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없는 곳에서 오는 그들,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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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없는 곳에서 오는 그들, 난민
  • 권민서 기자
  • 승인 2017.03.15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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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난민에 대해 알아보다

 기원전 8000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만 년의 시간동안 그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다마스쿠스, 드 넓은 사막에 우뚝 솟아 고대 실크로드의 무역 중개지로서 위용을 자랑하던 팔미라, 아름다운 중세 건 축물과 오랜 역사를 지녀 2006년 ‘이슬람 문화의 수도’로 UN이 선정한 세계 유산 알레포, 지름이 20미 터에 달하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물레방아의 도시 하마. 내전 전에 볼 수 있던 시리아의 모습이다. 하 지만 만 년을 버틴 세월이 무색하게 2011년부터 시작된 내전으로 모두 파괴되어 현재는 보지 못하는 풍 경이 됐다. 위 사진을 보면, 2014년에 233미터 상공에서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시리아의 모습은 어둡다. 3년 전에 비해 도시 불빛이 거의 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사진보다 현실은 더욱 비참하다. 무려 1,400만 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싸움을 피해서 국내외를 떠돌고 있다. 이 중 외국으로 떠난 ‘난민(難民)’들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화두에 올랐다. 전쟁을 피해 고국을 떠났지만 외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도, 국경 장 벽 앞에서도, 타지 사람들의 시선 앞에서도 전쟁을 치르고 있는 난민들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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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의 발발

시리아 내전의 시작은 낙서였다. 15명의 학생들이 이집트와 튀니지의 ‘자스민 혁명’ 구호를 벽에 적었는 데, 정부에서 이 학생들을 체포했고 모진 고문을 하다가 한 학생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시 민들은 학생들의 석방과 자유의 보장을 요구하는 평화 시위를 진행했으나, 정부는 시위를 총탄으로 제압 하며 결국 시민 중 사망자들이 발생했다. 정부의 무력 진압은 나라 곳곳에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당시 정부는 하페즈 알 아사드가 1971년에 집권을 시작하여 2000년 사망 후, 이어서 아들이 집권을 하고 있던 장기 집권 상황이었다. 그동안 억눌러왔던 분노가 폭발한 국민들은 2011년 7월 ‘자유 시리아군’을 형 성했고, 곳곳의 도시에서 비대칭 전쟁 형식으로 저항을 계속 했다. 이렇게 시작된 내전은 점차 주변 세력 이 개입하며 다른 국면으로 전개됐다. 반정부군은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정부군은 러시아와 이 란으로부터 지원을 받으며 대리전의 성격을 띠었다. 이외에 헤즈볼라와 쿠르드족도 내전에 개입하며 시 리아의 상황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형국이 되었다. 아랍지역학과 이종화 교수는 “현재 시리아가 처한 상 황으로 볼 때 당장의 내전 종식은 힘들며, 난민은 계속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군과 반정부군, 그리고 ISIS가 여전히 대치하며 대결하고 있고 외부적으로 러시아, 미국, 이란 등 강대국의 개입이 확대되어 내전 종식을 어렵게 하고 있다. 특히 종파와 인종의 복잡한 구도가 내전 종식의 꿈을 더욱 멀어지게 하고 있다” 는 의견을 밝혔다.

 

국제사회의 대처

유럽 또한 밀려들어 오는 난민들로 인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받아줄 수도, 안 받아줄 수도 없는 딜레마적 상황에서 점차 난민들을 감당하기 힘들어지자 강경책을 내놓는 국가들이 증가했다. 그러나 2015년 터키의 해변에서 시리아의 3살 아이인 알란 쿠르디의 사진이 퍼지며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는 충격에 휩싸였고, 난민 수용 정책의 국면을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그렇다면 현재 전 세계 각 국의 난민 수용에 대한 입장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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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난민, 우리나라의 상황은?

 

 1994년부터 2015년 12월까지 우리나라에는 15,250 건의 난민 신청이 접수됐다. 이 중 시리아 난민은 800 명에 육박하며, 2014년에 신청한 수만 502건이다. 그 러나 이 21년의 기간 동안 정식 난민으로서 신분을 인 정받은 사람은 단 세 명에 불과하다. 인정률이 0.4%도 되지 않는 것이다. 이 세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인도 적 체류자’ 신분으로 살고 있다. ‘인도적 체류자’란 난 민으로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면 고국에 돌아가야 하 지만, 인도적인 차원에서 ‘사태가 해결될 때 까지’ 우 리나라에 머물 수 있는 권리를 주는 것이다. 그러나 난 민과 인도적 체류자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인도적 체류자는 한국에 머물 권리만 있을 뿐, 그 외에 의료나 교육 등의 정부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다. 인도적 체류 자가 받는 G-1비자는 원칙적으로 취업이 금지돼 있는 데 사전허가를 받은 사업장에서 일을 할 수 있다. 그 러나 사전허가를 받은 사업장은 얼마 되지 않고, 체류 지위가 불안정해서 일자리를 얻기도 쉽지 않다. 전쟁 을 피해 한국에 온 대부분의 시리아 사람들은 말도 통 하지 않는 타국에서 사회적 혜택의 범위를 벗어나 살 아가야 한다. 난민 인정 조건 중 하나는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이다. 그러나 인도적 체류자가 되는 조건인 ‘본국으로 돌아가면 생명과 신체에 위협이 있는 상황’ 과 무엇이 다른지 찾을 수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는 2013년에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난민 법’을 제정하며 난민에 대한 공식적인 법안을 마련했 다. 그러나 난민법이 허울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존재 한다. 난민인권센터의 류은지 활동가는 “난민법이 시 행되기는 했지만 난민들의 처우는 크게 향상되지 않 았다. 난민들이 한국에서 안정적인 체류신분을 확보 하기 위해서는 법무부를 통해 ‘난민지위’를 인정받아 야 한다. 최대 3년 이상 걸리는 긴 심사기간 동안 난민 들은 불확실한 상황을 그저 견뎌야 한다. 지난해 난민 신청자 7,542명 중 법무부심사 또는 소송을 통해 난민 인정을 받은 이는 64명으로 신청인원 대비 인정률은 0.8%밖에 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전했다. 

 

 

난민, 도움이 필요하다

 

 난민들은 고국에서 모두 우리와 같이 평범한 생활 을 하던 사람들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타국 땅 에 들어와 인권 유린의 대상이 되기 쉬운 이들을 위 해 난민인권센터가 존재한다. 난민인권센터는 2009 년 3월에 설립된 비영리민간단체로 자유를 찾아 한 국에 온 난민이 다시 차별과 배제의 벽에 좌절하지 않 도록 난민과 함께하는 NGO다. 이 단체는 2009년부 터 난민인권센터에서 정부에 합리적 제도의 운영을 요구하고, 시민들에게 난민에 대한 이해와 공감의 기 회를 제공하고 있다. 류은지 활동가는 난민이 우리 와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며 “누군 가의 가족이자 직업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모 든 일상과 관계를 잃어버리고 뿌리 뽑히게 되었을 때 그들을 ‘난민’이라고 지칭하게 되는 것일 뿐, ‘난민’이 누군가를 규정하는 정체성의 전부는 아니다. 난민들 이 되찾고 싶은 건 그저 평범한 일상이다. 가족들과 밥을 먹고, 미래를 꿈꾸는 평범하디 평범한 일상. 여 러분이 매일 누리시는 일상을 난민들과 나누어주셨 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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