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8호]고전 읽기, 원서 읽기의 묘미: 당신의 프랑켄슈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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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8호]고전 읽기, 원서 읽기의 묘미: 당신의 프랑켄슈타인은?
  • 신숙희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 교수
  • 승인 2018.04.30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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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학생들이 물어올 때가 있다. 영미소설을 체계적으로 읽고 싶은데 어떤 작품이 좋을까요? 내 대답은 비교적 간단하다. 서점 원서 코너에 가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1장을 우선 읽어본 뒤 계속 읽고 싶다면 그 책을 사서 읽으라고 답한다. 대체적으로 좋은 소설이 있을지 몰라도 모두에 게 맞는 소설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는 것을 생업으로 한다는 사실에 혼자 배시시 웃을 때가 있는 나지만 선뜻 특정 책을 권하는 편은 아니다. 그런 내게도 특별한 책이 있는데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이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 인」(1818)이다. 여성 작가의 책이 팔리지 않던 시대였던 관계로 익명으로 출판된 후 개정판에는 실명이 실린다. 최근 유명 출판사에서 나온 번역서 리커버 판이 녹색 괴물 표지라 실망스러웠다. 활자를 토대로 상상하는 것에 재미가 들린 나로선 여간 심심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이름 없는 괴물은 항간에 떠도는 이미지와 구별되는 지적 능력과 웅변술을 지녔기 때문이다. 예전과 달리 문학 번역이 활발히 성행 중이다. 고전의 경우 각기 다른 출판사의 번역물이 시중에 나와 있다. 「프랑켄슈타인」도 예외가 아니다. 같은 책을 번역한 것인데 서로 어조와 문체가 다르다. 원서로 접하는게 아니라면 다른 출판사 것으로 다시 읽어볼 것을 권장한다. 번역서가 소화하기 쉽게 미음이나 죽을 먹는 행위라면 원서 읽기는 꼭꼭 씹어 먹는 잡곡밥 섭취와 유사하다. 원서로 문학을 읽다보면 어휘 선택과 문장 전개의 개성과 고유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러다보니 뻥뚫린 고속도로가 아닌 구간정체를 비롯한 갓길에 멈춰 서기가 수시로 발생하고 심지어 비포장도로일 때도 있다. 당연히 속력을 마구 낼 수 없다. 고전을 읽는다는 건 오래 함께 할 친구를 얻는 일과 같다. 연륜이 더해질수록 문학 읽기의 맛은 점차 더해진다. 20대에 「프랑켄슈타인」을 읽을 때 괴물과 나를 동일시하며 감정이입을 했었다. 괴물이 인간사회에 편입하기 위해 겪는 파란만장 함이 그의 잔인한 복수보다 앞섰다. 시각 중심에 물든 오염된 언어와 편협한 가족제도가 참혹한 결과를 부른 것 같았다. 그리고 괴물이 자신을 생물학적으로 ‘그’라고 믿는 것도 인간사회를 답습 한 결과물, 즉 일종의 환상처럼 다가왔다.
30대에 다시 마주하고는 놀란 것이 창조자 빅터에게 마음이 갔다. 그가 괴물을 만들고 몰입하 게 된 사연과 경위, 그리고 생각과 전혀 다른 결과에 흔들리는 자태가 마냥 낯설지 않았다. 내가 가진 신념도 맹신과 판단 착오일 수 있다는 자각이 뒤따른 관점의 변화였다. 소설을 분석할 때 전기 비평을 가미하는 것을 견제하는 이들도 있는데, 자신을 낳다가 죽은 엄마를 되살리고 싶은 작가 의 바람이 창조자의 열망에 투영됐다고 볼 수 있다. 당시 프랑스혁명과 함께 찾아온 동요와 자유 사상, 그리고 낭만주의의 고딕적인 상상력 여파도 고려해볼만하다. 그런 점에서 사십대의 내게 「프랑켄슈타인」이 새로이 건넬 말이 기대되면서 떨린다. 이번 문학수업에서 다루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나를 보내지마」(2005)와 나란히 두고 복제인간과 인간사회, 인간성에 대해 비교하게 될지도 모르겠 다. 다시 읽는 과정은 지금의 나를 가늠하는 바로 미터가 되어주기에 그에 따라 ‘나’라는 조형물을 일부 부수고 재건하게 될 것이다. 혹시 이 칼럼이 기폭제가 되어 소설을 찾아 읽는 사람이 있다면 기쁠 것 같다. 문학은 혼자 읽기에서 그치면 많이 아쉽다. 잘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에 대해 누군가와 생각을 나눠본 경험, 그리고 그것을 기록으로 옮긴 사람은 책과의 만남 의 깊이가 다르다. 소설 읽기가 지금 당장 삶을 바 꿔 놓진 못하지만 언어적, 문화적, 문학적 감수성 이 조금은 깊어질 것이다. 내 의식으로 들어와 체화된 책은 몸의 일부가 되어 흐른다. 끝으로 맹렬 히 덮치는 더위를 식혀줄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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