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탄식과 안타까움을 표한 이웃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기 시작했는지. 그들은 마치 거대한 불행에 감염되기라도 할 듯 우리를 피하고 수군거렸다’, ‘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위 문장은 김애란 소설집「바깥은 여 름」에 수록된 단편소설 ‘입동’ 중 한 부분이다. 입동은 어린이집 차 후진 사고로 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에 대한 이야기로 문예지에서 ‘세월호 문학’으로 많이 조명됐었다. 필자는 최근에 이 책을 읽고 사람들과 모여 토론 세미나를 진행했었고, 세월호 연극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에 대한 유가족 인터뷰를 보고 둘의 접점이 많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동에서 어린이집 원장은 아이를 잃은 부부에게 보험금을 주었고 세월호 유가족 들은 정부에게서 보상금을 받았다.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이들을 보고 돈 벼락을 맞았다고 수군거리고 더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라고 소리 지른다. ‘다른 사람 들은 몰라’ 아내가 한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아이를 잃은 슬픔을. 돈으로 절대 보상받을 수 없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아이의 목숨을. 아무것도 모르면서 다른 사람들은 사랑하는 아이를 잃은 유가 족들에게 너무나도 쉽게 돈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책에서 아내는 바깥을 나가 면 사람들이 아이를 잃은 사람은 옷을 어떻게 입나, 자식 잃은 사람도 시식 코너에서 음식을 먹나 하며 자길 쳐다본다고 말한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어, 세월호 유가 족들이 밥도 먹네. 어? 웃기도 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말한다. 이웃과 타인의 시선들은 그들이 일상생활조차 편히 하지 못하게 하고 그저 ‘사람’이라서 하는 행동들에 의문을 가진다. 또한, 그들은 ‘그만 울어라’, ‘그만하라’는 말을 쉽게 꺼낸다. 책에서는 이를 ‘꽃매’라고 표현한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악의로 던져 놓은 국화. 그렇다. 그만하라는 말은 곧 유가족들을 두 번 죽이는 행위와 다름없다. 이 말은 사건이 일어난 후 4년이 지나도, 40년이 지나도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아직 진실이 제대 로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이번 달은 세월호 참사 이후 네 번째 맞는 4월 이다. 유가족들은 아물지 않을 상처에 힘들어하고 있지만, 타인들은 그 상처에 등을 돌리거나 이제 그만 덮어버리라고 묻어 버리라고 말한다. 한 유가족이 그에 대해 말한다. 묻을 공간이 없다고. 타인들은 도대체 왜 유가족에게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말을 하는 걸까. 우리가 다 같이 추구해야 할 것은 오직 진실뿐.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