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어와 며느리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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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와 며느리 속사정
  • 윤덕노 음식문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6.09.26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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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와 며느리 속사정

전어와 며느리 속사정
 

집 나간 며느리, 전어 굽는 냄새에 돌아온다는 계절이다. 그런데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자 주 들은 이 속설, 생각해 보면 조금 이상하다. 전어가 맛있다는 소리인데 실제 전어가 그만 큼 맛있나? 
 

사람마다 입맛이 제각각이니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전어에 대한 평가는 사실 반반이다. ‘맛있다’와 ‘아니다’로 엇갈린다. 하지만 집 나간 며느리 돌아올 정도로 맛있지 않다는데는 대체적으로 의견이 일치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왔다면 거기에는 틀림없이 고소한 전어구이 맛 이상의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집 나간 며느리가 왜 돌아왔을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속은 모른다고 며느리 돌아온 속사정을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만 속설이 생긴 이유는 전어라는 생선 이름에서 짐작해 볼 수 있다. 전어는 돈 전(錢)자를 써서 전어(錢魚)다. 전어는 손바닥 정도 크기로 돈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게다가 그다지 비싼 편도 아닌데 청어목 청어과의 이 작은 생선을 왜 엉뚱하게 돈과 연결지어 전어라고 이름 지었을까? 
 

지금이야 전어가 비싼 생선이 아니지만 옛날에는 달랐던 모양이다. 맛이 좋아 비싼 값을 주고라도 사 먹는 생선이기에 전어가 됐다는 것이다. 18세기 후반, 조선 정조 때의 실학자 서유구가 『난호어목지』에 그 유래를 밝혀 놓았다

“전어는 고기에 가시가 많지만 육질이 부드러워 씹어 먹기가 좋으며 기름이 많고 맛이 좋 다. 상인들이 소금에 절여서 한양으로 가져와 파는데 신분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모두 좋아 하므로 사는 사람이 값을 생각하지 않고 사기 때문에 전어(錢魚)라고 한다” 
 

너무나 맛이 좋기에 수요가 공급을 초과해 시장에서 값을 따지지 않을 정도로 비쌌다는 것인데 도대체 전어 한 마리가 얼마나 비쌌기에 이런 소리가 나왔을까 싶다. 
 

난호어목지보다 약 150년쯤 앞선 17세기 초반, 광해군 시절에 발행된 오희문의 『쇄미 록』이라는 문헌에 전어값이 적혀 있다. “듣자니 시장에서 큰 전어 한 마리에 쌀이 석 되”라는 것이다. 쌀값이 지금보다 훨씬 비쌌을 17세기 무렵에 이 정도였으니 정말 돈 ‘전’ 자를 써서 전어라는 이름이 생겼을 법 싶은데 혹시 세상 물정 모르는 오희문이라는 양반이 바가지 쓴 것은 아니었을까? 
 

오희문과 동시대 인물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동한 조헌이 남긴 문집, 『동환봉사』에도 전어 가격이 나온다. 경주에서는 가을 전어를 명주 한 필을 주고 바꾸고 평양에서는 겨울 숭어를 정포 한 필로 바꾼다고 했는데 비단 한 필을 전어 몇 마리와 바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정도면 당시에는 전어가 거의 금값에 버금갔었던 모양이다. 전어가 왜 이렇게 비 쌌을까? 
 

먼저 경주에서 전어를 비단 한 필과 맞바꾼 데는 사연이 있다. 전어는 서남해에서 잡히는 생선으로 경상북도 바다에서는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경주에서 바치는 공물 품목에 전어 가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세금을 돈으로 내는 것이 아니고, 대동법 시행 전이니 쌀로 내는 것도 아니라 현물로 낼 때이니 물건이 없으면 시장에서 사서 보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바가지를 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한양에서 전어가 부르는 게 값이었던 데도 이유가 있다. 교통이 불편한 옛날에는 서남해에서 잡은 전어를 한양까지 가져오기도 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소금에 절여서 가져왔다는데 이 무렵 소금 값이 지금과 달랐다. 쌀 때는 쌀값의 절반, 장마철처럼 비쌀 때는 쌀값에 버금갔다니 수요공급의 법칙을 떠나 기본적으로 전어의 원가구조가 지금과 달랐다는 이야기다. 전어가 왜 그렇게 비쌌는지, 왜 돈 ‘전’ 자를 써서 전어가 됐는지 알 수 있다.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가 왜 돌아왔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전어가 맛있고 없고를 떠나 한 마리에 쌀 석 되나 하는 전어를 구워 먹을 정도면 집안 살림이 활짝 폈다는 소리다. 
 

무심코 흘려듣는 속설이지만 전어 한 마리에서 조선시대 경제구조와 유통구조, 납세제도인 대동법이 시행된 배경까지도 엿볼 수 있다.
 

푸드인문학 칼럼 인물 사진.jpg

윤덕노 음식문화칼럼니스트
ohioyoon9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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