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4호(개강호)] #ME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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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4호(개강호)] #METOO.
  • 권민서 기자
  • 승인 2018.03.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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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TOO(나도 그렇다)’.

2007년에 성폭력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미국의 사회 운동가 타라나 버크가 내걸은 슬로건이다. 이 슬로건은 지난해 10월 할리우드 거물급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행 폭로가 시작되며 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트위터에서 #ME TOO(미투) 해시태그를 제안하며 대중화됐다. 알리사 밀라노의 트윗 이후 24시간 만에 약 50만 건의 트윗이 미투 해시태그를 달고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은 미투 운동은 지난 1월,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범죄 사건 폭로를 시작으로 국내에서도 불이 붙었다. 서지현 검사는 검찰 내 네트워크에 A4 29페이지 분량에 달하는 긴 글을 올리며 말미에 #ME TOO 해시태그를 달았다. 이것을 기폭제로 사회 각지 다양한 분야에서 성폭행 고발이 시작된다. 오랜 기간 드러나지 않은 채 어둠 속에서 공공연히 행해져 왔던 문제를 타파하기 위한 미투 운동의 시작. 그리고 그 끝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까?

 

우월한 지위의 남용

 

지난 1월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이와 관련한 고발들이 쏟아져 나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은 지난 1월 30일 페이스북에 게시한 글의 말미에 #MeToo와 #WithYou 해시태그를 남겼고, 이후 CBS 라디오에 출연해 취업을 하려고 했던 로펌의 대표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임은정 서울북부지검 부부장검사는 검찰 내부통신망을 통해 15년 전에 부장검사로부터 성추행을 겪은 사실을 공개했다. 임 검사는 대구지검 경주지청에서 근무할 당시인 2003년 5월, 회식 후 귀가하는 과정에서 직속상사인 검사로부터 강제로 입맞춤을 당하는 등의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31일에는 직장인 커뮤니티 어플 ‘블라인드’에 아시아나항공 박삼구 회장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글이 올라왔다. ‘박삼구 회장의 성희롱을 더 이상은 참지 말자’는 제목의 해당 게시글은 박 회장이 2016년 4월과 지난달에 직원들에게 “백허그 안 해주냐? 다음엔 해 줘라”라는 발언을 했으며, 신년사에서는 “누가 나서서 허그해주면 성희롱이 아니고, 내가 하면 성희롱이니 누군가가 허그해주길 기다린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한국성폭력상담소의 김진아 성문화팀 활동가는 실제로 직장 내 성희롱 등 수직적인 관계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에 대해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성 범죄들을 직장 내 성폭력으로 보는데, 실제로 이에 대한 성폭력 상담이 많이 접수된다”고 밝혔다. 또한, 분야의 폐쇄성을 악용한 성범죄 사례 고발도 최근 들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지난 2016년 10월, 트위터 상에서 ‘#00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를 실시간 트윗에 올리며 시작되었던 문화예술계 성범죄 사건은 최근 미투 운동이 일며 재주목을 받고 있다. 최영미 시인은 지난 1월 30일 SNS를 통해 문단에서 성추행, 성희롱 문화가 만연해 있었다며 원로시인 고은의 성범죄를 고발했다. 대학 내의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도 수직 관계를 악용한 성범죄의 고발이 이어졌다. 청주대학교 공연영상학부 부교수인 배우 조민기는 지난달 20일 한 신인배우의 페이스북 글로 인해 성추행 사실이 알려지게 됐고, 이와 함께 해당 학과 학생들의 제보도 이어져 현재 경찰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문단 내 성폭력의 고발과 해결 촉구에 앞장서고 있는 단체 ‘탈선’의 오빛나리 대표는 “이러한 상황을 조장한 가장 큰 문제점은 문단의 경우 등단만이 유일하게 작가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학습되는 구조, 분위기, 성폭력에 둔감한 사회 때문이다. ‘예술 하는 사람은 원래 그래’, ‘문학을 하려면 성적 일탈을 해야지’라는 등의 성폭력을 성폭력으로 부르지 않는 사회가 큰 원인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와 같이 미투로 고발된 성범죄 사건의 공통점은 모두 수직적인 권력 관계에서 발생했다는 것이다. 수직적으로 정의된 사회관계에서 가해자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피해자에게 범죄를 저지른다. 실제로 지난 2016년, 직장인 1,15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성희롱 실태분석과 형사정책적 대응방안 연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45%가 현재 재직 중인 직장에서 한 번이라도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남성은 35%, 여성은 52%에 달하는 수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성희롱 가해자와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서 복수응답으로 고용주를 제외한 직장상사가 51.7%, 고용주가 13.7%를 차지해 전체의 과반수 이상이 권력관계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외에는 △직장동료 37.1% △거래처직원 14.2% △직장부하직원 7.1%가 뒤를 이었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978년 간행된 조세희 작가의 연작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1970년대 빈민 노동자 가족의 삶을 통해 불합리하고 억압적인 사회를 잘 드러내는 작품으로, 주인공인 난쟁이 아버지와 가족들을 통해 사회의 최고 약자를 대변하고 있다. 노골적인 사회 묘사로 인해 불온서적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40년 전 사회상을 고발한 이 소설과 현재의 사회 모습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사회적으로 큰 권력이 있다고 여겨지는 검찰청, 검사들마저도 성범죄에 있어서 자유롭지 못했다. 현재 성범죄 사실이 속속들이 밝혀지는 것들도 모두 당한지 시간이 오래지난 것들이다. 혼자서 말 못하고 앓다가 한 사람의 용기 있는 선택으로 숨겨져 있던 것들이 모두 터진 것이다. 누군가가 ‘터뜨려야’만 다른 이들이 따를 수 있었고, 몇 사람인지 셀 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이 ‘단체로’ 행동을 하자 사회적으로 커다란 여파가 생겼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단 소리다. 피해자들의 직업군도 아주 다양하다.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가졌다고 여겨지는 PD, 검사, 영화감독, 교사, 경찰 등등 어떤 제외도 없다. 성범죄 앞에서 이들은 모두 난쟁이에 불과했다. 오빛나리 대표는 “문단 내 성폭력 고발을 보고 저 일은 고발자 개인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을 수 있는 일이었고 누구도 비슷한 폭력의 매커니즘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는 생각에 꾸려지게 된 연대가 탈선이다. 고양예고 문예창작과 졸업생으로만 이뤄져 있는데 최근 이러한 정체성에 한계를 느껴서 현 탈선 운영진과 대표가 모여 ‘우롱센텐스’라는 팀을 결성했다. 문학하기, 그리고 더 넓은 연대의 의미를 새로 쓰기 위함이다”라고 전했다.

 

침묵하고 조장하는 사회

 

그렇다면, 왜 피해자는 숨으며 오히려 가해자가 아무 일 없다는 듯 잘 살아가는 이상한 사회구조가 형성됐을까? 우선 피해자들에 대한 후속조치가 후진적이며, 성범죄 신고를 하더라도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들 수 있다. 여성가족부의 2015년 성희롱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희롱을 당한 경험이 있는 남녀 500명 중 392명에 달하는 78.4%가 성희롱 피해에 대처하지 않고 ‘참고 넘어갔다’고 응답했다. 그에 대한 이유로는 △48.7%가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서’라 응답했으며 △48.2%는 문제를 제기해도 해결될 것 같지 않아서라고 답했다. 성범죄 사건에 대한 후속조치가 잘 닦여 있지 않다는 것을 나타내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켰던 한샘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는 한 사람에게 여러 차례나 성폭력이 일어나는 것은 이유가 있다는 2차 가해에 시달리며 결국 자진 퇴사를 선택했고, 아동 구호 기구인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서는 고위 간부가 직원에게 상습 성희롱을 했지만 가해자는 면죄부를 받고 내부 고발자가 해고된 사실이 지난해 12월 밝혀졌다. 또한, 서지현 검사는 경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에 올린 글에서 가해자에게 사과나 연락을 받지 못한 것은 물론, 부적절한 감사 지적 및 인사 불이익까지 받았다고 폭로했다. 가해자인 안태근 전 검사장이 검사의 인사를 맡는 위치라는 점에서 피해자에 대한 인사 불이익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현재 검찰은 이와 같은 의혹에 관한 조사에 주력하고 있다.

이렇듯 후진적인 후속조치와 더불어, 최근 드라마나 웹툰 등의 대중매체에서도 이를 조장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지난해 불거진 한샘, 현대카드 등의 사내 성추행 사건은 중년 상사들이 20대의 초년생들에게 사랑을 내세우며 성범죄를 저지른 사건이다. 게다가 앞선 여성가족부의 직장인 7,844명과 성희롱 대처업무 담당자 1,615명을 대상으로 한 ‘2015년 성희롱 실태조사 결과’에서 20대와 30대가 각각 7.7%, 7.5%의 비율로 성희롱 피해를 입었다고 답

한 비율이 평균보다 높았으며, 성희롱 방지 업무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사례 68건을 조사한 결과에선 가해자 연령이 40대 이상이 73.8%를 차지하며 압도적인 비율을 나타냈다. 직장 내 성희롱이 대체로 20~30대의 여성 초년생을 상대로 40대 이상의 상급자들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최근의 드라마는 어린 여성과 나이 많은 남성의 로맨스물이 만연한 추세다. 지난해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도깨비>는 여자 주인공의 나이가 19살 미성년자로 설정되고 남자 주인공을 ‘아저씨’라고 칭하는 것으로 논란이 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오는 21일 방영예정인 드라마 <나의 아저씨>는 러브 라인이 있는 남녀 주연의 나이 차가 18살에 달하며, 방영예정 드라마인 <미스터 션샤인> 남녀 배우의 나이 차 역시 20살에 달한다. 영화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 올해 개봉예정인 영화 <레슬러>는 한 여대생이 자신을 짝사랑하는 친구의 ‘아버지’를 사랑하게 되는 삼각관계 로맨스를 그려낸다. 사회 초년생에 대한 중년 남성들의 성범죄가 만연한 현 상황에서 이러한 대중매체의 흐름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에 이바지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지난달 8일 더불어민주당은 ‘성 평등 정책조정회의’를 진행하였으며, 미투 운동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우원식 대표는 회의에서 “오늘 회의는 서지현 검사의 용기 있는 고백으로 확산되고 있는 미투 운동을 성원하기 위해 성 평등회의로 진행될 것이다”라며 “조직 내 침묵의 카르텔을 깨고 범죄를 자유럽게 고발할 환경을 만들어, 책임 전가 등의 3차 피해가 없도록 해야한다”고 전했다. 또한, 광주시에서는 여성차별, 성희롱, 성폭력 등의 인권침해 상담과 조사를 점담하기 위한 여성인권보호관의 정책 계획을 밝혔다. 이와 같은 정치계의 움직임을 통해 한국의 미투 운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임은정 검사는 지난달 5일 페이스북을 통해 “서지현 검사의 일은 한 개인의 문제, 남자 상사들과 여자 후배들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에서 강자와 약자의 문제”라며 “성폭력 전수 조사처럼 부당한 지휘권 오남용 사례에 대해 전수 조사를 실시해 달라”고 전했다. 또한, 서지현 검사는 검찰 네트워크를 통한 최초의 고발에서 “누구도 공격하고자 하는 의사가 없다”며 “원하는 것은 성폭력 피해자가 어느 조직에 있든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피해 사실을 호소한 후에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조직문화, 사회적 인식 개선”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성폭력을 사회에 고발하고 적극적으로 나온 이유는 본인을 성추행한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서, 단지 그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이러한 상황을 겪게 될 수많은 ‘난쟁이’들을 양산하지 않기 위해서다. 한국의 미투 운동을 통해 오랜 기간 사회에 잠식되어 있던 추악한 면을 도려내고 밝은 사회가 형성될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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