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ㆍ서와 고ㆍ금, 그리고 한국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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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ㆍ서와 고ㆍ금, 그리고 한국의 정치
  • 장원목(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 승인 2016.11.2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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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ㆍ서와 고ㆍ금, 그리고 한국의 정치

서와 고금, 그리고 한국의 정치

“하나 속에 일체가 있고 여러 속에 하나가 있어, 하나가 곧 일체요 여럿이 곧 하나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다른 듯하면서도 모두가 현재의 이 마음에 함께 있어서, 얽힌 듯 얽히지 않고 각각 뚜렷하게 이루어져 있다.” 시간과 공간, 즉 부분과 전체 혹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서로 구분되는 듯 보이지만 실은 도저히 나눌 수 없는 하나 전체를 이루고 있다는 말이다. 의상(義湘, 625~702) 스님의 <법성게>에 나오는 말이다.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라 불리는 지금의 긴박한 정치적 사태의 본질은 대통령과 그 주변의 정치적 실세들, 이에 동조한 재벌들이 명백하게 현행법을 위반한 데 있고, 그 해법은 법에 따라 처벌하면 된다. 물론 그 이전에 사태의 진실이 명명백백히 밝혀져야 하고, 국민의 법 감정에 수준에 맞게 엄정한 객관적 판단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이 사태가 워낙 심각하고 그런 만큼 생각들도 분분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법과 원칙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검찰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고 그 결과에 따른 의법조처가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법적 차원의 해결은 그저 표면적이고 문제 해결일 뿐이다.
 

심각한 것은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최순실과 박근혜 등 몇몇 미성숙한 개인의 실수 혹은 단순한 하나의 우발적인 정치적 사건에 불과한 것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 문제의 뿌리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복잡다단한 우여곡절이 그 배경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미 이점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박근혜-최순실의 문제는 우리로 하여금 근원적인 반성을 촉구한다.

동서 충돌 이래로 서서히 무너져 내린 동아시아 문명, 중국의 몰락, 한일합방, 남북 전쟁, 5.16 군사 쿠데타, 4.19 혁명, 한일협정, 근대화, 새마을 운동, 재벌의 형성과 정경유착 등이 당면한 이 문제의 원천이다. 좀 더 나아가 우리가 문제의 본질에 점점 더 깊이 다가갈수록 반드시 마주치는 더욱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사실 이 ‘근원 문제’는 지금 우리가 당면하는 문제들의 뿌리, 즉 ‘심층적 문제’, ‘문제의 문제’, 혹은 ‘문제 자체’라 말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동(東)서(西)의 문제’와 ‘고(古)금(今)의 문제’이다. 현재 우리가 만나고 있는 이 심각한 문제의 심층에는 동서충돌이 만들어낸 동양적 가치와 서양적 가치의 어색한 만남이 진동을 일으키고 있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단절된 우리 전통의 힘이 왜곡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더는 동양인도 아니고 서양인도 아니다.
 

그래서 어렵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제 감성적 차원을 넘어서서 좀 더 이성적이고 성찰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법과 도덕 차원을 넘어 철학적 형이상학적인 성찰까지도 진행해야 한다. 우리 국민, 특히 우리 대학생들은 더욱 진지한 태도로 한국 독립운동사, 한국 근현대화의 과정, 현대 한국 지배층의 형성 과정, 독재와 재벌의 형성 과정, 민주화 과정 등등에 관해 공부해야 한다. 동양적 사유와 서구적 사유의 본질에 관해서도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하다. 근대화 과정을 통해 비판 없이 수용한 서구적 가치관과 서양 사대주의도 극복해야 할 것이고, 건강성을 잃은 폐쇄적 민족주의도 극복해 나가야 한다.
 

진정한 개혁은 현재의 문제에 대한 예리한 진단과 함께 과거에 대한 냉철한 반성을 바탕으로 할 때만 성공할 수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 개혁과 건강한 경제 체제 구축을 위한 경제 개혁 등이 당장 시급한 문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이 최종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문화와 정신과 철학 차원의 건강성을 회복해야 한다. 문제의 해결도 중요하지만 ‘문제의 문제성’, 즉 ‘문제 자체의 의미’를 숙고하는 일은 더욱 중요하다. 인간은 본질에서 의미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명진칼럼 장원목 교수님 사진.jpg

장원목(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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