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백마문화상 비평부문 가작 - 새로운 미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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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백마문화상 비평부문 가작 - 새로운 미의 기준
  • 박유진(철학) 학우
  • 승인 2017.12.03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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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N에서 방영하는 프로듀스 101 시즌2의 인기가 한창이다. 이 방송은 시청자가 직접 방송에 출연하는 연습생에게 투표하여 득표율이 높을수록 마지막까지 방송에 출연하고 그렇지 못하면 방출되어 나가는 다소 잔인한 프로그램이다. 시즌1 방영당시 이 프로그램은 지나치게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고 아이돌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다며 폐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목소리가 많았다. 특히 실력은 더 뛰어나지만 외형적으로 예쁘지 않아서 다른 연습생에 비해 낮은 득표를 얻는 부분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비난 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반응이 무색하게 시즌2가 방영되자마자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다. 이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소속사 연습생들은 화려한 외모와 끼를 발산하면서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이런 사태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도 많다. 미디어에 현혹되어 아이들이 다양한 꿈을 갖지 못하고 그저 인기 있는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한 매체에서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장래희망을 조사한 결과 1위는 아이돌이나 운동선수 등 ‘문화체육인’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영향 때문인지 요즘은 초등학생에게도 화장이 흔한 일이 되었다. 2014년 발표된 '초등학생들의 화장품 사용실태 및 구매 행동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초등 5·6 학년 586 명 중 약 76%가 화장품을 사용해봤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에 따라 학교에서도 학부모에게 ‘학생 화장 허용서’를 받는 새로운 문화가 등장했다. 여기서 학부모가 허용한다면 학생들이 화장을 해도 제재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이 화장하는 것을 하나의 또래문화로 인정하고 어린이 화장품을 공식적으로 출시하여 아이의 피부에 맞는 건강한 화장품을 만들어 주는 추세이다. 이런 상황을 보고 겉모습보다는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며 이를 부정적으로 보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다. 그런데 겉모습에 열광하고 가꾸는 모습이 정말 우리 사회에서만 발생한 부정적인 모습일까?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는 우리나라의 특성상 남에게 보일 자신의 모습을 가꾸기 위해 화장을 하거나 심지어 성형을 하는 움직임이 매우 활발하다. 특히나 화장은 여성들 사이에서 매일 필수적인 요소이다. 화장을 하는 주체가 주로 여성이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여성의 외모는 무조건 아름다워야 한다는 지나친 억압이자 차별의 산물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거기에 맞서 외부의 압력이 아닌 자기만족을 위해 화장을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만약 자기만족이라고 한다면 화장을 하는 것이 어떠한 만족을 주는 것일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는 살 수 없기 때문에 남들과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데 이것은 고도의 지적인 활동이다. 상대방의 불확실한 마음을 짐작하면서 자기 자신도 표현해야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에게 나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단어를 선택하고 어조를 가다듬으며 표정관리를 한다. 여기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남에게 내가 어떻게 보일지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알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은 바로 거울을 보는 것이다. 거울을 보면서 특정 표정을 연습하고 반복해보며 자기 자신의 모습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갖는다. 사람은 5세 이상이 되면 이러한 행동을 의식하면서 행할 수 있다고 한다. 거울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동물은 자의식을 가진 인간밖에 없다. 다른 동물은 거울을 보면 그 속에 비친 것이 자신인지 알아차리지 못해 거울 속 자신과 교류하려고 하는 사회적인 행동을 않으며, 알아차린다고 해도 거울 속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가꾸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중에 거울 속의 모습인지 아닌지 알아차리는 동물일수록 지능이 높고 공감능력도 뛰어난 종이라고 한다. 거울을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종에 비해 영특한 종인데 여기서 더 나아가 화장을 한다는 것은 더 높은 차원의 상위 인지를 요한다. 상위 인지란 메타인지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자신이 어떤 일을 하는지 인식하고 거기에서 얻은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묻고 깨달으며 반성하는 능력이다. 화장을 하면 자신의 얼굴의 좌우대칭을 맞추고 부족한 점을 보완한다. 특히 거울은 타인이 나를 볼 때의 모습과는 좌우가 반대로 나타나는데 화장을 통해 좌우대칭을 맞추면 좌우가 뒤바뀐 상이 아닌 동일한 상, 즉 타인이 나를 보는 상과 닮아간다. 상대방이 나를 보는 시선을 더 정확하게 인식한 의사소통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물론 화장하는 것으로 상대방과 나의 소통이 더 활발해지리라는 것은 조금 과장일 수 있으나, 이제부터 만날 누군가를 위해서 사회적인 자기를 구축하는 수준 높은 의식임에는 틀림없다. 만약 화장이 사회적 활동이라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도 인간을 즐겁게 해주는 일이라는 증거는 또 있다. 거울을 보면서 거울속의 자신과 눈을 마주치게 되는 데 인간은 이렇게 눈이 마주치는 행위를 할 때 도파민이 분비된다고 한다. 어떤 의미의 소통을 의미하는 눈 맞춤은 본능적으로 사회적 동물인 인간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심지어 그 상대가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도 우리의 뇌는 기뻐한다. 그리고 거울 속의 상대가 맨얼굴에서 화장을 통해 조금 더 아름다운 외형이 될수록 우리의 쾌락의 정도는 더욱 커진다. 화장이 자기만족이라고 하는 것의 과학적 원인이 밝혀진 셈이다.

이런 주장은 화장을 하는 것은 호르몬의 작용으로 사람을 즐겁게 만드는 단순히 쾌락을 쫓는 행위라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특히나 쾌락을 향한 열망은 상당히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마약하는 사람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그 약물을 타인에게 권장함으로서 사회를 추락시킨다는 인식을 차치하더라도, 마약하는 사람 자체를 상당히 퇴폐적이고 혐오스러운 대상으로 보는 것이 사실이다. 쾌락을 향한 무조건적인 열망이 결국 그를 병들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모중독이라는 말이 있다. 외형을 가꾸면서 얻은 보상, 이를테면 타인에게 호감을 주어 느낀 사회적 행복이나 아름다운 자기모습에 대한 우월감 등에 중독되어 삶이 지나치게 외모에만 치우쳐진 병적인 증상을 의미한다. 하지만 특정한 행위에 집착하는 병적인 증상은 어느 행동에나 흔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외모에 관한 관심도가 높은 사회에서 외모중독은 자주 발현되는 증상일 것이다. 하지만 특정 쾌락을 추구하는 행위가 절제력만 갖춘다면 그것을 비판할 수는 없다. 또한 외모에 대한 치우침과 편견을 무조건적으로 비난해서도 안 된다. 인간이 느끼는 본능적인 증상이기 때문이다.

외모를 가꾸는 행위가 상당히 자연스럽고 진화된 행위라는 증거는 또 있다. 얼마 전 고고학자들에 의해 달팽이 껍질들이 끈으로 꿰어진 장신구가 발견되었다. 이 장식물은 7만 5000년 전의 것으로 문명이 발달하기도 전의 일이다. 미디어 따위는 있지도 않은 7만 5000년 전의 사람들도 달팽이 껍질 구슬을 이용하여 다른 사람들보다 돋보이는 효과를 내며 시선을 끌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아름다움을 향한 열망이 단순히 매체로부터 세뇌당한 움직임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본능이라는 것이다. 수렵과 채집, 사냥을 하던 시대부터 인간은 특정한 인간상에 끌렸을 것이다. 남들보다 더 멀리 사냥물을 발견할 수 있는 높은 신장을 선호했을 것이고 더 넓은 시야를 가능하게 해주는 큰 눈을 선호했을 수 있다. 또 남성이 여성을 볼 때 임신의 확률을 높여 다음 세대로 인류를 유지하게 해주는 넓은 골반에 이끌렸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증거를 통해 밝혀졌다. 이와 같은 인간상에 부합하지 못하는 외형은 자연적으로 도태되고 선택받은 유전적 외형만이 살아남는다. 그것이 이어져 인간상에 대한 선호는 수천 세대에 걸쳐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특정 외형을 선호하거나 또는 자신도 이성으로부터 선택받을 가능성이 높은 외형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열망은 생존활동을 위한 본능적인 활동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외모를 향한 열망을 비난할 수 없다. 비록 그것이 초등학생의 화장을 용납해주고 외모를 위해 건강을 버리는 행위를 용인해 주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이렇게 외모를 가꾸는 행위가 인간의 사회적 지성을 발휘하는 높은 수준의 활동인 것을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이에 대한 반감이 아직 남아 있을 수 있다. 특유의 개성을 잃고 한 가지 ‘미’의 기준에만 자신을 맞춘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쓰이는 강남미인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같은 병원에서 만들어진 똑같은 얼굴을 비난하는 말이다. 물론 지나치게 편향된 얼굴, 그래서 너무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똑같은 얼굴은 당황스러움을 자아내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런 얼굴을 한 이들을 비난할 수는 없다. 황금비율이라고 불리는 1.618의 숫자는 신성한 비율, 피보나치비율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이것은 건축물에서부터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작은 물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황금비율에 가까울수록 자연스럽게 편안함을 느끼고 강한 미감(美感)을 자아내는 것이다. 이 비율은 얼굴에도 적용되어 얼굴의 가로와 세로의 비율이 이 숫자에 가까울수록 미에 가장 부합하는 얼굴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특정한 얼굴을 분명하게 원하고 있는 사회에서 자신만의 개성을 유지하라거나, 독특하고 참신함을 가지라는 소리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한 가지 ‘미’만 추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일까?

 

누구에게나 만족감을 주는 맛의 지점을 바로 “지복점”이라고 한다. 모두를 만족시킬 최고의 맛을 찾기 위하여 많은 업계에서 수없이 많은 실험을 반복했지만 실패했다. 1970년대 초반 가장 완벽한 맛의 파스타 소스를 찾아달라고 의뢰를 받은 실험 심리학자 하워드 모스코비츠는 한 가지 맛을 찾는 대신에 다양한 맛의 소스를 통해 사람들에게 실험을 했고 그 결과 사람들은 모든 소스에 매우 고르게 점수를 매겼다. 사람들의 취향을 자세히 나눌수록 만족도가 더욱 높아진 것이다. 이로 인해 지복점이 아닌 ‘다양한 소스’가 새로운 표준이 되었고 현재까지도 파스타의 소스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한 가지의 특정한 기준에서 벗어나 다양성이 업계가 주목하는 방향이 된 것이다.

현대의 인류는 동물이 우리를 위협할 신변의 위험에서 벗어났고 그들을 사냥해야 할 필요도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신체적인 결함도 극복할 수 있는 의학적 기술을 갖추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더 멀리보기 위한 뛰어난 눈과 신장, 아이를 더 잘 낳을 수 있는 외형적 골반이 없어도 얼마든지 원하는 바를 이루면서 살 수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미의 기준은 특정한 외형에 집중되어 있다. 인류가 만들어진 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외모에 관한 집착을 우리세대에서 끊을 수는 없다. 이것은 본능적이고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가 아닌 다양한 외모에 대한 집착은 가능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어린이들이 보는 디즈니 만화영화에서부터 특정한 미에 대한 아름다움을 강요한다. 아주 어린나이에서부터 세뇌가 시작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비난의 목소리를 내기 전에 다양성을 인정해주는 움직임이 먼저 있어야 한다. 디즈니 만화에서 흑인공주가 등장한 것도 아주 최근의 일이다. 아이들이 보는 매체에서부터 이렇게 차별이 등장하는 데 개인이 여기서 벗어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 이제 사회적인 차원에서 추함과 미를 결정짓는 것을 멈추고 모든 것에 깃들어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일을 권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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