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넘어 우리를 생각하는 리더, 아산시장 복기왕(무역86) 동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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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넘어 우리를 생각하는 리더, 아산시장 복기왕(무역86) 동문을 만나다
  • 윤휘종 기자
  • 승인 2016.10.31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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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넘어 우리를 생각하는 리더, 아산시장 복기왕(무역86) 동문을 만나다

나를 넘어 우리를 생각하는 리더, 아산시장 복기왕(무역86) 동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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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왕 동문(이하 복 동문)은 멀리서 온 후배를 환한 미소로 맞이했다. 첫인상부터 후배를 향한 애정이 느껴졌고 인터뷰 내내 ‘나’보다는 ‘우리’를 생각하는 복 동문의 넓은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복 동문의 따듯한 말 안에는 후배를 아끼는 선배가 줄 수 있는 따끔한 조언도 숨어 있었다.
기자가 만난 복 동문은 약자와 공동체를 걱정하는 뜨거운 심장을 간직한 청년 복기왕의 모습 그대로였다.


 

< 학 력 >

○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도시지방행정학과 졸업(행정학석사)

○ 명지대학교 무역학과 졸업(총학생회장 역임)

○ 아산중ㆍ고등학교 졸업

○ 온양초등학교 졸업

 

< 경 력 >

○ 現) 아산시장(재선 : 민선5기, 민선6기)

○ 現) 전국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부회장

○ 現) 대한민국 의병도시협의회 감사

○ 前) 제17대 국회의원

○ 前) 노무현 대통령후보 아산시선거대책위원장

○ 前) 대통령정책실 신행정수도건설추진기획단 자문위원

○ 前)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동우회 회장

 


Q. 대학시절부터 학생 운동을 많이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학생이었나?
A. 공부는 안 하고 말썽만 부리는 학생이었다. 당시 전두환 정권 시절이어서 민주화 운동을 하지 않으면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에 떨어지는 학교가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다. 고등학교 때 국정교과서로 공부해서 세상에 대해 몰랐는데 대학에 들어가서 큰 충격을 받았다. 대학에서 많은 정보를 접하고 나니 세상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맞구나 생각했다. 학교와 동아리 주도로 많은 학생들이 민주화 운동을 했고 나도 열심히 민주화 운동을 했다. 공부를 하기보다 민주화 운동만 죽도록 했다. 졸업 이후에도 자취방에서 혼자 저녁을 먹던 중 뉴스에서 강경대 열사 사건이 나왔을 때, 바로 숟가락을 내려놓고 세브란스 병원으로 달려갔던 적도 있다.

Q. 총학생회장까지 역임했다. 그때를 돌아본다면?
A. 학생회에서는 학우들의 의견을 모으는 인생수업을 했다. 수업시간에는 배울 수 없는 것이었다. 현장에서 민주주의를 체험한 셈이다. 학생회장이 독선적이면 학생회가 잘 굴러가지 않는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의 공통점을 찾아가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강단 있게 버티기도 해야 한다. 현재 그때 했던 활동이 내게 큰 도움이 된다. 아산에는 수많은 시민이 있다. 농민들의 이해관계와 기업인들의 이해관계, 아이들과 어른들의 이해관계가 다르다. 이런 것을 조화롭게 만들어 내는 것이 정치다. 총학생회에서의 활동이 나에게 치우치지 않고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법을 가르쳐줬다.

Q. 그 외에 다른 동아리 활동도 했다고 들었다.
A. 농어후생연구회 활동을 했다. 농어후생연구회는 당시 극예술연구회, 민속예술연구회와 함께 시대를 걱정하며 토론도 하고, 동학농민운동과 70년대 여러 가지 농민운동에 대해 공부했다. 그 당시 선배들이 보내주는 책을 받고 충격을 받았다. 당시에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국가보안법에 걸렸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이 사회에서의 청년의 역할을 고민했다. 지금의 청년들도 사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사회를 위한 고민을 하는 청년들이 미래의 이 사회의 주역이다.
 

Q. 대학시절,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었나?
A. 4학년 때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민주적인, 모범적인 학생회를 만들 것인가?’였다. 그리고 통일에 대한 고민을 했다. 미래에 대한 고민 중 통일은 꼭 들어가야 하니까. 청년이 민족의 미래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청년들이 계속해서 남과 북의 만남을 주장해야 하고 시도해야 한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잊혀진지 오래다. 너무나 안타깝다.
 

Q. 지난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정치인을 꿈꾸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A. 학생 운동을 하면서 정치인이 되리라는 것은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다. 당시엔 정치인들에 대해 아주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정치와 사회는 다른 영역이 아니고 상당한 교집합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회 참여를 하면서 건강한 정치인들을 응원하게 되고 세월이 흘러 나에게도 정치 참여의 기회가 자연스럽게 주어졌다. 지금도 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정치를 통해 어떤 지위까지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이 없다. 그
래서 편하다.
 

Q. 아산시장으로 연임 중이다. 시장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A. 무한한 책임감, 그리고 ‘언제든지 시민으로 돌아간다, 나는 시민이다’라는 생각.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일하면 적어도 큰 과오는 범하지 않을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시장’하면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착각한다. 아니다. 나는 시민의 한 사람이다. 시민의 대표로서 잠시 시민들이 ‘너의 소신대로 아산을 이끌어봐라’라며 맡겨준 것이지 내가 특별히 잘난 것은 아니다.
 

Q. 시장으로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A. 좋은 정책을 시행했을 때 그렇다. ‘실개천 살리기 운동’을 꼽을 수 있다. 적은 재정투입과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 실개천을 살렸다. 그리고 아파트의 ‘고령 경비원 지원 사업’은 인간적이고, 사회 공동체를 따듯하게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고마움의 표현을 받았을 때도 마찬가지다. 어느 할머니의 감사편지를 받았을 때와 성당에 있는 아이들이 편지를 모아서 보내줬을 때, 정말 행복하고 감사했다. 그럴 때면 지금 임기가 7년째인데 과연 내가 잘하고 있나 되돌아보게 된다.
 

Q. 어떤 시장으로 남고 싶은가?
A. 우선 시민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현재 아산시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데 성장을 하면 성장통이 있기 마련이다. 아산에도 갈등이 있다. 따라서 상대적으로 행복감이 떨어질 수 있다. 언제까지 성장할지는 모르지만, 성장과 더불어 행복을 이뤄내고 싶다. 나중에 은퇴했을 때 “복기왕이 시장이었을 때 고생했어, 그래도 잘했어”라는 말을 듣고 싶다. 그러면 성공한 인생
이라 생각한다.
 

Q.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A. 어떻게 알겠나. 다만 나만을 위한 꿈을 좇아가지 않겠다. 우리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국민을 어려워하고 국민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대한민국을 꿈꾼다. 북한주민을 향한 연민을 느끼는 나라, 대기업 중심이 아닌 많은 중소기업이 튼튼히 받치는 경제구조, 불합리한 고용구조가 개선되는 나라, 이런 부분을 위해 역할을 다할 수 있다면 어느 자리에서나 최선을 다하겠다.
 

Q. 과거 복 동문의 청년 시절과 지금 시대의 청년들은 많이 다른 모습이다.
A. 우리 선배 시대의 잘못이기도 하다. 지나치게 학생들을 취업 전선에만 몰아붙이고 있다. 과거에 대학생 집단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집단이었다. 하지만 지금 대학생은 그렇지 않다. 그들의 관심은 취업에만 있다. 내가 대학생일 때를 돌이켜 보면 치기 어린 시절이 었지만 공동체에 대해서 고민했다. 당시엔 대학생이라는 혜택 받은 계층으로써 사회적 보호를 받아 다소 거친 행동도 청년의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이해받았다. 이러한 계층적 특성을 살려서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요즘은 개개인이 분산되어 ‘우리의 미래’가 아닌 ‘나의 미래’만을 걱정하는 것 같다. 청년집단이 사회참여와 비판의식이 없으면 그 사회의 미래를 걱정하게
만든다. 이러한 사회 풍토를 만든 것에 대해 선배 세대로서 반성한다. 동시에 청년들에게 ‘우리’라는 공동체를 벗어나서 개인적인 고민만 하면 여러분 시대의 미래는 밝지 않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공동체를 고민하지 않는 청년이 어떻게 나중에 50대, 60대가 되어서 이 사회를 이끌 수 있겠나. 공동체를 생각하는 훈련은 특히 청년 때 해야 한다. 현재의 많은 문제에도 청년이라는 특성을 살려서 할 일이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청년 시절 스스로 학교의 주인임을 자처하며 공동체를 위해 한 훈련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됐다. 혼자서만은 잘 살 수 없다. 나의 세대가 건강해야 그 안에서 나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Q. 후배 중에서도 정치인을 꿈꾸는 학우들이 있을 것 같다. 그들에게 조언을 부탁드린다.
A. 지금부터 도전하면 된다. 다만 염두 해야 할 것은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자리를 출세의 길로 여기는 사람이 가면 안 된다. 지위의 높낮이가 아니라 일하고 싶은 분야를 먼저 정했으면 좋겠다. 정치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하는 것이다. 영화가 주연배우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 것처럼. 또 처음부터 주연배우가 되기는 어렵다. 우선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것부터 경험했으면 좋겠다. 취업하면 회사에서 누구보다 공동체를 위해 고민하고 기여하는 훈련을 했으면 좋겠다.
 

Q. 동문 인터뷰를 부탁드렸을 때 힘 있게 ‘동문 인터뷰면 당연히 해야죠’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아 학교에 대한 마음이 남다르신 거 같다. 복 동문에게 명지대란?
A. 내 보금자리 같은 곳이다. 말만 들어도 뜨겁게 살았던 청년 시절이 생각난다. 내가
그때 꿈꿨던 자세대로 살고 있나 스스로 반추하기도 한다. 보금자리이면서 거울이다.
 

Q. 입학 후에도 종종 방황하는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 것 같다.
A. 좋은 대학을 가려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좋은 직장에 가려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행복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다. 그것을 잊으면 안 된다. 그것을 잊는 순간 경쟁에서 비참함을 느끼고 행복을 느낄 수 없다. 경쟁의식을 붙잡고 있어서 뭐하나. 서울대에도 일등부터 꼴등까지 있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면 된다. 지금도 전혀 늦지 않았다.
 

Q. 요즘 청년의 어려움이 많이 이슈가 되는 시대다. 청년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린다.
A. 청년들에게 요구하고 싶다. 정치인들은 청년 정책을 위해 싸우는데 막상 그 자리에 청년은 없다. 청년이 만들어내는 청년 정책이야 제대로 된 청년 정책이다. 어른들이 고민하는 청년 정책이 되는 순간 그 정책은 청년들에게 와 닿는 정책이 아닌 것이 된다. 바쁘다고 사회에 대한 관심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 사회에서 청년은 천덕꾸러기에만 머물 것이다. 힘내고 숨지 말고 표현해라! 청년답게 열정과 패기를 갖고 사고 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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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휘종 기자 logosnfaith@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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