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6호]E.H.카 「역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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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6호]E.H.카 「역사란 무엇인가」
  • 최보기 북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3.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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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古來)로, 큰 인물은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에 투철했다.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고, 그 바탕에서 현재가 원하는 정의를 실현하려는 의지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아는 것이 시작이다. E.H.카(Edward Hallett Carr)의 고전「역사란 무엇인가」에 그 답이 있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언도 이 책에서 시작됐다. 어떤 이들에게 역사는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를 해석, 평가하는 것이라 언제든 변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역사는 승자의 차지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이 말을 살짝 비틀기도 한다. 시오노 나나미의「로마인 이야기」가 승자였던 로마의 입장을 대변할 뿐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과 같은 맥락이다.

카에 따르면 과거와 미래는 동일한 연장선상에 있다. 현재는 과거와 미래의 중간에 위치한 추상적 지점일 뿐이다. 즉, 시간은 과거와 미래가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 과거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이해가 있어야 미래를 통찰할 수 있는 안목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의 중요한 역할은 바로 과거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지, 현재의 이해를 다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역사가 어떻게 생성되는지를 밝히는 것이 아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께서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영국의 토인비가 ‘도전과 응전’이라고 한 역사의 개념에 잇대서 그런 역사를 연구하는 역사가(歷史家), 역사인식을 제대로 해야 하는 지식인과 청년, 정치가 등이 역사를 이해하는, 올바른 자세를 이 책은 이야기 한다.

사실(Fact)의 법칙을 연구하는 자연과학자들은 ‘역사는 없는 것’이라 무시하기도 한다. ‘신라가 아닌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됐을까?‘ 같은 역사의 가정과 추론되는 결과가 부질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카가 존중을 받는 이유는 “그러나 역사도 충분히 자연과학이나 수학처럼 일반적인 법칙을 이끌어 내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역사가들은 무거운 사명감을 가지고 연구에 임해야 한다”는 논지를 깔끔하게 전개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역사는 지식이다. 지식은 목적이 있어야 한다. 목적 없는 지식은 공허하다. 저자는 인간의 진보나 발전, 더 나은 삶을 이끌어 주는 것이 역사의 목적이라고 본다. 과거의 전통으로부터 관습과 교훈을 넘겨받아 유복한 미래를 설계하는 통찰력을 주는 것이 역사다. 따라서 역사가는 자신이 포함된 현재 사회의 목적을 염두에 둔 채 과거의 ‘사실’을 수집하고 역사적 사실이 될 만한 ‘가치’ 있는 것을 엄선한 후 미래 통찰에 도움이 되는 과학적인 ‘해석’을 내놓아야 한다. 수집, 엄선, 해석이야말로 역사가의 중요한 능력이다.

해석이 끝나면 역사가의 역할도 끝난다. 이제 역사적 해석을 받들어 사람들을 조직하고 선동해서 유복한 미래로 나아가는 것은 그 시대 리더들의 몫이다. 여기서 카는 시대정신을 제대로 읽는 리더를 만나야 따르는 무리들의 미래도 편해진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유독 현대를 사는 인류가 이전에 없었던 위기의 시점을 지나고 있다고 불안해한다. 정신의 진전을 압도하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인류 스스로 인류의 말살을 초래할 수도 있는, 어리석은 시대란다. 그만큼 미래에 대한 리더의 안목이 중요한 때라 저자가 ‘백마 탄 의인’을 기다리며 이 책을 쓴 게 아닐까 싶다.

반복하건대, 리더가 될 재목은 일찍이 청년시절 역사의 교훈으로부터 사회와 시대를 관통하는 능력을 얻어야 한다. 그것을 통찰력이라고 한다. 마이클 샌델의 베스트셀러「정의란 무엇인가」에 나오는 많은 리더들이 이 책에도 나온다. 책은 읽을수록 서로 엮이면서 인식의 지평을 넓혀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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