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안전지대란 없다
상태바
완벽한 안전지대란 없다
  • 조수연 (아랍 15) 학우
  • 승인 2017.03.27 15: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명대신문을 읽고-1018호 12면 ‘빛이 없는 곳에서 오는 그들, 난민’을 읽고

완벽한 안전지대란 없다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로 알려져 있고, 아라비안나이트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도시인만큼 꼭 가보고 싶던 곳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 오랜 역사의 보고는 내전과 갖은 테러로 인해 그 모습을 잃어버렸다. 평화적 시위로 시작되었던 사건이 내전으로 번져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피해를 입은 참극으로변해버린 것이다.


시리아에서 생긴 불행의 원인은 단순히 내전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의 개입이 한몫 했다고 볼 수 있다. 시리아의 내전이 반정부군을 지지하는 국가들과 정부군을 지지하는 국가들 간의 대리전으로 성격이 변질되었기때문이다. 시리아의 이러한 참혹한 상황에서 세 가지의 과거의 상황이 오버랩된다. 우선 과거 한반도에서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이념대립이 대리전을 치른 것과 시리아의 내전이 닮아있다. 일제 식민지에서 독립된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두고 겪던 노선 갈등이 이념을 달리하는 양 진영의 대리전을 치렀듯이 시리아도 시아파와 수니파, 미국과 러시아의 대리전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자국의 이익 앞에 다른 나라의 불행은 염두에 두지 않는 국제사회의 모습이 닮았다.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 국가들은 난민 때문에 치르게 될 자국의 부담때문에 시리아의 불행을 외면하고 있다. 과거 1905년에 미국과 일본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으면서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를 묵인한 것을 연관시키는 것은 상상력의 과잉인 걸까? 전쟁의 공포와 죽음을 피해 살 곳을 찾는 난민들을 자국의 이해 때문에 외면하는 각국의 대응은 그동안 유엔이나 여러 평화 선언들을 통해 목 아프게 외치던 세계평화와 휴머니즘이 국가이익 앞에서 얼마나 허망하고 헛된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물론 국가는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 하여 나라를 부강하게 할 의무가 있으나, 21세기 세계 시민으로서 우리가 가져야할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마지막으로는 경제위기 상황에서 나타나는 배타주의의 오버랩이다. 30년대 대공황 때, 히틀러 정권이 유태인을 국외로 몰아내려 한 상황과 최근 세계적 불경기에 각국에서 시리아 난민을 포함한 반 이민 정서가 일고 있는 점이 닮았다. 게다가 시리아 난민 위기를 배경으로 극우파가 세력을 얻고 있는 것까지도 말이다.

시리아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복잡하듯이 우리의 주변도 그렇다. 또한 현재 한반도의 주변상황과 남북의 대립 상황은 매우 우려스럽다. 만에 하나 한반도에서 난민이 발생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우리를 받아줄 곳이 있기는 한 걸까? 시리아의 불행에 좀 더 관심을가져야 할 것 같고, 우리가 처한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명대신문을 읽고.jpg
조수연 (아랍 15) 학우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