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츠와 아우슈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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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츠와 아우슈비츠
  • 박정오(방목기초교육대학 인문교양) 교수
  • 승인 2016.11.14 0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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왈츠와 아우슈비츠

왈츠와 아우슈비츠
 

몇 해 전 여름, 동유럽 여행을 떠났다. 유태계 천재작가 카프카의 고향인 프라하는 10세기의 고색 창연한 성당부터 현대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건축양식을 간직한 놀랍도록 아름다운 도시 였다. 잦은 외세의 침략에도 이 아름다움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 쉽사리 항복한 이유 때문이라니 아이러니하다. 그래서인지 넘쳐나는 관광객의 활기와는 대조적으로 오랜 식민지와 공산체제를 겪은 체코인들은 카프카의 소설만큼이나 우울해 보인다. 동화책 그림 같은 멋진 성과 아기자기한 마을에 이어 방문하게 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 건물과 돼지우리보다 못한 막사를 지날 때 나던 메케한 냄새가 지금도 나는 듯 속이 울렁거린다. 20세기 초 지구 상에서 가장 선진화되고 수준 높은 문화를 이뤘다고 자부하던 유럽에서 일어난 야만의 현장이 일부지만 고스란히 남아있다. 바로 가스실로 보내진 아이들의 신발, 곧 돌려줄거라 믿고 정성스레 이름을 써 놓은 여행 가방, 카펫을 짜는 데 썼다는 유대인들의 머리카락들이 전시돼 있다. 좀 더 늦게 태어났더라면 병약한 카프카는 여기서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도대체 현대 유럽에서 이 엄청난 대학살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히틀러 혼자의 광기로 가능했던 역사는 결코 아니다. 핵심 권력층과 많은 지식인들, 평상시에는 선량한 시민이었을 독일군인들, 자신의 이익에 급급하거나 무관심한 일반 사람들의 그릇된 판단과 동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집단적 광기와 폭력의 현장인 아우슈비츠에서 그 누구도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지나고 보면 너무나 명백한 잘못도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을 때는 잘 볼 수 없기 마련이다. 독일인들이 사죄하며 이제 제발 그만하라 해도, 똑똑한 유대인들은 계속해서 영화와 책을 통해 그들이 당한 고통을 알리며 증언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여행은 다시 깨끗하고 화려한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궁전과 거리로 이어졌다. 우아하고 정교한 춤 왈츠를 가르쳐 주는 프로그램도 있어서 동작을 따라 해 보는데 어렵지만 재미있다.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브르크에서는 모퉁이마다 음악이 넘쳐흐르고, 카페에는 저녁 음악회를 위해 턱시도를 차려입은 사람들이 비엔나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마냥 여유롭다. 모차르트의 음악에 맞춰 왈츠를 추는 행복한 상상에 젖어본다. 그런데 어느새 슬그머니 아우슈비츠의 잿빛 그림자가 옆에 와 자리를 잡는다. 손을 저어보지만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다. 이토록 아름다운 왈츠를 만든 것도, 그토록 추악한 아우슈비츠를 만든 것도 결국 인간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엄청난 분량의 소설에서 자연에 대한 묘사가 왜 전혀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인간을 탐구하기에도 벅차서 자연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정말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우리 주위에도 경악을 금치 못할 일들로 가득하다. 왈츠의 세계를 만들어 갈지 또 다른 아우슈비츠를 만들지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소용돌이 속에 있을수록 냉철한 직시와 현명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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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오(방목기초교육대학 인문교양)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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