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에 담긴 덕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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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에 담긴 덕담
  • 윤덕노 음식문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6.11.14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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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에 담긴 덕담

엿에 담긴 덕담
 

17일은 대입 수능일이다. 올해도 수많은 수험생이 어김없이 합격 엿을 먹으며 좋은 점수받기를 기도할 것이다. 그런데 수험생들은 왜 엿을 먹을까?
 

엿이 끈끈하니까 엿처럼 시험에 철썩 붙으라는 의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오직 엿의 접착력 때문에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중요한 시험에서 엿을 합격을 기원하는 부적으로 삼았던 것일까?
 

또 하나, 수험생이 엿을 먹는 전통은 무척이나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과거 보는 집에서는 엿 고는 단내가 난다”는 속담도 있고, 1773년의 영조실록에는 과거 보는 시험장에 엿장수가 들어와 엿과 떡을 팔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수백 년 전에도 시험 볼 때 엿을 먹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오직 끈끈하니까 엿처럼 붙으라는 이유만으로 엿이 수백 년 동안 합격 기원 음식이 됐을까?
 

혹시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 특별한 날 엿 먹는 풍속은 무척 오래됐고 다양했다. 단지 시험 볼 때만 엿을 먹었던 것이 아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풍속이지만 딸 시집보낼 때 친정어머니가 정성껏 준비하는 것이 이바지 음식이다. 지역 따라 그리고 집안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이바지 음식에도 엿을 넣는다. 인터넷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시집 식구 입막음용이라고 풀이한다. 엿 먹고 시집 식구 입이 붙어 딸 흉 못 보게 해 달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왜 이바지 음식에 엿을 넣어 보낼까?
 

결혼식 폐백 상에도 엿을 놓는다. 대추와 밤을 놓는 이유가 빨리 자손을 많이 보라는 뜻인 것처럼 엿 역시 신혼부부가 엿처럼 달라붙어 사랑하며 백년해로하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사실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중국에도 비슷한 풍속이 있다. 중국 신랑 신부는 결혼식이 끝나면 쟁반에 엿을 담아 하객에게 돌리며 인사한다. 이 엿을 기쁠 희(喜) 사탕 당(糖)자를 써서 ‘희당’이라고 한다. 하객과 결혼의 기쁨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다. 물론 지금은 엿 대신 사탕을 담는다. 왜 엿을 돌리며 기쁨은 나누는 것일까?
 

엿을 먹는 날이 또 있다. 예전에는 설날이나 대보름날 집집마다 엿을 고았다. 엿 만들기가 번거로우면 엿의 전 단계인 조청이라도 만들었다. 설날이나 대보름날 먹는 엿을 복(福) 엿이라고 한다. 새해 복 엿을 먹으며 일 년 내내 기쁜 일이 생기게 해 달라고 빌었고, 살림이 엿가락처럼 죽죽 늘어나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엿에 왜 이런 소망을 담았을까? 엿을 뜻하는 한자에서 그 비밀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 엿을 나타내는 한자는 여럿이 있지만, 옛날 가장 많이 사용했던 글자가 엿 이(飴)자다. 그런데 이 글자를 분해해서 풀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먹을 식(食)에 기쁘다는 뜻의 태(台)자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다시 기쁠 태(台)를 파자해서 풀어보면 아무 모(厶)자 아래에 입 구(口)자로 이뤄져 있다. 입을 세모로 방긋거리며 웃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다. 먹어서 기쁘다는 뜻이고, 먹으면 웃음이 나온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 바로 엿이라는 글자다. 입이 저절로 벌어져 웃음이 나올 정도로 좋은 음식이라는 뜻이다.
 

엿이라는 글자에 왜 이렇게 엄청난 의미를 부여했을까? 지금은 엿을 귀하다고 여기는 사람 한 명도 없을 것이고 한낮 군것질거리로 전락한 엿이지만 옛날 엿은 달랐다. 곡식을 고아서 만들었기에 귀하디귀한 음식이었다. 먹을 양식도 부족했던 시절, 곡식을 조리고 또 조려서 에센스만 남겨 만든 것이 바로 엿이기에 엿은 아무 때나 먹는 음식이 아니었다. 특별한 날에만 만들어 먹었다. 그러니 엿을 먹으면 저절로 웃음이 나오고 그러기에 엿을 복을 부르고 기쁨을 나누는 음식으로 여겼다.
 

그러니 수험생에게 엿 먹이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단순히 끈끈하니까 엿처럼 붙으라는 의미를 넘어서 엿을 먹고 합격의 웃음과 기쁨을 미리 맛보라는 덕담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바지 음식에 엿을 넣는 것 역시 사돈의 인연을 맺었으니 혼사의 기쁨을 함께 나눈다는 의미, 폐백 상의 엿 고임 역시 백년해로의 기쁨을 누리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설날 그리고 대보름에 먹는 복 엿 역시 일 년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고 복 많이 받으라는 덕담의 뜻이다.

푸드인문학 칼럼 인물 사진.jpg
윤덕노 음식문화칼럼니스트
ohioyoon9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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