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얀 이야기(두 번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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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얀 이야기(두 번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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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0.01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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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얀 이야기(두 번째 편)

<클래식 히든트랙>

카라얀 이야기(두 번째 편)

개인적으로 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한 중학생과 고등학생 시절 두 지휘자의 판을 유난히 많이 들었는데, 그 두 지휘자가 바로 ‘카라얀’과 ‘카를 뵘’이었다. 세련된 외모의 카라얀과 투박한 외모의 뵘은 동시대를 산 오스트리아인이었으나, 그들은 외모만큼이나 서로 다른 음악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스스로 레퍼토리를 극도로 제한하고, 대중과 타협하지 않고, 고집스럽게 자신의 음악세계만을 고수한 뵘과 대중과 호흡하고, 거의 모든 클래식 레퍼토리를 섭렵하며, 화려한 세계를 펼친 카라얀은 정녕 대조적인 음악인이었다.
나는 이들의 음악을 거의 동등하게 들으며, 동시에 좋아했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뵘의 음악이 험난한 고산준령高山峻嶺이라면 카라얀의 음악은 빼어난 자태를 지닌 수려한 명산名山이었다고나 할까…….
베토벤의 ‘교향곡 전집’ 첫 녹음과 베를리오즈Berlioz의 <환상 교향곡> 연주로 나와 카라얀과의 첫 만남은 시작됐고, 그 후 지금까지 그의 음악은 내 주위를 떠난 적이 없다.
그는 젊은 시절, 월터 레게Walter Legge의 영향 아래 주로 필하모니아와 EMI/Angel에서 작업하며 싱싱하고 세련된 음악을 보여주었다. 그 후, 후반기에 그는 주로 ‘그의 악기’인 베를린필하모니와 ‘노란딱지’ 도이치 그라모 폰Deutsche Grammophon을 통해 개성과 에고Ego를 남김없이 표출했다. 후반기에 갈수록 그의 음악은 중후하고, 기름지고, 화려해졌으며 잘 훈련된 베를린 필의 압도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을 사람들에게 선사했다.
카라얀은 월터 레게나 존 컬쇼John Culshaw와 같은 명 프로듀서들이 권력을 가졌던 시기에 대지휘자들이 권력을 갖도록 이끌어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느 프로듀서가 감히 후반기 카라얀의 권위에 도전할 수 있었겠는가? 그에게 종속적일 수밖에 없는 기악 협주자들과 성악가들을 거대한 오케스트라 밑에 묻히게 했다는 후반기의 그에 대한 비난은 그렇게 생겨난 것이다. 카라얀은 후반기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에고 때문에 개성 있는 거장 연주자보다 그의 개성을 잘 따라오는 경량급 신인 연주자들을 선호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강규형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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