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티야의 영광과 눈물
상태바
토르티야의 영광과 눈물
  • 윤덕노 음식문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7.04.10 01: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토르티야의 영광과 눈물

토르티야의 영광과 눈물

요즘 멕시코 음식의 인기가 만만치 않다. 낯설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초, 타코, 토르티야 등등 우리에게 익숙한 요리도 많다. 멕시코 음식의 기본은 토르티야다. 옥수수나 가루로 만든 얇은 전병인 토르티야에 어떤 재료를 어떻게 싸서 먹느냐에 따라 다양한 요리가 만들어진다.
 

토르티야를 반으로 접어 고기와 채소를 넣고 샌드위치처럼 먹는 것이 타코(taco), 반으로 접는 대신 둘둘 말아 한쪽 끝을 막아서 먹으면 브리토(burrito)가 된다. 과자로 더 많이 알려 진 나초(nacho)는 토르티야에 치즈와 칠리 페퍼 등 향신료를 뿌려 가볍게 먹는 음식이다. 고기나 해산물을 넣고 매운 고추소스를 뿌려서 오븐에 구우면 엔칠라다(enchilada), 치즈를 듬뿍 넣어 구우면 케사디아(quesadilla)다. 얼핏 비슷비슷한 것 같지만 묘하게 서로 다른 독특한 맛을 낸다. 

 그런데 많이 알려진 멕시코 음식에는 특징이 있다. 먼저 멕시코 음식이지만 미국에서 널리 퍼진 것들이고, 음식 이름이 하나같이 독특하다는 점이다.

토르티야(tortilla)는 스페인어로 작은 케이크이니 특별할 것도 없지만 토르티야를 말아서 먹는 브리토는 작은 당나귀라는 뜻이다. 각종 재료를 둘둘 만 것이 마치 당나귀 등에 얹는 짐 같아서 생긴 이름이다. 타코는 멕시코 은 광산에서 쓰는 화약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본다. 광산 노동자가 싸 온 도시락이 마치 화약 종이 처럼 생긴 것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나초는 레스토랑 종업원 이름이 어원이다. 주방장이 외출했을 때 온 손님이 이그나치오 (Ignacio)라는 종업원에게 요리 이름을 물어 보자 자기 이름의 애칭인 나초라고 가르쳐 준 것에서 유래했다.

이름 대부분이 우스꽝스러운데 우연의 일치 같지만 따지고 보면 토르티야의 역사와도 관 련 있다. 토르티야가 영광과 굴욕으로 얼룩진 음식이기 때문이다.

토르티야는 역사가 깊은 음식이다. 고대 마야 전설에서는 농부가 배고픈 왕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 바친 요리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영광의 음식임을 상징하는 전설인데 따지고 보면 토르티야의 원료인 옥수수 자체가 특별한 작물이다. 마야인들은 죽은 신이 옥수수로 환생 했다고 믿었고 기독교에서 하느님이 진흙을 빚어 인간을 창조한 것처럼 마야 신화에서는 조물주가 옥수수 반죽을 빚어 인간을 만들었다고 나온다.

이런 옥수수로 만든 음식이 토르티야지만 16세기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한 다음부터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정복자들은 옥수수 반죽 으로 만든 토르티야를 원주민이 먹는 천한 음식이라며 멀리했다. 하지만 맛있는 토르티야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옥수수 대신 중남미에는 없었던 밀을 유럽에서 가져와 가루 토르티야를 만들어 먹었다.

원주민은 옥수수, 백인은 가루 토르티야, 원주민 전통 음식은 하층민, 유럽 음식은 상류층 음식으로 이때부터 멕시코 음식문화가 계급화됐다. 같은 멕시코 사람이라도 유럽계 조상을 둔 멕시코 백인은 원주민이 먹는 전통 음식은 거의 먹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라를 잃으면서 음식마저도 이류 음식으로 천대를 받았던 것인데 멕시코 전통 음식이 부활한 것은 19 세기, 멕시코에서 민족주의가 싹트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한다. 


 하지만 멕시코 음식의 수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금은 미국에서 멕시코 음식이 햄버 거를 제쳤을 정도로 인기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멕시코 음식은 싸구려 음식의 대명사로 통했다. 일자리를 찾아서 혹은 난민으로 미국에 온 히스패닉의 음식이니 멕시코 음식에 대한 시선 역시 곱지 않았다.  토르티야로 만든 멕시코 음식에 작은 당나귀라는 부리토, 화약을 싼 종이라는 타코, 식당 종업원 이름인 나초 와 같은 이름이 생긴 난 이유다. 음식을 통해 역사를 보면 정치사, 경제사 와는 또 다른 보통 사람들의 생활사가 보인다.

윤덕노.bmp

윤덕노 음식문화칼럼니스트 
 ohioyoon97@daum.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인문캠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거북골로 34 (명지대학교) 학생회관 2층
  • 자연캠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명지로 116 학생회관 2층
  • 대표전화 : 02-300-1750~1(인문캠) 031-330-6111(자연캠)
  • 팩스 : 02-300-175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승환
  • 제호 : 명대신문
  • 창간일 : 1954년 11월
  • 발행인 : 유병진
  • 편집인 : 송재일
  • 편집장 : 한지유(정외 21)
  • 디자인·인쇄 : 중앙일보M&P
  • - 명대신문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명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jupress@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