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금주법과 마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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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금주법과 마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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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0.0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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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터처블>의 금주법과 마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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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속 역사의 재인식>

<언터처블>의 금주법과 마피아

‘브라이언 드 팔마’는 주로 ‘피’에 대한 색채 그리고 사이코 스릴러와 폭력물에 뛰어난 감각을 지닌 감독이다. 그의 초기 대표작인 <캐리>(1976)와 <드레스드 투 킬>(1980)에는 여타 영화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유혈이 낭자하지만 아름다운(?) 느낌이 드는 장면이 있다. 더불어 그는 스릴러물에도 뛰어난 감각을 보이고 있는데, 바로 지금 언급하는 ‘하워드 혹스’의 1932년 작을 리메이크한 <스카페이스>(1983)를 들 수 있다.
이 영화는 1920년대 시카고를 주름잡던 전설적인 범죄단체의 보스 ‘알 카포네’와 목숨을 건 끈질긴 수사 끝에 그를 검거한 ‘엘리엇 네스’의 이야기를 기본 축으로 하고 있다. 영화 속에 담고 있는 플롯은 거의 사실을 바탕으로 했으며, 미국의 제2의 도시인 시카고가 얼마나 부패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알고 있는 마피아가 일개 범죄단체에서 기업형 조직으로 탈바꿈하게 된 계기가 바로 ‘금주법’의 제정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사실이다.
금주법이란, 말 그대로 주류 양조와 판매를 금지하는 법이다. 미국에서 금주운동이 적극적으로 일어나게 된 배경은 종교단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금욕과 절제를 강조하는 청교도적 윤리 때문에 술은 모든 악의 원천으로 생각되었다. 게다가 여성단체도 온갖 범죄의 온상이 바로 과음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동조함으로써, 결국 세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강력한 금주법이 미국에서 발효되었다.
허나 도덕적 혹은 사회정의적 차원에 바탕을 두고 시행된 금주법은 완전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였다. 즉, 술의 유통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다는 법 시행의 맹점을 파고드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금주법은 범죄단체의 대형화와 조직화를 가져왔으며, 그 중심에는 <언터처블>의 소재가 된 알 카포네도 포함된다.
알 카포네는 1893년 나폴리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부모의 아홉 자녀 중 넷째로서, 유년기를 빈민가에서 보냈다. 이미 13살 때 학교에서 포악하기로 소문이 났고, 담임교사와 교장을 폭행하여 퇴학을 당함으로써, 범죄자의 자질(?)이 있음을 보였다. 일찍이 소년시절부터 갱단에 가입한 그는 싸움 중에 상대방으로부터 왼쪽 뺨을 칼에 긁혔고, 후일 이 상처는 그에게 ‘스카페이스’(흉터난 얼굴, Scarface)라는 별명을 갖게 했다.
특히 알 카포네는 금주법의 시행과 함께 막대한 부를 축적했으며, 연간 6천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고 전해진다 (2009년이 아닌 1920년대의 수입이란 걸 생각해보라). 그리고 그는 이러한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주는 밀주사업을 독점하기 위하여 경쟁 갱단을 철저하게 제거하였다. 그는 킬러들을 고용하여 약 250명을 살해했으며, 여기에는 1929년 경쟁자인 ‘버그스 모런’ 휘하의 갱 단원 7명을 기관총으로 사살한 ‘성 발렌타이의 대학살’도 포함된다.
그러나 이러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밤의 제왕은 정의감에 불타는 무명(?)의 앨리엇 네스를 비롯한 소수의 연방 경찰에게 ‘살인교사’나 ‘밀주관련’ 혐의가 아닌 ‘연방소득 세법 위반’이라는 기상천외한 죄목으로 기소되었다. 그만큼 알 카포네가 자신의 범죄 혐의를 입증할 단서들을 남기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는 알 카포네로 분한 ‘로버트 드니로’가 극도로 흥분해 엘리엇 네스로 분한 ‘케빈 코스트너’의 멱살을 잡으려고 법정에서 소동을 피우는 것으로 끝나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인생무상이 느껴지기도 한다. 쇼맨십 강하고 자신만만한 밤의 제왕에게 11년 징역과 함께 8만 달러의 벌금 및 소송비용이 과해진 것이다. 그는 애틀랜타 주립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앨커트래즈 섬으로 이감되었다. 앨커트래즈 교도소는 탈출에 성공한 죄수가 한 명도 없는 곳으로 유명해 영화 <더 록>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다.
알 카포네는 출감하고 나서 플로리다주에 있는 자신의 농장에서 은둔 생활을 했다. 자신이 저지른 수많은 살인으로 인해 죽을 때까지 암살에 대한 공포로 시달렸던 것이다. 더욱이 그가 ‘매독’으로 죽는 비참한 운명에 처한 걸 보면 역시 범죄자의 말로는 좋게 끝나는 게 거의 없는 것 같다. 끝으로 알 카포네를 잡아서 명성을 얻은 엘리엇 네스는 후일 정치가로서의 야망을 가졌으나 낙선했다. 허나 전화위복의 길이 열렸다. 바로 이번에 소개하는 영화의 원작인 <언터처블>(1957)을 출간하여 세간의 주목을 다시 받게 되었으니 말이다.

연동원 역사학자ㆍ영화평론가
정임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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