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7호]공격적인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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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7호]공격적인 비명
  • 김종현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4.0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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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무거운 바벨을 들었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그 느낌이 명확하고 생경해서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생전 허리 디스크(추간판 탈출증)를 겪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 느낀 낯선 통증에 혹시나 싶어 겁이 났다. 다행히 잠시 쉬며 몸을 풀어주자 예상외로 더 큰 통증은 안 밀려왔지만, 여전히 허리 근처에서 묵직하고 뻐근한 통증이 왔다. 집에 와서 얼른 검색  해봤다. 운동 중 디스크 부상, 추간판 탈출, 섬유륜 파열 등 무시무시한 낱말들을 넣어봤다. 증상과 자가진단 방법들을 살펴 보니, 이게 디스크 문제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애매하다. 내심 단순 근육통 보다 큰 부상 같다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지만, 그래도 움직일 수 있는 걸 보면 별일 아닐 수도 있겠다는 자위를 하며 예민한 상태로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에 깨어 났을 때, 뜬금없이 복통이 심하게 왔다. 대체 이 통증이 왜 갑자기 생긴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전날밤에 샌드위치를 먹긴 했지만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식단이었다. 느닷없는 아픔, 위장 쪽에서 예사롭지 않은 통증이 계속해서 밀려왔다. 겁이 덜컥 났다. 혹시 암인가? 최근 몇년간 종합검진을 받지 않았다. 신경 쓴 다고 쓰지만 먹는 음식에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왔다. 몇 주 전에도 소화가 잘 안되는 경향이 있었다. 혹시 큰 탈이 난 걸까. 하루 사이에 허리 디스크와 위암이 동시에 내 것이 될 지도 모른다니. 그나마 큰 탈 없이 건강한 삶이 자랑거리였는데 불행한 나락으로 갑자기 떨어지기 싫었다. 갑작스러운 두려움으로 머릿속은 호들갑 이었다. 그러나 홀로 부린 난리는 오래가지 않았다. 정오까지 식사를 못 하다가 소화제를 먹었고, 삼십분이 지나자 뱃속이 편안해 졌다. 허리는 여전히 특정한 각도에서 뻐근했지만 전날 보단 나아졌다. 참 유난스러운 24시간이었다. 세상에 돌아다니는 온갖 의학정보와 사례 그리고 뉴스 들을 너무 많이 알고 있어서 그렇게 무서웠나 보다. 제한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 전부를 알 수 없는 것과 만나는 것이 공포다. 사람은 공포와 두려움으로 채워진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음 순간을 의심한다. 공포영화의 백미는 노골적으로 잔혹한 장면이 아니라, 상상 속에 존재하는 공포가 자기 앞에 곧 닥칠 것만 같은 순간이다. 냉정히 말해 공포는 순전히 자신의 것, 상상과 의심으로 미래를 부정적으로 추정하거나 예단할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 한 무리의 사람들 혹은 한 집단이 공포에 휩싸일 때도 같다. 개개인은 자신이 아는 것들을 토대로 모르는 것들의 불확실성에 두려움을 느끼면, 그 집단과 사회는 부정적인 미래에의 공포가 휩쓸게 된다. 그리고 공포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대상에 대한 공격이 시작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본능적인 행위는 그 자체로 스스로에겐 선한 의지이므로, 본인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신념을 갖게 한다. 우리가 SNS나 인터넷 기사의 댓글들에서 맥락 없는 분노와 저주를 자주 발견하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옳기 때문에 분노도 저주도 옳다는 확신이다. 자신에게 가장 익숙하고 편안한 지금의 환경이 바뀌면 본인 삶의 기저도 송두리째 흔들리고 말 것이라는 공포. 이는 달리 말하면 새로운 변화를 공격하는 이들이 스스로를 변화에 쉬이 적응하지 못하는 매우 나약한 존재로 여긴 다는 무의식의 신호다. 진보적 목소리, 미투(#MeToo) 운동, 페미 니즘, 최약체 사람들의 인권, 노동자의 저항 등이 자주 부딪히는 장벽이 바로 공포의 현실화를 의심하여 생기는 공격성이다. 살아온 시간이 길고 나이가 많은 이들이 현재를 지키려는 보수적 양태를 보여주는 것은 딴엔 건강한 반응일 수 있다. 그러나 10대, 20대, 30대 세대가 우리시대의 담론장인 인터넷에서 보여주는 저주로 가득 찬 분노의 말솜씨들을 보면, 어떤 이념이나 진영을 막론 하고라도 심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다른 면에서 이는 나약함을 고백할 수 없어 지르는 비명이라고 볼 수도 있다. 불온하고 부당한 표현을 자제시키고 대가를 무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혹시 우리 사회는 청소년 청년세대의 비명을 흘려 듣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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