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9호]학생과 노동자 사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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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9호]학생과 노동자 사이1
  • 정수민 기자
  • 승인 2018.05.14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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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우리도 노동의 주체입니다"

 

등 떠밀리듯 현장에 내몰린 학생들

지난 3월에 남양주 대형마트에서 무빙워크를 수리하다 사망한 청년 노동자가 1분이 채 안 되는 안전교육을 받고 현장으로 나갔다는 사실이 경찰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제주도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압사한 학생 또한 일전에도 ‘기계가 자주 멈춘다’, ‘기계가 고장났다’ 등의 안전 적신호를 보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성화고등학교 (이하 특성화고) 학생들의 안전 미보장은 비단 신체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해 1월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특성화고 학생 역시, 회사의 무리한 요구로 인해 정신적으로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모두 안전에 대한 울타리가 없는 현장에 내몰려져 일어난 일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과 12월 교육부가 전국 593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10만 여명을 대상으로 현장실습 실 태점검을 진행한 결과, 238건의 표준협약 미체결 적발과 더불어 △근무시간 초과(95건) △부당한 대우(45건) △유해ㆍ위험 업무(43건) △임금 미지급(27건) △성희롱(17건)이 적발됐다. 졸업 후의 노동환경도 썩 좋진 않다. 지난 4월, 특성화고권리연합회가 특성화고 졸업생 400명을 대상으로 ‘노동환경 기초조사’를 벌인 결과, 취업했다고 응답한 57%의 졸업생은 △강제야근 등 장시간 노동(24%)을 1위로 꼽으며 일자리에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어 △고졸이라고 받는 차별과 무시(23%) △연장노동 수당 없음(18%) △성희롱ㆍ성추행(12%) △ 임금체납(10%) △월급이 최저임금 미달(9%)이 꼽혔다. 노동환경과 처우가 부실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이에 대전 소재의 특성화고 3학년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어리고 경험이 적기 때문에 대우가 낮은 것은 사실이다”라며 “지금도 고등학생 신분이라고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학력 사회에서 고졸 이름표로 노동을 해나갈 환경이 걱정된다. 처우 개선과 더불어 인식 개선까지 필요하다. 고졸이라고 아무 일자리나 들어가고 싶은 것은 분명히 아니다”고 토로했다. 이런 와중에 지난해 11월 교육부는 ‘2017년 직업계고 졸업자 취업통계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특 성화고ㆍ마이스터고ㆍ일반고 직업반 졸업자의 2017년 평균 취업률은 50.6%로, 2000년 이후 17년 만에 평균 50%를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취업률은 단순히 ‘일주일에 18시간 이상 일하고 있는지’ 여부 를 교사가 물어 전산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집계된 것이다. 즉, 일자리가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 4대 보험에 가입된 양질의 일자리인지 등을 알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일부 학교에서는 현장실습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취업을 한 것으로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학교, 기업, 정부, 어른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청소년들

청소년 노동 단체인 ‘청소년유니온’은 지난해 11월 특 성화고 재학생ㆍ졸업생 202명을 대상으로 현장실습실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전체 응답자의 80.7%가 ‘현장실습 과정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이를 인식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 주목해야할 점은, 현장실습을 중단했다고 밝힌 19명 중 17명이 학교로부터 징계를 받았다고 답한 것이다. 이와 같은 사태의 중심엔 정부의 ‘취업률 성과주의’가 존재한다.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을 평가해 특별교부금을 차등으로 지급하는데, 이것의 근거 가 되는 평가 지표에는 ‘교육청별 취업률’이 있다. 또한, 시 도교육청의 ‘학교평가 매뉴얼’에도 특성화고의 역량을 판단하는 근거로 취업률이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학교가 학생을 보호할 의무는 저버리고, 무작정 취업률 높이기에만 목을 매는 이상한 구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렇게 학교와 정부가 학생을 사이에 두고 취업률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학생은 제대로 된 교육 한 번 못 받은 채로 현장에 노출 된다. 그동안 임금이 낮고 업무 강도가 높아 구직난에 시달리던 업체들이, 현장실습생을 값싼 가격으로 쉽게 소비하는 것이다. 청소년유니온 송하민 활동가는 “청소년이라는 이름 꼬리에 학업이 필수적으로 붙는 사회적인 편견이 사라지는 게 중요하다. 청소년은 곧 학업이라는 편견은, 노동을 하는 청소년에게 노동을 부차적이고 주변적인 것으로 만든다. 이러한 인식이 바로 학생을 노동의 주체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에서 학생노동자를 학업을 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주체로 본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상북도 소재의 특성화고에 다니는 한 학생은 “바로 취업을 하려고 특성화고에 진학을 했는데, 요즘은 대학에 진학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공부를 하지 않는 문제아라고 생각하고 막 대해도 된다고 여기는 어른들이 있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냈다. 사실 본래 현장실습제도는 3D 업종에 인력을 공급하는 목적으로 시행됐었지만, 현재는 기업과 학교 간의 산학 협력을 통해 산업체가 요구하는 인재를 양성하고 자원을 공동으로 활용하기 위해 운영되고 있다. 때문에 산업체 파견 현장실습은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돼야 하고, 학습과 경험에 중점을 두어 현장지도교사 또는 숙련기 술자의 지도와 감독 하에 체계적인 교육 및 훈련 프로그램의 형태로 운영해야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높은 강도 탓에 정직원이 그만 둔 자리를 메꾸고, 둘이 하는 일을 혼자하고, 이마저도 제대로 된 안전 교육을 받지 못한다. 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은 “학생이라는 이유로,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똑같은 노동을 하더라도 노동자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더불어 더 위험하고 열악한 일을 도맡아 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학생노동자ㆍ청소년노동자로 인정받는 것, 실습생이어도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 받는 것, 함부로 대하고 무시하지 않는 것 등이 가장 먼저 지켜지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냈다. 높은 취업률을 요구하는 정부와, 이를 맞추기 위해 학생을 기업에 떠미는 학교, 값싼 노동력으로 이득을 최대화하 려는 기업. 이 사이에 놓인 청소년은 학생과 노동자의 사이에서 어느 쪽으로도 보호받지 못하고 소외된다.

안전문제 개선 가장 중요시 돼야

6개월 전 제주도에서 현장 실습을 하다 사망한 故 이민호군의 아버지는, 지난 3일 ‘민호를 보내고 아빠가 세상에 보는 글’이라는 제목의 편지를 공개했다. 현장실습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글이었다. “이번 사고는 학생들의 안전에 대한 교육청 관료들의 안전 불감증이 원인이다. 이들의 인식개선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긴 이 글은 “실습 생을 보내기 전 현장에 대한 점검 및 안전에 대한 실사를 해야 하는데 노동부와 함께 현장 방문을 할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고, 노동부에 협조공문도 보내지 않은 교육청 및 교육감은 직무유기 및 근무태만을 한 것이다. 표준 협약서에는 공장이 이 협약을 지키지 않으면 교육청에서 공장에 제재를 가할 수 있는데, 교육청은 손을 놓고 있고 어떠한 행동이나 제재를 할 생각이 없다”고 호소했다. 중요한 것은 안전한 현장을 제공하는 것이다. 현재에도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이라는 현장실습생을 보호 하는 규정과, 「헌법」제32조 제5항으로 연소자의 근로는 특별한 보호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실제 청소년의 노동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청소년유니온 송하민 활동가는 “특성화고 현장실습에 대한 교육부의 확실한 실습생 케어와 고용노동부의 실습장 불시 근로 감독 등을 이용해 특성화고 실습생의 환경을 더 안전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더불어 “노동인권교육 정규커리 큘럼 확대와 청소년 센터 등 모든 청소년이 쉽게 찾아 올 수 있는 센터를 추가로 설립하고, 그곳에서 노동인권 교육을 여러 차례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지난해 12월 민중당 김종훈 의원이 ‘청소년 노동 보호법’을 발의했다. 법안은 주체적으로 아래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김종훈 의원은 앞서 정부가 발표한 현장실습 폐지 후 학습형 현장실습만 3개월 동안 진행하는 것이 교육현장에 있는 당사자들의 의견을 잘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은 법안을 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지역 교육감 후보들도 안전한 청소년 노동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노동을 시작하며 마주한 현실은

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은 노조설립문에서 “특성화고 졸업생이 생애 첫 노동을 시작하며 마주한 현실은 강제야간근로, 임금체납, 장시간 노동, 성희롱과 성추행 등 폭언과 폭력, 모욕과 차별이었다. 우리는 그저 운 좋게 살아남았을 뿐이다”고 호소했다. 이들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노동조합의 힘으로 특성화고 재학생들과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겪고 있는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일 첫 번째로 고용노동부에 교섭을 요구할 것이며, 특성화고 졸업생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에 정부가 나서서 해결할 수 있도록 촉구하는 활동을 할 것이다”며 “고용노동부와 교섭을 하게 되면 정부 차원의 ‘특성화고 졸업생 노동환경 전수조사’ 실시와 문제가 심각한 사업장의 ‘특별근로관리감독’부터 요구할 예정이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어떤 노동 환경을 원하느냐는 질문에는 “기본을 지키는 노동 환경이다. 특성화고 학생이라고 무시하고 차별하는 문화가 없어지는 것, 취업과 동시에 근로계약서 작성하는 것, 위험한 일터에 내몰리지 않고 안전하게 일하는 것 등 기본적인 상식을 지키는 노동 환경, 가장 기본을 지키는 것. 이것을 원한다”고 답했다. 청소년유니온 역시 같은 질문에 “어쩌면 이 질문의 답은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세대든 바라는 노동환경은 같다”고 답했다. 특성화고 졸업 후 바로 취업 시장에 뛰어든 한 청년은 “공장에 취직하고 나서 느낀 것이 많다. 결국 노동 환경은 다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안전한 사회가 우선시 돼야 한다”며 “안전한 노동 현장을 위한 제도, 규범 위에 노동자가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문제는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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