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6호]잘 죽는 것이 곧 잘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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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6호]잘 죽는 것이 곧 잘 사는 것
  • 곽태훈 기자
  • 승인 2018.03.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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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시선을 전환하는 웰 다잉(Well-Dying)

지난 2월부터 일명 ‘웰 다잉법’이라 불리는 「호스피스 ㆍ 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하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며 최근 ‘웰 다잉’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되고 있다. ‘웰 다잉’이란 말 그대로 ‘죽음을 잘 맞이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죽음학회는 웰 다잉과 관련해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맞이하는 죽음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1인 가구의 증가 및 고령화 사회로 다다름에 따라 웰 다잉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존엄한 죽음에 대해 고찰하는 웰 다잉은 역설적으로 좋은 삶을 살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꺼려왔다. 이에 본지에서는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좋은 삶의 의미에 대한 사유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죽음, 두렵기만 한 대상? NO!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언젠가는 죽음에 이른다. 즉, 죽음은 인간이 갖는 숙명이다. 인간이 이러한 죽음을 대하는 일반적인 태도는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을 극복하고자 하는 불복종의 태도’다. 그렇다면 대학생들은 죽음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2007년에 발간한 정신간호학회지 제16권 제4호에 게재된 ‘일부 대학생의 죽음 관련 태도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충남 소재 대학교에 재학 중인 대학생 950명 중 72.6%가 ‘죽음’이라는 단어를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했다. 이 중 64.2%는 죽는 것이 두렵다고 답했다.

그러나 웰 다잉 전문가들은 죽음을 두려움과 회피의 대상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인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웰다잉협회 정현식 교육부장(이하 정 부장)은 “웰 다잉이나 죽음에 대해 공부하는 건 단순히 죽을 때 편안하게 잘 죽자는 의미가 아니고, 이로 말미암아 궁극적으로 삶을 제대로 살자는 취지가 더 강하다”고 답했다. 이는 연구결과에서도 드러난다. 2007년 경북대학교 김은희 석사의 ‘죽음준비교육 프로그램이 대학생의 삶의 만족도와 죽음에 대한 태도에 미치는 영향’ 논문에 따르면 △죽음과 출생(삶)에 연상되는 단어 나열하기 △장례식에 초대할 사람 명단 작성과 초대장 만들기 △유언장 혹은 작별편지 쓰기 등의 죽음준비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한 대학생 그룹과 수강하지 않은 대학생 그룹을 비교했을 때 삶의 만족도에서 차이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삶의 만족도를 5점 척도로 수치화했을 때, 죽음준비교육 프로그램을 수강한 대학생 그룹은 수강하지 않은 대학생 그룹보다 0.27점 높은 3.47점으로 나타난 것이다. 지난 2016년, 서울대학교병원 암통합케어센터 윤영호 교수팀이 △암환자 △암환자 가족 △의사 △일반인 등 4,17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죽음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응답자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1.2배에서 1.4배가량 좋은 정신건강상태를 나타냈다. 이처럼 죽음을 인지하고 공부하는 건 삶의 만족도와 정신건강 향상에도 밀접한 관련을 보이며, 이를 종합해보면 죽음을 잘 맞이하는 게 곧 ‘삶을 잘 사는 길’이라는 것이다.

터부가 존재하는 사회

우리 사회에서 웰 다잉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된 건 지난 2월「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되면서부터다. 「연명의료결정법」이란, 임종을 앞둔 환자가 무의미하게 생명만을 연장하는 일부 의학적 시술을 스스로 중단할 수 있게 하는 제도로, 보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한 취지다. 실제로, 지난달 시장조사전문기업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죽음 및 연명의료결정법 관련 인식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65.8%가 ‘고통을 계속 겪으면서 사는 것보다 인간답게 죽는 게 더 나은 선택’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의식과는 사뭇 다른 것으로 보인다「연명의료결정법」시행 이후 실제 임종기 환자들 중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연명의료중단이 이행된 경우는 27건으로, 연명의료계획서 작성자의 약 25.2%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식과 현실의 괴리가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사회가 죽음을 터부시한다는 것에 있다. 병원 건물의 층수를 표기할 때, 숫자 ‘4’와 ‘죽을 사(死)’의 발음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4층 대신 F층으로 표기하거나 아예 4층 표기를 제거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 부장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죽음에 관한 터부에 대해 “병원 층수 표기 사례에서도 나타나듯이 웰 다잉 교육을 진행하다보면 아직까지 많은 분들이 죽음을 터부시하고 회피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최근 「연명의료결정법」이 통과되고 그에 따라 죽음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웰 다잉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긴 했지만 이처럼 아직 사회에 존재하는 죽음에 대한 터부가 완전히 깨지지는 못했다. 정 부장은 “여태까지는 사회에서 주로 삶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건 ‘죽음’에 대한 논의다. 삶의 질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죽음의 질을 높이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죽음의 질이 상당히 낮은 편이다. 따라서 죽음과 관련된 부분을 교육하고 홍보하는 건 매우 중요하다”며 웰 다잉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사진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위치한 한 병원의 엘리베이터 층수 표기 방식이다. 4층 표기가 제거돼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죽음과 친구하기

그렇다면 대학생들이 죽음을 생각해볼 수 있는 방법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본지에서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소개한다.

웰 다잉 10계명 생각해보기

웰 다잉 문화 체험하기

웰 다잉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서울시에서는 2015년부터 서울시립화장장이나 망우리공원을 둘러보는 ‘추모힐링투어’를 진행하고 있으며, 각종 웰 다잉 문화 관련 센터에서는 웰 다잉 문화 체험을 진행하고 있다.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유언장 작성 △입관 체험 △영정사진 촬영 △임종 체험 등이 있다. 효원상조의 지원을 받아 웰 다잉 문화 체험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효원힐링센터 정용문 센터장은 “웰 다잉 문화 체험에 관심 있는 대학생 및 젊은층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다. 이용객들은 대개 체험 후 삶의 가치와 생명의 소중함을 느꼈다고 말씀하신다”고 전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하기

사전연명의료의향서란 임종기에 접어들었을 때를 대비해 자신의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사를 작성하는 문서를 의미한다. 이는 △연명의료중단 등 결정 △호스피스의 이용 계획 △환자 사망 전 열람허용 여부 등의 항목으로 구성돼있으며,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서 지정한 전국 234개의 등록기관에서 만 19세 이상 성인은 누구나 작성할 수 있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분증을 지참한 채로 직접 방문해 상담가로부터 면 대 면으로 10분 이상 설명을 들어야 한다. 또한, 담당자로부터 안내사항을 들었으며 해당 문서를 본인이 작성했다는 서명을 해야 하고 추후에 변경하거나 철회할 경우에도 등록기관에 직접 방문해야 한다. 이렇게 작성된 본인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연명의료포털에서 조회 가능하며 추후 임종 직전 단계에 이르렀을 때는 담당의사가 조회할 수 있다. 조회 결과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을 경우 다른 전문의사와 함께 건강상태를 두 번에 걸쳐 검토한 후 작성자의 뜻대로 조치를 취한다.

▲ 사진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서식 중 일부다.

기자의 작성 후기

본지 기자 또한 죽음을 고찰해보고자 부천시 보건소를 찾았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러 왔다고 하자 담당자인 임보라 주무관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상담실로 들어서자마자 임보라 주무관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안내책자를 건넸다. 약 15분가량 사전연명의료결정이 무엇인지, 작성함으로써 얻는 효과는 어떠한지, 각각의 연명의료 방법에 대한 설명을 상세하게 듣고 나니 자연스레 죽음에 대해 떠올리게 됐다. 또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직접 중단할 연명의료를 체크하면서는 뜻밖의 활기를 느끼기도 했다. 이 또한 건강하게 살아있기에 걱정 없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거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작성을 마치고 보건소를 나서자마자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곽태훈님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시스템에 등록되었습니다.’ 이 문자는 지우지 않으려 한다. 보관해뒀다가 삶에 대해 권태가 들 때마다 꺼내보고자 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며 경험한 죽음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며 삶에 대한 활기를 느낄 수 있기에.

지금도 죽음에 한 발짝 다가가는 그대에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즉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다. 웰 다잉은 죽음을 권장하는 게 아니다. 단지 삶과 죽음은 결부될 수 없다는 진리를 상기시킴으로써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죽음을 기억해서 남은 삶을 겸손하고 후회 없이 보내라는 의미다. 한림대학교 생사학연구소 오진탁 소장은 저서 「마지막 선물」에서 ‘웰빙(well-being)을 위해서라도 웰 다잉(well-dying)을 공부해야하며 그 출발점은 나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고 저술했다. 그의 말처럼 이 글을 읽는 지금도 죽음과 한 걸음 가까워진 당신, 남은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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