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6호]사랑 아니고 폭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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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6호]사랑 아니고 폭력입니다!
  • 정수민 기자
  • 승인 2018.03.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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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각 분야에서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데이트폭력을 당했다는 폭로 역시 잇따르고 있다. 조직 내 위계에 의한 성폭력 피해에 집중했던 기존의 미투 운동을 넘어, 연인 간의 데이트폭력도 부상하게된 것이다. 실제로 지난 7일, 여성 뮤지션 A씨는 자신의 SNS에 “인디가수 강태구씨와 3년 반의 연인 관계를 이어나가는 동안 데이트폭력을 당해왔다”고 폭로했다. 현재 강 씨는 이를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음악 활동을 잠정 중단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11월 여성 2,000명을 대상으로 데이트폭력 피해 실태조사를 실시한 결과 1,770명(88.5%)이 데이트폭력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문제는 절반이 넘는 응답자가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답했고, 이를 경찰에 신고한 비율은 9.1%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지금껏 데이트폭력이 ‘당사자 간의 사랑 다툼’으로 치부되면서 별다른 법안 없이 눈감아준 대가다. 이 가운데, 지난해 11월 여성가족위원회는 ‘데이트폭력 방지법’ 등 39개 법안을 논의하는 전체회의를 열었다.

▲ 한 포털사이트에 데이트폭력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기사들이다.

한 달 8명, 데이트 하다가 숨져

지난해 경찰청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데이트폭력으로 인한 사망자가 460명에 이른다. 또한,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의 살인범죄 중 피해자가 연인인 경우가 전체의 10%를 차지한다. ‘칼로 물 베기’라고 불리던 연인 간의 다툼에서 끊임없이 사망사고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데이트폭력이 이어지는 가운데,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지난해 7월 24일부터 8월 31일까지 39일간 데이트폭력 집중 신고 기간을 운영해 총 276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유형별로는 폭행 · 상해가 199명(72.1%)으로 가장 많았고, 협박 · 감금 31명(11.2%)이 뒤를 이었다. 이 외 △성폭력 3명 △살인미수 1명 △주거침입 등 기타 42명이 뒤를 이었다. 피해자는 여성이 237명(85.9%)으로 남성 39명(14.1%)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더 놀라운 건, 이 결과가 경기 남부에서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신고 접수한 데이트폭력 건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데이트폭력은 서로 교제하고 있거나 하고자 하는, 또는 과거에 서로 연인 관계에 있었던 사이에서 둘 중 한 명 이상에 의해 발생하는 폭력의 위협 또는 실행을 뜻한다. 더 나아가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는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난 모든 폭력이라고 명시한다. 사실 이 같은 데이트폭력은 최근에 나온 개념이 아니다. 지금까지는 △상남자 △남자다움 △박력 △치정 싸움 등으로 포장됐고, 아직까지도 대중매체 속에서 로맨스로 소비되고 있는 행위다. 실제로 2016년 인기를 끈 tvN드라마 <또 오해영>에서는 남자 주인공이 자동차 유리창을 주먹으로 깬 후(위협) 계속해서 거부 의사를 밝히는 여자 주인공을 벽으로 밀치고(폭력) 억지로 강제 키스(성추행)를 하는 장면이 그럴듯한 음악과 함께 명장면으로 제공되기도 했다. 지난해 방영된 KBS 드라마 <쌈 마이웨이>에서도 여자 주인공이 치마를 입고 등장하자 남자 주인공이 “옷 갈아입고 나와! 다리가 왜 예뻐! 다리가 완전 여자네”라며 옷차림을 통제하는 장면이 나왔다. 사귀는 사이에서 남성이 여성의 옷차림을 통제하는 것이 일종의 클리셰처럼 등장하며 로맨스로 묘사된 것이다.

이에 이화여자대학교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그동안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나의 사생활을 감시하거나 통제하는 경우가 많았음에도, 제대로 거절하는 것이 힘들었다”며 “그것이 데이트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을뿐더러, 그런 얘기를 주위에 털어놓아도 오히려 남자친구가 남자답다는 소리를 듣다 보니 점점 받아들였던 것 같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앞서 예시를 든 드라마 속 장면에 대해 ‘로맨틱하다’, ‘설렌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고, 명장면으로 기록되는 등 긍정적인 평가를 끌어냈다. 우리 사회의 미디어가 연인 관계에서 남성의 통제나 강압적인 스킨십을 ‘로맨스’로 포장하며, 데이트폭력을 미화시키고 있는 꼴이다.

피해자 38%, 별다른 조치 취하지 않아

이처럼 데이트폭력을 사랑으로 칭하는 미디어가 넘쳐나는 가운데, 피해자들은 불쾌한 감정이나 부당한 신체접촉을 삼키며 견디기도 한다. 특히 대부분 데이트폭력은 ‘가스라이팅(의도적인 상황조작으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정신적으로 황폐화시켜 지배적인 위치에 이르는 일종의 감정폭력)’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피해자가 가해자의 행동에 대해 의문을 가질 때마다,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다 너를 아껴서 하는 행동이다”와 같은 말로 피해자를 폭력 행위로부터 무기력하게 만들 수 있다. 결국, 피해자는 ‘나에게도 잘못이 있나?’와 같은 질문을 가지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는데, 이때 가해자에게 의지하게 되면 관계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자사회원 634명을 대상으로 ‘데이트폭력 실태 조사’를 실시한 결과 데이트폭력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회원 중 상당수(38%)가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내 잘못도 있다고 판단해서(21%)’와 ‘단순한 사랑싸움 중 하나라고 여겼기 때문(21%)’이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은 피해자를 보다 무기력하게 만들어, 신고를 망설이게 하기 때문에 이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데이트폭력 간접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회원 중 63%가 데이트폭력을 목격했을 때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연인 간의 자잘한 다툼이라 생각(30%) △괜히 불똥이 튈까 우려(25%) △휘말리면 귀찮아질까봐(24%)가 줄을 이었다.

이런 와중에 ‘왜 진작 고소하지 않았느냐’ ‘너도 사랑해서 일어난 일 아니냐’ 등의 2차 가해를 일삼는 기사 댓글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미투 운동으로 지목된 한 배우가 가해 사실을 인정하는 사과문에 ‘연애감정’이라는 단어를 포함했을 당시에도, 피해자에게 ‘그때는 즐겨놓고, 이제 와 돈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가해를 저지르는 댓글들이 여럿 있었다. 이는 직접적인 상해나 강간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가해 사실로 명확히 규정하지 않는 사회 전반적인 인식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성인의 데이트폭력 가해 연구’에 따르면 19세 이상 64세 미만 남성 2,000명 중 1,593명(79.9%)이 데이트폭력 가해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체크 항목에 연인의 행동을 통제하는 것도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가해 유형으로는 △통제 행동(71.7%)이 가장 많았고 △성추행(37.9%) △심리적 ․ 정서적 폭력(36.6%) △신체적 폭력(22.4%) △성폭력(17.5%) △상해(8.7%) 순이었다. 이에 서울 소재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한 남학생은 “부끄러운 얘기지만, 여자친구의 옷차림을 주기적으로 단속하면서 그것이 잘못됐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연인 사이에선 가능한 일이라고 여겨왔고, 오히려 이러한 질투가 사랑의 일부라고 스스로 관대했던 것 같다”며 “아마 통제 행동이 데이트폭력이라고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여기서 말하는 ‘통제 행동’은 관계 우위를 차지한 쪽이 열등한 쪽을 통제하려는 행동을 일컫는다. 연인 관계에서 △옷차림 제한 △휴대폰, 이메일, SNS 점검 △동호회, 모임 활동을 못 하게 함 △통화가 될 때까지 계속 전화함 △누구와 함께 있는지 확인함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방이 싫어해도 하도록 강요함 △상대방이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만두게 함 △다른 이성을 만나는지 의심하는 행동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와 관련해 ‘한국 여성의 전화’ 인권문화국의 재재(별칭) 인권팀장은 “데이트폭력을 정의하는 데 있어서, 언어적ㆍ정서적ㆍ신체적 폭력 등을 포괄해서 정의한다. 상황이나 맥락에 대한 파악 없이 딱 기계적으로 단정 지어서 말하기는 힘들지만, 통제 폭력의 경우 ‘상대가 통제했을 때 얼마나 위협적으로 느끼는지,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지’ 등에 따라 다르게 판단되기도 한다”는 의견을 표했다. ‘너는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아’와 같은 애정과 관심에서 우러나오는 제안과, ‘다른 남자들이 보니까 바지만 입어’ 식의 통제 · 강요 · 강제는 명백히 다르다는 것이다.

폭력의 사각지대 ‘데이트폭력’ 

사회의 개입이 분명히 필요해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데이트폭력 실태 조사’에서 데이트폭력 근절을 위해 선행돼야 할 노력에 대해 응답자들은 △가해자 처벌 강화(39%) △단순 치정으로 인식하는 사회의식의 전환(19%) △연인을 대상으로 한 예방교육(12%) △피해자의 법적 보호 방안 마련(7%)을 꼽으며, 데이트폭력은 정부 차원에서 개입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외쳤다. 이 가운데 국회가 나섰다. 지난달 22일에 국무총리 주재의 국정현안 조정 점검의회에서 스토킹 · 데이트폭력 피해방지 종합대책이 확정된 것이다. 이낙연 총리는 이 회의에서 “최근 3년 동안 경찰청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스토킹은 46%, 데이트폭력은 54.4%가 늘었다. 과거보다 피해자의 신고가 늘고 있겠지만,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는 경우도 여전히 많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로는 이러한 폭력이 경찰청의 통계보다 더 많을 것이다”며 “법의 미비가 있다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가중 처벌을 할 수 있도록 준비했으면 한다”고 발언했다. 그간 사회적 영역의 경미한 범죄로 간주해온 데이트폭력을 사각지대 밖으로 꺼내고, 가해자 처벌에 앞서겠다는 것이다. 이에 법무부에서는 ‘스토킹 처벌법(가칭)’ 제정을 통해 범죄 가해자 처벌을 범칙금이 아닌 징역 또는 벌금으로 처벌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된 처벌 강화안을 내놓았고, 경찰청에서는 적극적인 초동조치와 함께 피해자 신변보호 및 경찰의 현장 대응력을 강화하겠다는 안을 발표했다. 또한, 여성가족부에서는 피해자 심리치료와 사회 인식개선에 앞서겠다고 나섰다. 즉, 데이트폭력 발생 시 수사기관에서 적극적으로 가해자 검거 및 피해자 보호를 시행하고, 법으로 가해자를 엄중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이 같은 내용은 일반 폭력 사건을 대처하는 방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랑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어처구니없는 속담 하나에, 지금껏 기본적인 보호도 받지 못한 것이다.

폭력의 이름은 오직 폭력이다

폭력사건 가운데 왜 유독 데이트폭력에서만 ‘왜 바로 헤어지지 않았나?’, ‘맞을만한 짓을 한 것 아니냐’는 등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하는 것일까? 바로 범죄라는 본질적인 사실보다, 관계의 특수성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은 데이트폭력을 정확하게 ‘폭력’, 즉 범죄행위로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이에 재재 팀장은 “데이트폭력은 두 당사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 사회가 데이트폭력도 폭력이라고 보는 것이 중요하다. 사랑의 일종이라거나 둘이 알아서 해야 할 문제라는 식으로 바라보고 실제로 그렇게 작동하게 하는 사회를 바꿀 필요가 있다”며 “인식 개선이 가장 근본적으로 필요하다. 미디어에서 재현되는 사랑이나 연애 각본의 경우, 일방적으로 구애하고 쟁취하고 폭력적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사랑의 표현 방식이라고 구현된다. 이런 부분이 바뀌고, 그래서 데이트 문화가 성 평등적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15년 12월 16일자 경향신문의 ‘페미니즘이 뭐길래’라는 연재칼럼은 다음과 같은 사연을 소개했다. ‘대학성폭력상담소에서 근무할 때다. 한 커플이 다급히 상담소에 찾아왔다. 여자친구가 성매매한다는 사실을 안 남자친구가 정신 차리라며 여자친구를 한 대 때리고 상담소로 데리고 온 것이다. 뺨이 부어오른 여학생 역시 본인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눈치였고, 심지어 남자친구에게 고마워하는 것 같았다’.

이러한 폭력의 정당성은 누구로부터, 어떤 기준으로 부여받는 것일까? 데이트폭력, 가정폭력, 아동폭력을 관통하는 하나의 명제는 ‘사랑’이다. 지금껏 사랑을 등에 업은 폭력은, 피해자를 위한 행위라는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사랑하니까, 널 위해서니까, 때려도 되고 맞아도 된다. 이것이 지금까지 우리 사회 속에 데이트폭력이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들었다. 폭력을 오로지 폭력으로 인지하는 것. 그것이 데이트폭력 근절의 첫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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