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한 여성경호원 고은옥(경영 97) 대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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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분야를 개척한 여성경호원 고은옥(경영 97) 대표를 만나다
  • 최가현
  • 승인 2017.11.20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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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도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Q. 경호원이라는 꿈은 언제부터 가지게 되었나요? 
A.처음부터 경호원을 할 생각은 없었어요. 아버지 가 빨리 돌아가시면서 가족을 지키고 싶다는 마음에 오히려 경찰이나 군인이 되고 싶어 했죠. 하지만 그 당 시 경찰과 군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여성을 뽑지 않았 기 때문에 차선책으로 선택했던 게 경호원이었어요. 수능 끝나면서부터 등록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로 하던 경호원이 천직이 되어버린 거죠.


Q. 경영학과로 진학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원래 가고 싶었던 곳은 용인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였어요. 하지만 그 당시 언니는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 고 아버지는 계시지 않아서 가정 상황이 그리 좋지 않 았어요. 그래서 제가 떠나면 엄마와 어린 여동생만 남 게 돼서 기숙사를 가거나 먼 곳으로 통학하기에는 무리 였고, 학비를 직접 벌어서 대학에 다녀야 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하기에도 어려웠어요. 그래서 여러 대학에 서 합격 소식을 받았음에도, 서울에 있는 명지대학교를 선택하게 됐죠.


Q. 대학교 재학 중 어떤 학생이었나요? 
A. 거의 졸업하기 위해서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었죠. 재학시절 경호회사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기 위해 18학점을 주야간 교차수업으로 채웠어요. 또한, 학교 생 활을 하면서 자격증을 따다보니 아무래도 학교생활보다 는 자기계발에 더 집중했던 것 같아요. 학교와 일을 병행 해서 학교에 평상복을 입고 오기보다 검은 정장을 입고 007가방을 들고 등교할 때가 많았죠. 그렇게 바쁘게 살면 서 2년 만에 학교를 졸업했어요. 그래서 대학생활에 아쉬 움도 많이 남아요. 잦은 해외출장으로 대학생 때만 할 수 있는 일을 많이 하지 못했거든요.

Q. 경호하면서 경호학과를 나오지 않은 것이 힘들 지 않았나요? 
A. 저는 오히려 플러스 알파적인 부분이었다고 생각 해요. 보통 대부분의 경호원은 운동만 한 친구들이 많 은데 저는 남들과 다르게 운동뿐만 아니라 경영을 함께 전공해서 더 좋았고 나중에 이렇게 사업을 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어준 것 같아요.


Q. 경호 일을 하던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 을까요? 
A. 어느 한 사람을 지목하기보다는 평상시에 만날 수 없는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이나 국내외 다양 한 정치, 교육, 사업 분야 등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게 다 좋았던 것 같아요. 정말 많은 사람을 경호 하며 에피소드라기보다는, 한 명 한 명을 만나면서 얻 을 수 있었던 게 각각 달랐던 것 같아요. 의뢰인의 분야 가 한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부를 하면서 경호를 하게 되는데 함께 다니다 보니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읽는다고 하잖아요. 그렇게 곁에서 함께하면서 조금이나마 각 분야에 대해 알게 된 것 같아요.

Q. 여자 경호원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 과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A. 학교폭력이나 컴퓨터 게임 중독인 아이가 학교를 나가지 않다가 저희와 함께하면서 어느 순간에 마음을 열고 누나라고 부르며 학교에 갈 때 뿌듯했어요. 그 외 에도 스토킹 피해자가 외부와 단절하고 살았는데 경호 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정신적인 부분도 치유되어 다 시 평소와 같은 생활을 시작할 때, 다문화가정을 꾸려 나가는 아내가 남편의 폭력으로 쉼터 같은 단체로 도망 나온 경우들이 있는데 그 피해여성이 다시 나와서 생활 할 때 등 저의 존재 가치를 느꼈을 때가 뿌듯했던 순간 같아요. 반대로 힘들었던 순간을 이야기하자면 사실 전 체적으로 다 어려웠던 것 같아요. 경호원 대부분이 남 자들이었기 때문에 여자 경호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많았어요. 그래서 여성 경호원에 대한 편견을 깨는 게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또 여행은 물론이고 가족의 생일, 주말, 명절 등 개인적인 시간이 없었던 게 힘들었 죠. 저희는 대부분 의뢰인의 일정에 맞추어 다니기 때 문에 밥과 화장실, 잠 등을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어요. 몸이 다치는 것도 다반사이기 때문에 저 역시 현재 무 릎파열과 손가락 하나가 신경이 없어진 상태예요.


Q. 설립한 회사의 첫 이름이 ‘퍼스트레이디’였는데, 특별한 뜻이 있나요? 
A. 퍼스트레이디는 영부인이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 는데, 그 이면에는 각계각층의 최고의 여성이라는 뜻 도 있어요. 이런 의미로 제가 처음 회사를 시작할 때 지 었던 이름이죠. 하지만 의뢰인 중에 회사 이름 때문에 여성 경호원만 회사에 있고 여성만을 위한 경호 회사라 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때, 이름의 중요성을 깨달아서 회사명을 ‘퍼스트 세큐리티’로 바꿨어요. 이 런 부분도 일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좋은 경험 같아요.


Q. 여자 경호원만의 장단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아무래도 경호를 부탁한 사람들과 공감을 하면서 서로 조금 더 편안한 관계로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또한, 남자경호원들은 성별이 달라서 들어갈 수 없는 공 간도 있는데 그 부분도 여성이기에 가능한 부분이 있어 서 장점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건장한 남자경호 원들이 오면 위화감이 형성될 수도 있는데 여성이다 보 니 부드러운 인상을 줄 수도 있고요. 그리고 단점을 꼽 자면, 부드러운 인상을 주다 보니 오히려 겉으로 보았 을 때 상대적으로 남성 경호원보다 덜 미더워하시는 부 분이 있는 거 같기도 해요. 그러나 한번 맡겨보시고 다 시 여자 경호원을 찾는 분들도 있죠.


Q. 재학 중일 때부터 쉬지 않고 일을 했는데, 그간 휴식은 없었나요? 
A. 그 질문을 받아보니 정말 쉬지 않고 일했다는 게 느껴지네요. 그동안 정말 쉼 없이 일을 많이 했던 것 같아 요. 경호원으로의 삶이 21년 차가 되어가니까요. 21년 동 안 경호원으로 살아가다 보니 어려운 일도 많았죠. 하지 만 그때마다 가족이 힘이 되어줬던 것 같아요. 최근에는 개인의 공간이 없었던 저 자신을 위해 따로 개인 사무실 을 만들었어요. 요즘은 종교로 휴식하는 것 같아요. 육체 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에서 평안을 줘요.


Q. 회사를 운영하면서 슬럼프는 없으셨나요?
A. 일이 많아서 힘들었던 적은 별로 없던 것 같아요. 어차피 일은 제가 해야 하기 때문에 괜찮은데 사람들로 인해서 실망할 때가 가장 힘들어요. 작년에도 8년 동안 회사에 같이 근무했던 직원이 있었는데 어느 날 회사 자 료를 가지고 나가서 회사를 차렸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물론 직접 찾아올 수 없었겠지만, 경찰을 통해서 이야기 를 들으니 더 속상하더라고요. 같이 회사를 키워서 성 장하기를 바랐는데 그 친구처럼 떠나가는 사람들이 있 을 때, 가장 마음과 몸 둘 다 힘들었던 것 같아요.

Q. 회사를 운영하시면서 특별하게 하셨던 일이 있 나요? 
A. 회사를 운영하면서 딱 한 번 경호티켓을 홈쇼핑 에 판 적이 있었죠. 그때 2억이라는 결과가 나올 정도 로 무척이나 판매 결과가 좋았어요. 그뿐만 아니라 그 이후에 들어오는 의뢰들은 대부분 경호티켓을 샀던 의 뢰인들과 의뢰인 소개로 우리 회사가 잘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인연을 중요시하는데 실제로 지금까 지 처음 경호티켓을 구매하셨던 분들과 계속해서 연락 이나 의뢰를 받고 있어요.

Q. 회사에서 경호하실 때 사람에 따라 경호뿐만 아 니라 다시 생활할 수 있도록 재활적인 부분까지 도와 주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A. 대부분의 의뢰인은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 일을 부 탁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내면이 많이 다치고 외부 사람들과 만나기를 피하죠. 피해자들 은 대부분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하고 사려는 사람이에 요. 저는 경호라는 직업이 그 사람의 겉모습만 살피는 것 이 아니라 생활 부분도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 서 경호를 하면서 상담에 대한 자격증을 따기도 했죠.

Q. 직원들에게 ‘상품가치를 높여라’고 이야기하신 다고 들었는데 특별히 이유가 있나요? 
A. 경호원이라는 직업이 예전에는 위해 상황일 때 가드 해주는 역할이 대부분이었어요. 하지만 요즘에 는 조언자의 역할까지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아 요. 또 외국에 나가는 일이 많아서 외국 문화와 예절에 대해서 미리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경호원 이라서 운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경호원도 멀티적인 부분의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직원들이 남 는 시간에 그냥 휴식을 즐기기보다는 자신에게 더 도움이 되는 자기계발의 시간이었으면 해요.

Q. 경호원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 주세요. 
A. ‘성공은 도전하는 자의 미래에 달려있다’, ‘노력의 대가는 이유 없이 소멸하지 않는다’는 말들을 좋아해 요. 이처럼 저도 끊임없이 노력하려고 하다 보니까, 어 느새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던 것 같아요. 그저 말로 만 소망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력이 뒷받침되어서 끊임 없이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이 제 경호원도 운동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다양한 경 험을 통해 지식을 많이 쌓았으면 좋겠고, 다른 사람을 위한 희생정신도 있어야 해요. 여학생의 경우에는 여성 경호원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준비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Q.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을 알고 싶어요. 
A. 저는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저출산의 주범이라고 말할 수도 있어요. 아직까지 일에만 몰두하느라 가정 을 꾸리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제 주변에는 벌써 대학 생 아이를 두고 있는 친구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최근 들어 결혼에 대한 부분이 제 고민 중 하나에요. 대학생 들을 가르치다 보면 세월이 빠르다는 느낌도 많이 받고 있고요. 저 또한 지금은 석사과정까지만 해둔 상태지만 기회가 생긴다면 대학원에 가서 박사를 할 생각도 있어 요. 앞으로의 후진양성에도 관심이 많이 가는데, 정치 분야도 관심 있어서 정당에서 20년 동안 활동하고 있어 요. 추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정치 부분에서 활동하고 있을 수도 있겠죠. 저는 정착하거나 후퇴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에요. 변하지 않는 것을 못 참아서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을 즐겨요. 그렇게 순간순간 최선 을 다해서 살아가고 싶어요.

Q. 고은옥에게 경호원이란? 
A. 삶의 반, 삶의 터닝 포인트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 아요. 21년 동안 경호원으로 살면서 삶이 많이 바뀌었 고 발전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시도하지 않았던 여 성 경호를 시작하면서 어려웠던 부분도 많았지만, 나이 에 비해 정말 누리고 있는 것도 많아서 감사한 마음이 큰 것 같아요.

Q. 고은옥에게 명지대학교란? 
A. 저의 뿌리, 터전, 길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요. 제가 사업을 하면서 경영을 전공하고 나온 게 사업 에 기틀이 되어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또 최근 들어서 는 명지대를 나온 것에 대한 감사함과 함께 자부심이 더 생기는 것 같아요. 사회에 나가서 명지대 경영학과라 고 이야기하면 이미 앞에서 활동하고 계시는 선배님들 이 참 많더라고요. 작년에 자랑스러운 동문상을 받았 는데 앞으로 더 멋진 동문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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