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가에 끊임없이 들리는 성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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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에 끊임없이 들리는 성추문
  • 곽태훈
  • 승인 2017.08.29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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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성(性)에 대해 성숙한 성인일까?

지난 2014년 국민대학교 특정학과 소모임 남학생들이 SNS 메신저 단체 채팅방(이하 단톡방)에서 여학생들에 대한 성희롱 발언을 일삼은 ‘국민대 단톡방 성희롱’ 사건을 필두로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최근까지 △동국대학교 △고려대학교 △서울대학교 △인하대학교 △서강대학교 등 다수 대학에서 벌어졌다. 여성가족부가 2015년 전국 95개 대학을 대상으로 한 ‘대학 성폭력 피해자 지원 및 사건 처리 현황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15년 7월까지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접수사건은 대학 한 곳 당 평균 2.48건으로 2012년 보다 2배 이상 증가했다. 95개 대학에서 조사한 것을 감안하면, 235.6건의 적지 않은 성관련 문제가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최근 대학가는 성추문들로 인해 소란스럽다. 나날이 증가하는 대학 내 성관련 문제들, 근본적 원인과 그 해결책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온·오프라인 어디서나 학생이 가하는 성희롱
지난해 3월부터 5월까지 학교 인근 식당과 학교 축제 주점 등지에서 같은 과 여학생들에 대한 성적인 발언을 일삼은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남학생 21명에 대한 신고가 지난 4월 인하대학교 성평등상담실에 접수됐다. 학교 측은 신고가 접수되자 진상조사 후 해당 학생들에게 △무기정학 △유기정학 △근신 △사회봉사의 징계를 내렸다. 그러나 징계를 받은 학생들 중 일부가 인천지방법원에 징계처분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징계처분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지난 8일 인하대학교 의과대학 건물에는 ‘의대 남학우 9인의 성폭력을 고발합니다’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었다. ‘스나마를 아십니까?’로 시작하는 대자보엔 ‘스나마라고 알아? 나는 ○○ ○ (같은 과 여학우의 이름)이다. 너는 누구야?’, ‘XX고 싶은 사람 베스트 1,2,3 뽑아’ 등 인하의대 남학생들의 성희롱 발언들이 적나라하게 적혔으며, 이 같은 발언을 한 학생들의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 피해 학생들과 가해 학생들이 한 공간에서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현실을 규탄했다. 가해 학생들이 은어로 사용한 스나마란 ‘외적인 모습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나마 성관계를 하고 싶은 사람’을 물어보는 말이다. 작성자는 글 말미에 이 사건을 향한 학우들의 관심과 지지를 요한다고 밝혔다. 해당 대자보가 게시되자 학내 커뮤니티에는 ‘저 남학우분들은 부끄러움을 아시길’, ‘무슨 주제로 소송을 거나요?’라는 식의 반응이 일었다. 그러나 여론과는 달리 법원에서는 ‘1년 단위의 의과대학 커리큘럼 상 해당 처분 등으로 받게 될 불이익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 11일 징계처분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이에 따라 징계처분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한 학생들은 판결이 날 때까지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됐다. 한편, 해당 학생들은 소장에서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남학생들이 술기운에 남학생만 모인 자리에서 이성에 관한 이야기는 충분히 할 수 있다’며 ‘분위기에 휩쓸려 발언의 수위를 조절 못한 것일 뿐 여학생들을 성적 대상으로 삼거나 평가한 것이 아닌 농담이었을 뿐이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 사진은 인하대학교 의과대학에 붙은 대자보다.

 대학생들이 주체가 되어 가하는 성희롱은 온라인상에서도 활개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단톡방 성희롱’이다. 단톡방 성희롱은 ‘단톡방’을 통해 특정인에 대한 성적 모멸감이나 수치심을 가하는 언사를 내뱉는 것을 의미한다. 지난 한 해 동안 이 같은 형태의 성희롱이 적발 혹은 폭로된 학교는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서울대학교 △경희대학교 △서강대학교 등이며 일부 학교에서는 두 차례가 넘는 성희롱이 벌어지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동국대학교 한 학과의 남학생들이 약 3개월간 단톡방에 같은 과 여학생을 비롯한 여성들을 성희롱하는 발언을 상습적으로 행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파문이 일었다. 고려대학교의 경우 2015년 5월부터 약 1년여간 30명 정도의 한 학과 학생들이 ‘고추밭’이라는 페이스북 비밀그룹을 만들고 그룹 내에서 여학생들에 대한 실명 거론과 함께 성희롱적 발언을 자행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그룹 구성원끼리 음란물도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거세지자 고추밭 운영자라고 밝힌 한 학생은 대자보를 붙여 사과 및 해명을 했다. 그러나 대자보에 ‘여학생을 직·간접적으 로 언급한 그룹 게시물 발언들은 일상에서도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발언이 다’는 입장을 밝혀 질타를 받았다. 또한, 지난 3월엔 단톡방 성희롱 가해자 처벌에 앞장서던 단과대 학생회장이 안암역에서 몰래카메라를 촬영하다가 경찰에 붙잡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이처럼 최근 몇 년 새 계속해서 불거지는 대학 내 성관련 사건의 특성은 많은 수의 가해자가 ‘대학생’이라는 것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15년에 발표한 ‘대학 내 성희롱 · 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 보호 강화 방안 연구’에 따르면 대학 내 성희롱 가해자 유형 중 61.4%가 대학생에 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재미’라는 이름으로 스며든 성희롱 문화 
2015년에는 여러 대학의 축제에서 주점의 메뉴를 성적인 문구로 명시해 문제가 됐다. 당시 군산대학교 주점에서는 한 걸그룹 멤버의 속옷 광고 사진 옆에 ‘벗기고 싶은 돼지껍데기’와 같은 선정적 문구를 집어넣었다. 한양대학교 ERICA캠퍼스에서는 성범죄를 일으킨 오원춘과 고영욱이 언급된 메뉴를 등장시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주점의 메뉴는 올해도 어김없이 논란의 대상이 됐다. 지난 5월, 강릉원주대학교 축제의 한 주점에서 ‘오빠가 꽂아준 어묵탕’, ‘고추 장불고기 주먹밥’ 등 선정적 메뉴를 내걸었다. 이에 불편을 느낀 한 학우가 대학 커뮤니티에 제보했고 이를 통해 알려진 메뉴들은 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대학 축제 무대의 선정성도 문제다. 유튜브에 ‘대학교 직캠(직접 캠코더로 찍은 동영상)’이라고 검색하면 노출이 심한 의상을 입은 여성 댄서들이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춤을 추는 동영상을 쉽게 볼 수 있다. 우리대학에서도 지난 5월 인문캠에서 진행된 대동제 마지막 날 MAXIM party 당시 무대 쪽 대형 스크린에 노출이 심한 MAXIM 여성 모델들의 영상을 지속적으로 띄워 보기 불편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익명을 요청한 한 학우는 “대학 축제 에서 굳이 선정적인 모습을 보여야하는지 모르겠다”며 “고등학생들도 대학 축제를 즐기러 오는데 그런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성적인 내용의 축제를 진행하는 건 안 좋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표했다.

▲ 사진은 대학교 축제 무대에 올라온 걸그룹들의 직캠 영상 캡처본이다. (출처/ 유튜브)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설연구소인 울림의 김보화 책임연구원은 “술게임이나 성을 상품화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대학 축제 주점은 대학생들의 성의식을 왜곡시키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다”며 “해당 문화를 통해 성을 희롱할 소지가 있는 것들이 당연하게 여겨지면서 본인들이 하는 부적절한 말에 대한 경각심을 굉장히 늦추는데 영향이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이런 학내 문 화가 언어적 성희롱을 가볍게 생각하게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2015년 교육부가 전국 10여 개 대학 재학생 1,441명을 대상으로 한 ‘대학생 성인식 및 성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언어적 성희롱 가해 경험이 있다고 답한 학생은 전체의 35%였으며 그 중 45.6%는 ‘외모에 대한 성적 평가나 모욕 또는 음담패 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어쩌면 대학생 스스로가 성희롱을 ‘재미’ 혹은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둔갑시키고 있는 건 아닌지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성인식은 마쳤지만 여전히 미숙한 성(性) 인식 
초중고 교육과정을 모두 이수한 학생들이라면 ‘양성평등기본법·성폭력 방지법’에 따라 이미 성교육을 연 1회 이상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미성년자 들을 대상으로 학교에서 행해지는 성교육은 내용이 형식적인 것에 그치기 도 하며 심지어 부적합하기도 하다. 지난 2015년 교육부에서 ‘여자는 무드에, 남자는 누드에 약하다’는 식의 잘못된 성의식을 조장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성교육 교재를 교사들에게 배포해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중흥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인 강경화 씨는 “지난 15년간 성교육에 분명 히 변화는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질적으로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교육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있다고 생각한다. SNS나 미디어의 발달로 아이들이 성을 접하는 속도는 상당히 빠른데 아직 교육은 그 정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며 “그러다보니 아이들의 성교육 참여도가 높지 않다”고 현실과 괴리된 현 성교육을 문제 삼았다. 이처럼 미성년자 때부터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하다보니 성인이 돼서도 성(性) 인식이 미숙한 상태로 굳어진다. 문제는 이렇게 굳어진 성 인식이 대학에 가서도 이어진다는 것이다. 대학생은 성인이지만 아직 학생이기에 [양성평등기본법 제31조 1항]과 [성폭력방 지법 제5조 1항]에 의거 초·중·고등학생과 마찬가지로 성교육을 1년에 1회 이상 듣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러나 의무화돼 있는 초 · 중 · 고등학생과 다르게 대학생은 성교육이 권장사항일 뿐 의무사항이 아니다. 2016년에 여성가족부에서 성폭력예방교육 실시 현황을 점검한 결과 전국 전문대학 및 일반 대학의 96.9%가 성폭력예방교육을 실시했으나 학생들의 성교육 이수율은 33.5%일 뿐이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 전문가들은 대학 내 성교육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품기도 한다.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 위창희 사무국장은 “서울 지역에서 성폭력예방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교육 시간이 평균 1시간이었다. 하지만 이런 성폭력예방교육 이전에 상대방에 대 한 인간적인 관계 맺기 교육이 포함된 통합적 성교육이 기본으로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대학가 성추문 고리를 끊으려면 ...
결국 올바른 성의식을 함양하는 것이 성추문을 멈추는 근원적 해결책이다. 그렇기에 전문가들은 대학 내에서 의무적으로 성교육을 시행해야한다고 답한다. 그러나 현행 방식으로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존재한다. 위창희 사무국장은 “현재 학교에서 진행되는 교육은 성폭력예방교육인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기본적인 성에 대한 이해나 관계 맺기에 대한 내용은 부재 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또한 대학 내 성교육의 필 성에 대해 “1시간의 형식적인 교육이 아니라 제대로 된 성교육이 진행된다면 대학 내 성교육은 당연히 필요하다. 대학에서도 성교육을 교양과목으로 지정해 듣게 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와 관련해 인하대학교 한국어문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인 정혜리 학생은 “성교육 관련 교과목이 개설된다면 좋을 것 같다. 성지식은 알아둘 필요가 있는 내용이라서 학생들 사이에서도 반발이 적을 것 같다”고 전했다. 김보화 책임 연구원은 “몇몇 대학에서 1년에 한 번 또는 4년에 한 번 진행하는 1시간짜리 의무적인 예방교육 말고 정말 인식이 변화할 수 있도록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따라서 성에 대한 우리의 실태와 현황에 대해 최소 한 학기 정도는 깊이 고민해 볼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는 건 굉장히 필요한 일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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