫 마디는 세 글자로 적어야 하며, 둘째 마디는 5~6자(정확히는 음보의 추가)로 적어야 한다는 점을 알려주고, 또 시조는 원래 노래였기 때문에 순간의 솔직한 감정을 담는 갈래임을 알려주고 창작해 보게 한다. 대개는 마지못해 써서 내지만 의외로 수작(秀作)을 써 내기도 한다.
“수업 날 보던 그녀 말걸까 생각해도/날 보고 좋아할까 하염없이 망설이네/뜨거운 마음속 외침 안에서만 울려나네//같잖은 변명 하나 당신에게 말한다면/무더운 여름 8월 군 입대가 오는구나/아끼는 그대 생각에 차마 고백 못하리.” <주저>라는 제목의 시조(3수 중 1 · 2수)이다. 마음에 드는 여학생이 있어서 고백하고 싶은데 자신이 8월에 군에 입대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차마 고백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아쉬운 마음을 잘 담아내고 있다. 나보다는 사랑하는 그 사람이 아파할 것을 걱정하는, 청춘의 아름다우면서도 애틋한 마음을, 종장의 ‘아끼는 그대 생각에 차마 고백 못하리’에 담아낸 점이 절묘하다. 지금은 많이 향유하지 않는 갈래이지만 청춘의 사랑도 이처럼 잘 담아낼 수 있는 갈래가 시조이다. 시조 창작 시간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의 고민을 토로하는 시간이 되며 교수자는 학생의 고민을 공유하는 시간이 된다. 굳이 시조라는 옛 갈래가 아니더라도 우리 시대의 지식인은, 조선시대의 사대부가 한시나 시조를 즐겨 창작했던 것처럼, 문학 작품의 창작과 향유를 통해 교양인의 모습을 갖출 필요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인문캠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거북골로 34 (명지대학교) 학생회관 2층
  • 자연캠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명지로 116 학생회관 2층
  • 대표전화 : 02-300-1750~1(인문캠) 031-330-6111(자연캠)
  • 팩스 : 02-300-175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승환
  • 제호 : 명대신문
  • 창간일 : 1954년 11월
  • 발행인 : 유병진
  • 편집인 : 송재일
  • 편집장 : 한지유(정외 21)
  • 디자인·인쇄 : 중앙일보M&P
  • - 명대신문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명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jupress@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