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카라얀은 인생 전ㆍ후반기를 통틀어 많은 젊은 연주자를 발굴하고 육성한 공이 있는 음악인이었다. 그가 사망하기 직전 ‘조수미’를 발굴한 일화는 우리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일이다. 안네 조피 무터, 자비네 마이어, 크리스티앙 페라스, 군둘라 야노비츠, 헬가 데르네슈, 호세 카레라스 등은 그가 선호하고 끊임없이 지원하며 키워낸 음악가이다.
특히 국제적인 활동이 거의 없었던 ‘야노비츠’를 기용해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 바그너의 <발퀴레>, 하이든의 <천지창조>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 등을 녹음해 그녀의 진가를 후세에 남겨준 것은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천상의 목소리를 지닌 이 소프라노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나로서는 감사해 마지않을 일이다.
누가 뭐래도 클래식 음악을 우리 대중과 가깝게 만든 첫 번째 공로자가 카라얀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고전음악을 모르더라도 눈을 감고 한껏 멋을 부린 카라얀의 사진과 그의 판을 보지 못한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정말로 경이로운 것은 그의 레퍼토리다. 한 인간이 그 많은 레퍼토리를 섭렵한다는 것은 정말 세기의 천재가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더욱 경탄하는 것은 그 모든 레퍼토리를 일정 수준 이상의 연주로 끌어냈다는 사실이다.
모차르트의 작품 중에는 졸작이 없듯이 그의 연주에는 레퍼토리가 무엇이건 연주시기가 언제였건 비록 연주의 편차가 있어도 수준 이하의 녹음은 하나도 없다. 한 장르, 한 작곡가에만 매달려서 경지에 오르는 것도 힘든데 그는 그 수많은 작품을 수준급으로 연주했고 그 중 많은 연주가 명반의 반열에 올라 있다는 것은 대단한 사실이다.
불가사의할 만큼 폭넓은 레퍼토리와 카리스마가 사후에도 그의 영향력을 유지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이겼다”
현존하는 무수한 스타 음악가 가운데 아직도 카라얀만큼 클래식 음반시장을 주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의 무수한 녹음이 아직도 대중과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압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리라.
강규형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서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