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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0.05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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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서블The Crucible>(1996)

 

이 영화는 17세기 말 미국의 뉴잉글랜드에서 들불처럼 번졌던 마녀사냥을 소재로 한 일종의 역사영화이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1950년대의 현대판 공산주의의 마녀사냥인 매카시즘을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이 영화의 원작자이자 시나리오작가인 ‘아서 밀러’가 공산주의자로 몰려 외국으로 추방 당하는 가슴 아픈 개인사도 포함된다. 시대와 이데올로기가 다를 뿐, 영화 속에 비쳐진 광기어린 군상들의 모습은 현실 세계와도 별반 차이가 없다. 
<크루서블>의 소재인 ‘마녀’에 해당하는 영어 ‘Witch’는 원래 여자는 물론 남자도 포함된다. 단지 압도적으로 여성이 많다는 점에서 마녀로 불리고 있는데, 마녀로 몰려 희생된 30만 명 중에 10%는 남성이었다. 그렇다면 중세 유럽에서 한동안 휘몰아쳤던 마녀사냥이 대양 너머 미국에까지 번지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여기에는 1680년대 뉴잉글랜드 지역이 기존의 퓨리탄 구조에서 급격히 변하면서 심각한 내부 사회갈등을 빚은 데 있다. 예를 들어, 초기 뉴잉글랜드 사회 단위는 독립된 농장이 아니라 읍(Town)이었으며, 교회의 권한이 막강하고, 엄격한 가부장적 구조로 결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회가 점차 상업화되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읍의 중심부로부터 멀리 떨어져 토지를 경작하고, 그에 따라 교회로부터 점차 멀어지는 주민들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한 상황 때문에 기존의 읍 주민과 새로운 읍을 건설하려는 사람들 간에 마찰을 빚어졌으며, 민심이 흉흉해졌던 것이다.
그러한 때에 나타난 현상이 광란의 마녀사냥이었고,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재판이 바로 이 영화의 소재인 매사추세츠 살렘에서 일어났다. 당시 살렘의 처녀들이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부두교(Voodoo) 의식에 열중하고 있는 몇 명의 서인도제도 출신 하녀들을 마녀라고 고발하였다. 이 일은 읍 전체에 급속히 퍼져 나갔으며, 나중에는 100여 명의 사람이 마귀와 교류했다는 혐의로 고발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1692년까지 이 지역의 주민 중 19명이 처형되었으며, 이후 마녀 고발을 한 소녀들이 자기주장을 취소하고 꾸며낸 것이라고 고백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마녀사냥은 근대화의 한 병폐이자 사회적 흥분 상태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관객의 공감대를 불러올 만큼 설득력 있고 사실적인 캐릭터를 보여주고 있다. 퇴마사인 존 해일(롭 캠벨) 목사는 프록터(다니엘 데이 루이스)의 주장을 듣고서 자신의 잘못된 선입관을 인정하고, 한편으로 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이 여태껏 고수한 종교적 가치관을 내던졌다. 덴 포스(폴 스코필드) 재판장도 아무 잘못 없는 사람들을 마귀로 몰아서 사형언도를 한 것이 잘못된 판결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공개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당시 상황이 중도에 멈추기에는 너무도 앞질러 갔으며, 만일 그 자신 이미 내린 판결을 뒤집는다면 엄청난 혼란이 야기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미 억울하게 죽은 사람에 대한 책임 소재는 물론이거니와 ‘법’과 ‘정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이 영화는 실화로써, 1950년대의 매카시즘을 겨냥하고 있다. 아서 밀러는 1956년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 소환되어, 영화 속의 존 프록터처럼 자신과 연루된 공산주의자의 이름을 증언하도록 강요받았다. 그는 외국으로 도주 할 혐의가 있다는 평결 하에 여권 발급마저 중지 당했으며, 그 결과 1953년 1월 연극 <크루서블>이 브뤼셀에서 초연되었을 때 참석조차 할 수 없었다.
1690년대 상황을 그리면서도 1950년대의 매카시즘을 연상하게 만들고 다시금 50여 년이 지난 오늘날의 세태와도 비교 할 수 있는 <크루서블>. 만일 세 시기에서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권력의 속성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는 점과 ‘선악 구분의 붕괴’이다.
감독 ‘니콜라스 하이트너’는 이 선악 구분에 대한 혼란을 카메라 워크로 아주 쉽게 표현하였다. 악마와 교류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증언자의 얼굴을 갑자기 클로즈업한 상태(딥 포커스)에서 다시금 어느 특정 공간을 어지럽게 초점을 맞추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도 자신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마치 ‘나’만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이 영화 속 마녀사냥에 휩쓸리게 되는 군중심리이자, 1950년대의 매카시즘이며, 오늘날의 언론플레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연동원 역사학자ㆍ영화평론가       
임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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