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국의 목소리를 모아서
대학가 시국선언 행진 잇따라
이화여자대학교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 이후 총장 퇴진을 요구하던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현재의 최순실 사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최순실(60)의 외동딸로 알려진 정유라(20)의 특혜 의혹을 시작으로, 이전에도 논란이 되었던 K스포츠, 미르재단과 더불어 국정농단에 팔선녀까지. 비선실세 최순실을 둘러싼 박근혜 정권의 책임을 다시 대학생의 이름으로 묻는다.
최순실은 누구인가?
최순실(이하 최 씨)은 영세교 교주 최태민의 딸로 박근혜 대통령(이하 박 대통령)과 40여 년간 친분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1976년 박 대통령이 최태민이 설립한 대한구국선교단의 명예총재로 추대된 후 이 단체는 구국여성봉사단, 새마음 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꾸게 되는데, 이때 최 씨가 대학생회장을 맡으며 박 대통령과의 친분을 쌓은 것이다. 그 후 최 씨는 박 대통령의 오랜 벗으로 자리를 지켰다.
지난달 24일, JTBC는 최 씨의 것으로 추정되는 태블릿PC에서 극비 문서를 포함한 연설문이 총 44개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그중에는 ‘2012년 군 당국이 북한 국방위원회와 세 차례 비밀 군사접촉을 했다’는 군사 기밀과 극비 문서인 ‘2014년 3월 독일 드레스덴 연설’ 등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외교 관련 문서가 포함돼 있는데, 최 씨는 이를 ‘미리’ 받아 열람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것에 따르면 이는 각종 기밀 누설 혐의와 대통령기록물 관리법 위반에 해당한다.
‘최순실 재단’으로 불리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은 국정농단의 표본으로 볼 수 있다. 재단 설립 과정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이 대기업을 상대로 강제 모금을 진행했다는 의혹부터, 두 재단이 국정 개입을 했다는 의혹까지 끊이질 않는다. 실제로 민간 비영리법인에 불과한 미르 재단의 이한선 이사가 일곱 차례 열린 2016년 ‘코리아에이드 정부 합동 TF회의’에 참석한 사실이 국정감사를 통해 확인되면서 국제개발 협력 정부정책 결정 과정에도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민들은 최 씨의 처벌과, 박 대통령의 책임을 요구하며 지난달 29일 청계광장 1차 촛불집회, 지난 6일 2차 범국민 행동 분노문화제 등으로 분노를 표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책임자 처벌 요구에도 검찰은 투기자본감시센터가 최 씨를 고발한 9월 29일로부터 한 달이나 지난 10월 26일 첫 압수수색에 나서는 등 늑장 수사로 일관하고 있다.
지성인의 이름으로 외치다
지난달 26일 이화여자대학교, 서강대학교 등을 시작으로 대학가의 시국선언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이 국정 운영에 있어 일반의 적극적인 개입을 허용해온 것에 대해, 비판하고 책임을 묻기 위함이다. “대한민국은 최순실의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입니까?”(이화여자대학교 해방이화 총학생회), “오늘, 대한민국의 주인을 다시 묻는다”(경희대학교 자주경희 총학생회), “선배님, 서강의 표어를 더 이상 더럽히지 마십시오”(서강대학교 청년서강 총학생회) 등 대학별로 시국선언이 이루어졌다.
이에 힘입어 지난 2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월호광장에서는 전국대학생시국회의(이하 시국회의)의 주최로 ‘박근혜 정권 퇴진! 전국 대학생 시국회의 선포식’이 개최됐다. 이 시국회의의 공동대표는 안드레 동국대학교 총학생회장과 최은혜 이화여자대학교 총학생회장이 맡았다. 시국회의는 이날 선포식을 시작으로 지난 3일 각 대학 캠퍼스별로 학내 집회를 개최하는가 하면, 5일에는 ‘동시다발 전국 대학생 지역별 시국대회’를 진행했다. 일부 대학의 총학생회는 이를 SNS로 알리고, 참여하는 학우들의 안전을 위하여 깃발을 들거나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등 많은 노력을 가했다. 한편, 우리대학의 총학생회는 시국회의에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대학교수들의 시국선언 또한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27일 성균관대학교에서 시작된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전국으로 퍼진 것이다. 지난 1일 인천대교수 128명은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고 ‘비선실세’ 최순실 국기 문란 사태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가 침몰하는 민주주의를 구하는 길”이라며 퇴진을 촉구했다. 같은 날 숙명여자대학교에서도 105인의 교수들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국민 주권 회복을 위해 대열에 함께할 것을 선언했다.
구국명지, 다시 한 번 나라를 구할 때
우리대학 총학생회도 느린 보폭으로 대학가 시국선언에 합류했다. 총학생회의 시국선언 촉구가 빗발친 직후인 지난달 27일, 양캠 총학생회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시국선언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자연캠 IMPACT 총학생회는 경기도 대학생 협의회(이하 경대협)와 논의 후 정해진 장소에서 시국선언문을 공동 발표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으며, 인문캠 더블,U 총학생회는 같은 달 31일 인문캠 학생회관 앞에서 시국선언을 진행할 예정이라는 글을 게시했다. 이에 31일 오후, 양캠은 시국선언을 진행했다.
앞장선 타 대학들과는 달리 인문캠 더블,U 총학생회는 비교적 간단하게 시국선언을 진행했다. 기성언론의 취재나 학내집회 없이, △시국선언문발표 △자유발언대 △성명운동으로 구성된 이번 인문캠 시국선언은 학우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진행됐다. 이에 자유발언대에 선 박대윤(디미 12)학우는 “지난 29일 촛불집회에서 이화여자대학교, 동국대학교 등 많은 총학생회들이 학생들을 데리고 앞장서는 모습을 보았다”며 “하지만 우리대학 총학생회는 없었다. 과연 이 시국선언이 무슨 의의를 가지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발언했다. 지난 6일경에는 ‘총학생회는 시국선언 퍼포먼스를 철회하라’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인문캠 정문 앞에 붙기도 했다. 페이스북 ‘명지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는 이에 대해 “꼭 총학이 같이 시위에 참여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는 의견과 “동감한다. 일회성의 시국선언을 지지한 것이 아니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이에 인문캠 더블,U 총학생회 측은 별다른 입장표명이 없는 상태다.
자연캠 IMPACT 총학생회는 예고한 대로 경대협과 공동으로 시국선언을 진행했다. 이번 시국선언에서는 △특검 구성과 연루 당사자 구속 등 ‘최순실 게이트’ 진상규명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 인정과 사과 △정부와 검찰의 국민을 위한 책임 있는 수사 진행 등을 요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경대협 공동 시국선언에 참여한 학교는 우리대학 자연캠 외 △강남대학교 △경기대학교 △서울예술대학교 △수원대학교 △수원여자대학교 △안양대학교 △용인대학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한양대학교 ERICA 캠퍼스 △협성대학교 등 11개 대학 총학생회가 참여했다.
대학언론이 언론인 여러분께 묻습니다
이번 사태 이후로 언론에 대한 비난도 끊이지 않고 있다. 본질을 흐리는 자극적인 제목을 쓰는 몇몇 기사들 밑에는 ‘기자’와 ‘쓰레기’를 조합한 신조어인 ‘기레기’가 댓글로 달리는가 하면, 급기야 국민 집회 현장을 취재하려다 시민들에게 ‘니들이 언론이냐’라는 소리를 듣고 쫓겨나기도 했다. 결국 지난달 31일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 등 언론단체들은 양심선언에 나섰다. 광화문 광장에 모인 언론인들은 “진실을 밝히려는 취재와 보도에 대한 어떠한 방해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며 “마지막까지 언론의 사명을 다 해 진상규명을 투명하게 지켜볼 것”이라고 자성의 목소리를 더했다.
이에 대학언론도 목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지난 7일 서울권대학언론연합회에서는 각 대학 신문사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공동성명문을 기재했다. △우리는 진실을 보도하는 언론입니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언론 △다시 한번 기자의 사명을 떠올려주십시오 로 구성된 이번 공동성명문은 본지 외 23개 대학언론이 참여했다. 이번 공동성명문은 언론의 본질과 의무에 관해서 묻고, 무분별한 보도로 국민의 신뢰를 잃은 언론의 현실을 되돌아보며, 끝으로 오직 진실만을 보도해달라는 부탁을 담고 있다.
서을권대학언론연합회 이효석(중대신문 편집장) 회장은 “이번 최순실 사태를 통해 한국 언론의 슬픈 자화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대학언론에 속한 언론인으로서 기성언론으로부터 일정부분 배우기도 하는데, 이러한 자세는 배울만한 가치가 없는 행태들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도 대학사회에서 언론 가치를 위해 노력해야하고 기성언론도 노력해달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 공동으로 목소리를 냈다”고 전했다.
시국선언, 현장 속으로
정수민 기자 zasmin97@mju.ac.kr
서울권대학언론연합회 공동성명문
우리는 진실을 보도하는 언론입니다
우리는 대학언론입니다. 대학언론은 대학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추는 등대입니다. 대학이 대학 본연의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비판하며, 교직원과 학생 사회를 연결하는 소통 창구입니다. 학내 구성원들의 무관심, 대학 본부의 간섭과 편집권 침해에도 기자들은 꿋꿋이 서서 대학사회를 바라보고자 합니다. 당신은 언론입니다. 언론은 시민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감시자입니다. 어떠한 압력이나 침해로부터 언론의 자유를 수호하고, 이를 부당하게 간섭할 경우 단호히 거부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진실이라는 가치를 위해서는 그 어떤 것도 포기할 수 있는 것이 기자이자 언론입니다. 언론이 권력과 결탁할 때, 자유를 상실하고 이익을 추구할 때, 그리고 독자의 ‘신뢰’가 사라질 때 언론은 존재 가치를 상실합니다. 그리고 그 신뢰는 오랜 기간 언론의 자유를 위해 투쟁해야만 비로소 획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선실세의 국정 농단이라는, 헌정 초유의 사태를 다루는 언론의 현 보도 행태는 시민들의 비판과 외면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로 인해 지금 언론은 가장 중요한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언론
아니, 사실은 예전부터였습니다. 공영언론이 늘상 내세우는 권력으로부터의 독립과 공공성은 허울에 불과했습니다. 공영언론은 정부ㆍ여당의 입맛에 맞는 사장단 인사와 정부의 검열에 저항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이들은 자체 검열을 통해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는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최순실 게이트가 밝혀진 후, 여러 언론이 보도에 열을 올리고 있는 사이 그들은 낙종하고 보도 경쟁에서 밀려나 사건을 흐리는 물타기 보도에 전념했습니다. 언론이 더 이상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될 정도의 변곡점을 지난 후에는, 보도에 편승하며 차기 권력으로의 갈아타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촛불을 들고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너희가 언론사냐”라며 그들을 쫓아냈습니다. 특종보도 경쟁에 맹렬히 몰두하고 있는 언론사들도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정치공학적인 계산에 따라 언론사의 이익에 유리한 시점을 골라 보도하고, 사건의 본질과 관계없는 자극적인 소재만을 파헤쳤습니다. “내일이라도 죽고 싶다”는 반협박성 발언이 담긴 최순실의 인터뷰가 1면에 실렸습니다. 그녀가 신은 명품 신발 가격에 대한 기사와, 실세의 최측근이 호스트바에 일할 때 얼마를 벌었다는 의미 없는 기사가 이 시국의 본질을 흐리고 있습니다. 이런 황색 언론의 행태와 함께 “여자가 나라를 망친다”는 성차별적인 발언이 포함된 뉴스에, 사람들은 싸늘한 시선을 보냅니다. 국민들은 더 이상 언론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시민사회는 언론의 사명을 지금도 실천해가고 있는 소수의 이들에게 열띤 응원과 박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진실’만을 추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을 보도하는 것은 단순히 시간과 노력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사실과 달리 진실은 발견하는 것이 아닌, 발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의 발굴은 노력뿐만 아니라 기자로서의 신념과 사명이 뒤따를 때 가능합니다. 국민은 거짓과 선동에 속지 않습니다. 그들은 진실만을 원하며 본질을 호도하는 세력을 낱낱이 가려내고 있습니다. 언론도 책임을 피할 수 없습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진실을 놓치고 있는 언론에 단죄의 칼날을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기자의 사명을 떠올려주십시오
당신은 한 때 치기에 넘쳐, 사회를 바꿔보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찬 청년이었습니다. 친구들과 밤새 불의한 사회에 울분을 토하는 당신이었습니다. 빛이 비추지 않는 어두운 곳을 향하기 위해, 그리고 그곳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기자를 꿈꾸던 당신이었습니다. 박봉에, 매일 쪽잠을 자고, 현장을 지키느라 가족의 얼굴을 보지 못하더라도 어려운 길을 선택한 당신이었습니다. 당신은 기자가 되면서 진실을 수호하고 보도하겠노라고 다짐했었습니다. 과거의 모습을 잊은 당신에게, 과거의 당신을 닮은 우리들이 말합니다. 오직 진실만을 보도해주십시오. 옳은 장소에서, 옳은 일을 하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라면, 언론인은 어떠한 계산도 하지 않고 저널리즘만을 실천해야합니다. 그 단순한 목표를 향해 묵묵히 나아간다면 언젠가 시민들은 다시 언론을 신뢰할 것입니다. 대학언론 또한 작금의 사태에 우리의 무능함을 반성합니다. 우리는 비선실세의 국정 개입이 대학사회까지 오염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는 대학사회가 우리에게 맡긴 언론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러니 당신도 이 혼란스런 한국사회에서 당신에게 맡겨진 그 사명을 다시 한 번 떠올려주십시오.
서울권대학언론연합회
대학가 시국선언 행진 잇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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