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보사가 가진 의미, 우리가 걷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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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보사가 가진 의미, 우리가 걷는 길
  • 임다원
  • 승인 2017.11.06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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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 섬을 비추는 등대

손바닥보다 작은 디지털 기기 속에 빠져 살아가는 요즘, 현대인들이 종이신문을 읽는 모습은 찾기 힘들다. 최대한 시의성에 맞는 정보를 전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한계점은 분명 존재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실시한 '2016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미디어 이용률 중 종이신문의 이용시간은 2011년 17.5분에서 2016년 6.5분으로 약 1/3정도 하락했다. 2011년에서 2016년 사이 미디어 이용시간이 증가한 매체는 단 하나, 29.5분에서 67.1분으로상승한 모바일 인터넷 뿐이었다. 게다가 20대의 종이신문 이용률은 7.4%로 전 연령에서 최하위를 차지했다. 이러한 시기에, 심지어 20대를 독자로 한 신문을 만들어가는 우리는 창간을 맞이하여 '왜 신문을 만드는가?'에 대한 의문을 속시원하고 솔직하게 풀어내고자 한다.

 

시대적 흐름과 멀어진 구닥다리 종이신문 
신문은 언론의 역사라 할 수 있을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며, 의미를 어떻게 풀어 보든지 간에 문화적 산물인 동시에 사회적 현상이다. 그러나 현대에서의 신문은 쉽게 평가절하당하기도 한다. 인터넷신문과 달리 종이신문은 수시로 갱신되지 않고, 발행면수의 제약이 있으며 검색기능도 없는 텍스트 기반의 기사이기 때문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실시한 ‘2016 언론수 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2016년 뉴스 이용시간 중 종이신문은 6.5분밖에 차지하지 않는다. 텔레비전 41.5분, 인터넷 27.1분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 이마저도 2011년의 17.5분에 비하여 1/3가량 떨어진 수치이다. 또한, 같은 조사에 따르면 종이신문 열독율 추이 역시 2002년 82.1%에 서 2016년 20.9%로 가파르게 하락했다.

인터넷신문은 종이신문에서 찾아볼 수 없는 여러 가지 강점을 지녔다. △속보성 △현장성 △상호작용성을 포함하여 △무제한 저장 △사진 △그래픽 △ 소리 △동영상까지 동반한 멀티미디어적 정보 제공이 가능하다. 종이신문의 쇠퇴에는 이렇듯 미디어 시대의 도래가 배경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언론사 들은 3단계의 과정을 거쳐 발전했다. 1단계에서는 종이신문의 내용을 그대로 인터넷신문으로 옮겨 실었고 2단계에서는 1단계와 마찬가지로 옮겨 적은 기 사에 관련 사이트 링크를 추가하거나 부가정보를 제공했다. 마지막 3단계에 서는 자발성을 바탕으로 종이신문과는 별개인 독자적인 내용을 실었다. 그렇 게 언론사들은 미디어에 적응하여 미디어 시대에서 살아남았다.

인적 드문 섬, 학보사 
이제 학보사, 우리의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오태석 외 3인 저「뉴미디어와 정보사회 」책에서 요즘의 신문사를 비유한 글을 소개한다. ‘망망대해 에 떠 있는 섬 위에 공장을 세워 뉴스 상품을 대량 생산하는데 상품을 육 지로 실어 나를 배는 없이 육지 사람들이 섬에 와서 상품을 구입하기만을 기다린다. 즉 콘텐츠(뉴스)를 커뮤니티(소셜 네트워크)에 연계하는 장치 가 없거나 부실한 것이 오늘날 신문산업의 현주소이다.’ 책에서는 언론사 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만 학보사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오히려 구 독자층이 학내 구성원이라는 점에서 더 심각한 상황일지도 모른다. 이른 아침부터 나와 배포대에 신문을 수북이 쌓아놓아도 다음 배포 때쯤에는 먼지가 가득 쌓여있는 웃픈 사연의 주인공이 학보사이다. 이에 대해 단대 신문 김태희 편집장은 “사실 종이신문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면에 의지하고 있는 대학 학보사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 역시 어찌 보면 당연한 현상 같다”며 “에브리타임이나 대나무숲만 봐도 학보사를 왜 보 냐는 식의 댓글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댓글들을 보면 ‘요즘에는 정말 신문을 안 보는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도 종 이신문의 중요성이 감소하는 것이 언론의 중요도 감소로 이어지지는 않 는다고 생각한다. 대학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사회든 건전한 비판, 상호 간의 대화가 가능한 소통로는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학교에서 그런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학보사이다. 때론 무관심 때문에 섭섭하기도 하고 허탈하기도 하지만 이런 신념으로 학보사 일을 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학보의 구독률이 낮은 이유 중 하나는 대학생들이 종이신문을 부담스 러워함에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6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 면 20대의 종이신문 이용률은 모든 연령대 중 가장 낮은 7.4%였다. 이에 대해 정해은(정외 17) 학우는 “포털사이트에 자동적으로 기사가 뜨기 때 문에 보는 것이지 직접 찾아서 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학교신문을 읽지 않는 이유도 직접 찾아서 봐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인 것 같다”고 전했다. 게다가 학보사에 지원하는 이들이 줄어들어 인력난이 일어나 적지 않은 면을 채워나가기 힘들어지고 편집권 갈등으로 총장 혹은 교수에 대한 언급은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다.
지난 3월, 서울대학교 학보사 ‘대학신문’은 편집권 침해로 백지 발행을 했다. 대학신문 이경인 편집장은 “향후 신문사 정상화가 이뤄지는 와중에 ‘편집권 침해’에 대해서 많은 대화가 오갔고, 학보사 구성원과 운영위원 회나 신문사 외부의 구성원이 받아들이는 편집권의 무게가 다르다는 점 을 알게 되었다”며 “사실 학보사라는 곳 자체가 대부분 발행인은 총장이 며 학교의 돈으로 운영하는 학교 기관처럼 존재하지만 정작 기사는 학생 들이 쓰는 애매한 지위다. 이러한 학보사에서 구성원간의 합의를 통해 결 론을 도출하고 기사화하는 것이 중요한데 대화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백 지발행까지 이어졌다고 생각을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 “백지발행 이 후에 주간 교수님이나 부주간 교수님이 새로 부임을 하시고 신문사 구성 원은 다시 정상화 되었다. 신문사의 제도 개선이나 위원회 개최, 사칙개정 등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시간도 가졌다”고 전했다.


위기의 학보사, 위기의 대학기자
대학언론세미나 기획단 ‘데드라인’은 지난해 4월 대학언론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 대학언론 부장급 이상 학생 기자 8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총장 직속으로 편재된 대학언론이 54.7%로 매우 높게 나타났다. 홍보처 소속 10.3%, 학생처 소속 16.3%로 나타나기도 했다. 대 학언론이 독립된 기관으로 존재하는 경우는 18.4%에 불과했다. 한 학기 에 6회 이하 발행되는 신문이 54%에 달했고, 3회 이하 발행하는 신문도 17.2%를 차지했다. 분량도 마찬가지다. 8면짜리 신문이 41.4%였고 그중 4 면짜리 신문을 발행하는 경우도 3.4% 있었다. 지원자가 줄어 49.4%의 대 학언론은 10인 미만의 소규모로 운영되기도 했으며 5인 미만의 소규모로 활동하는 대학언론도 14.9%를 차지했다. 반면 20인 이상의 학생 기자가 활동하는 대학언론은 9.2%에 불과했다.
또한, SNS의 발달로 학내의 주요 소식은 각 대학 별로 존재하는 페이 스북 페이지 ‘대나무숲’에 게재되어, ‘좋아요’와 ‘태그’를 통해 빠르게 확 산된다. 최근 우리대학 인문캠 1층에서 불법촬영 사범이 도주하는 사태 가 일어났고 본지는 이에 대한 속보를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앞서 말한 인 터넷신문의 속보성과 현장성, 상호작용성을 바탕으로 게시글은 197,625 명에게 도달했으며 명대신문 페이스북 페이지 역사상 최대치인 2,294개 의 좋아요와 90회의 공유를 기록했다. 만일 기사가 지면에 실렸다면, 학 우들은 불법촬영에 대한 소식을 늦게 접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이태규 (경정 14) 학우는 “페이스북을 통해 지면보다 빠르게 학교의 소식을 접할 수 있다는 것이 큰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불법촬영이 이슈가 된 직후 교 내에서 몰카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를 속보 게시물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고 추후 지면의 후속보도를 통해 불법촬영 카메라 점검에 대한 소 식을 들을 수 있었다 ”고 전했다.

 이렇듯 학보사가 위기상황에 처해있음에도 불구하고 명대신문이 지속 해서 발행을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은 이 기사를 읽고 있는 독자를 위함 이다. 명대신문을 읽는 이유에 대해 김소정(영문 16) 학우는 “명대신문은 팩트를 전달해주는 소통창구로 항상 학교와 학우들을 연결해준다고 생 각한다. 신문을 통해 학교의 여러 소식 그리고 나아가 대학생들의 문제도 공감하고 고민해볼 수 있었다. 순수하지만 냉철한 대학생의 눈으로 바라 본 사회를, 명대신문을 통해 배워 갈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만일 학보사가 외딴 섬이라면, 독자는 섬을 비추는 등대이며 당신들이 기사를 읽었다 전해주는 순간들이 모여 신문사의 새벽을 밝히는 불빛이 된다.

 

역史 와 학보社
우리대학을 포함하여 국내 39개 대학 기록관들로 구성된 한국대학기 록관 협의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각 대학사(大學史)를 담은 기념도서 ‘대학과 기록’을 발간했다. 이 기념도서에는 다양한 대학의 역사가 담겨있 는데  부산대학교는 6월항쟁이라는 기록물 명으로 다양한 사진을 공개했 다. 그 중 ‘故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의 진상규명 및 대통령 퇴진 시위 때 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부산지역 대학생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부대신문 사 사진기자가 담았다. 부대신문 신우소 편집장은 “작년 창간기념식에서 한 선배가 취재하다 경찰서에 잡혀간 이야기를 했다. 사진을 빼앗기는 건 기본이었고, 기사 내용에 대한 탄압도 있었다고 들었다. 이렇듯 언론 탄 압, 부마민주항쟁 등을 거쳐 부대신문이 올해로 창간 63주년을 맞았다” 며 “부대신문은 가장 가까이서 부산대 혹은 부산의 민주화 과정을 지켜 보지 않았을까 싶다. 예나 지금이나 언론이라는 제 역할을 하기 위해 기 자로서, 데스크로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전했다.

학보사는 학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순간을 기록하고 비판한다. 때문 에 부패한 정권이 학보사를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1986년 10월 28일부터 31일까지 66시간 50분 동안 건국대학교에서 전개된 학 생 민주화 운동인 건대항쟁은, 전두환 정권 퇴진 요구 시위를 한 뒤 해 산하려던 학생 2,000여 명을 경찰이 ‘용공 좌경 분자’라며 학교 건물로 몰아넣은 뒤 1,500여 명을 연행하고 1,288명을 구속한 사건이다. 단일 사건으로서는 역사상 최다 구속인데 이를 기록한 이들 역시 건대신문 학보사이다. 시간이 흐른 지난해 10월 29일 건국대학교 학생회관에는 당시 건대신문 학보사 기자가 촬영한 미공개 사진들이 걸렸다. 건대신 문 최수정 편집장은 “ 사진전은 신문사에 남아있던 미공개 사진을 전시 했던 것인데, 기자들 역시 역사의 한 가운데에 학보사가 존재했다는 사 실을 알게 되어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며 “사실 학보사가 옛날만큼 학 우들의 관심을 받지는 못하여 아쉬운 마음이 있는데 학보사의 존재가 학교의 소식을 알리고 학교가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이 되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명대신문 역시 역사의 과정에서 펜을 놓지 않았다. 2011년 강경대 열 사 추모 특집호에는 27년 전 강경대 열사가 사망했던 당시의 상황에 명대 신문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기록되어있었다. “1991년 4월 26일, 명대신 문사 김미중(경제 90) 기자는 학우들이 시위하는 현장에 늘 카메라를 들 고 서 있었다. 김미중 기자는 학생 전투조와 전경들 사이에서 취재를 하 던 도중 누군가 던진 돌에 머리를 다쳤다. 그의 머리가 찢어져 피가 나기 시작했고,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었다. 다행히도 주변 동료로부터 부축 을 받고 학관과 본관 사이에 있는 민주계단에서 상처 치료를 받게 되었 다. 하지만 바로 그때, 우리대학 방송국인 MBS에서 긴급방송이 나왔다. 강경대 학우가 백골단에 의해 의식 불명 상태라고, 병원에 이송 중이라 고…….” 그렇게 강경대 열사는 사망했다. 그리고 본지는 지금까지도 해마 다 강경대 열사를 추모하기 위한 기사를 작성한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숱한 학보사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또 과거의 그들이 펜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이러하다. 명대신문이 또다시 생일을 맞이하였다. 인력난에 남들보다 배로 시간을 쪼개며 바쁜 일상을 살아도 명대신문 그리고 학보사는 진실을 알리기 위해 펜을 놓지 않는다.
 

우리가 기사를 쓰는 이유

명대신문 편집장 정수민(문창 16)

 우리가 기사를 쓴다고 해서 모든 일이 이슈 가 되지는 않는다. 구독자의 수가 썩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사를 쓰 는 이유는 한 가지다. 우리가 쓰고 있는 이 기사가 곧 ‘우리대학의 역사’가 되기 때문 이다. 이 대학의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일원으로서 그리고 학보 사에 몸담고 있는 기자로서, 그것을 기록하고 취재하는 것에 사 명감을 느낀다. 우리가 쓰는 이 기사 몇 줄이 역사로 남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학교의 많은 부서들이 우리를 예의주시한다. 그 또 한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구독자 수와는 별개로, 학내에 학보사가 존재하는 이유다. 이 대학의 시간이 계속 흐 르고 있는 한, 우리는 계속 쓸 것이다.

명대신문 보도부장 공하영(정외 15)

 학보사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12면 의 신문이 완성되기까지 수많은 손과 눈 을 거쳐야 한다. 신문 한 부를 발행하기까 지 험난한 과정이 존재하지만 알아주는 이는 많지 않으며, 심지어 불필요한 언쟁 에 이르곤 한다. 또한, 시도 때도 없이 밤ㆍ낮을 새는 것은 일상이 됐다. 주변 사람들은 평범하게 보낼 수 있는 대학 생 활을 굳이 애써 고생하느냐고 안타까워한다. 그럼에도 내 가 신문사에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책임감’이 다. 우리는 역사의 순간에 있다. 지면에 실리는 작은 글 하나도 역사의 한 부분으로 기억된다. 이러한 점은 분명 이 곳에 서 타인과 다른 활동을 하며 대학시절을 보내고 있다는 것 을 의미한다. 대학 내에서 벌어지는 의제설정, 비판, 정보전 달 역할을 하는 대학신문은 기사가 미칠 영향력에 대해 생 각해야 하며, 매 순간 신중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책임감 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해 글을 쓰는 이유다.

명대신문 기획부장 권민서(아랍 16)

 ‘학보사의 위기’라는 말은 언제 대두되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됐다. 약 100년 전의 종이신문이 시초인 학보가, 시간이 흐를수록 발전하는 기술과 미디어의 다양 성에 있어서 도태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 다. 이에 따라 학생들에게는 교내 신문이 목소리를 펼칠 유일 한 소통의 창구가 아니게 됐다. 따라서 위기를 도래한 원인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학보사는 현재도 위기이며 미래에도 위 기 이 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학보사는 많은 시도를 한다. 시대의 흐름에 발 맞춰 SNS와 같은 소통 매체를 적극 활용하고, 온라인 홈페이지에 기사를 올리며 더 좋은 컨텐츠 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필연적인 요 인에 따라 옛날과 같은 위치를 다시 영위하게 될 수는 없을 테 지만, 해답은 바로 이 부분에 있다. 위기 상태에 빠져서 갖게 되는 ‘위기의식’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현재의 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한다. 최근에 신문사에서 활동하며 이러한 점을 느낀다. 위기의식을 느끼고 수많은 회의를 통해서 더 발전하 려던 노력이, 실제로 작년보다 신문에 대한 관심도가 더 높아 진 결과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배포대에 신문을 채워놓으 면 2주 동안 잘 줄어들지 않았던 작년과 달리, 올해엔 눈에 띄 게 줄어드는 신문의 양이 그 반증이다. 학보사의 위기는 지속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이, 이 상 황을 헤쳐나가는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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