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역설과 혁신을 위한 다양한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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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역설과 혁신을 위한 다양한 관점
  • 김준성(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 승인 2016.09.13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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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역설과 혁신을 위한 다양한 관점

까마귀 역설과 혁신을 위한 다양한 관점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별히 새로운 성장이나 변화의 동력을 찾기 위해 혁신을 외치는 사람들은 다양한 관점에 대해 자주 강조를 한다. 그러나 그런 다양한 관점이 무엇이고, 그런 관점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지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예를 들어 기존에 당연하게 받아들인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이를 위해 창의성을 가져야 한다고 답할 수 있다. 혁신을 위해 다양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같은 주장을 달리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까마귀 역설’은 그런 다양한 관점이 무엇인지, 그런 관점을 갖기 위해 우리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에 대해 주목할 만한 안내를 준다.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주장 A가 맞는지 확인하려면 실제로 검은 까마귀를 발견하면 된다. 검은 까마귀를 많이 발견할수록 주장 A에 대해 우리가 갖는 신뢰도는 높아질 것이다.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주장 A는 ‘검지 않은 그 어떤 것도 까마귀가 아니다’라는 주장과 같다. A와 동일한 그 두번째 주장을, A*라 하자. 두 주장이 같다는 것은, A가 참인데 A*가 거짓인 경우가 없고, A가 거짓인데 A*가 참인 경우도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두 주장 모두 동시에 참이거나, 모두 동시에 거짓이 되는 것이다. ‘검지 않은 어떤 것도 까마귀가 아니다’라는 주장 A*가 맞는지 확인하려면, 마찬가지로 실제로 검지 않고 까마귀도 아닌 대상을 발견하면 된다. 마찬가지로 그런 대상을 많이 발견할수록 주장 A*에 우리의 신뢰도는 높아질 것이다. 이제 놀라운 결과를 보게 된다. A*는 A와 같은 주장이다. 따라서 실제로 검지 않고 까마귀도 아닌 대상을 발견한다면, 그 발견은 주장 A*뿐 아니라 주장 A에 대한 우리의 신뢰도도 높일 것이다. 실제로 검지 않고 까마귀도 아닌 대상은 무엇인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예를 들어 흰 운동화도 그런 대상이다. 그렇다면 흰 운동화가 ‘모든 까마귀는 검다’ 라는 주장 A를 입증하고, 우리의 신뢰도를 높이는게 된다. 그러나 흰 운동화는 주장 A와 관련이 없다. 흰 운동화가 주장 A를 반박하지는 않지만 입증한다고 볼 수는 없다.
 

이런 당혹스런 경우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 어떤 깊은 산골에 아이가 살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그 아이가 알고 있는 검은 색 대상은 까마귀와 그 아이의 검은 운동화가 전부라고 가정하자(물론 이 가정은 현실성이 없다. 그러나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 아이가 어느 날 처음으로 산에서 내려와서 시장에 가게 되었고 우연히 흰 운동화를 보게 되었다. 그 아이는 흰 운동화를 통해 운동화가 모두 검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뿐 아니라, 그 아이는 흰 운동화를 통해 까마귀라고 하여 모두 검지는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흰 운동화는 ‘모든 까마귀는 검다’라는 주장 A에 대한 그 아이의 신뢰도를 오히려 떨어뜨리게 된다. 이 결과로 우리는 다음을 알 수 있다. 주장에 대한 우리의 신뢰도는 주장과 그 주장을 입증할 사례의 관계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장에 대한 우리의 신뢰도는 그 주장과 그 주장의 입증 사례, 그리고 배경 정보의 관계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의 세계에 관한 배경 정보를 전제할 때 흰 운동화 사례는 주장 A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리지 않는다. 반면에, 그 아이의 세계에 대한 배경 정보를 전제할 때 흰 운동화 사례는 그 신뢰도를 떨어뜨리게 된다.

까마귀 역설은 다음을 다시 확인시켜 준다. 우리가 기존에 답습하던 생각에서 벗어나려면, 또한 새로운 생각을 내놓고 싶다면 우리에게 현재 주어진 배경 정보에만 상대하여 세상을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배경 정보의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고 이에 상대하여 세상을 바라 볼 때 새로운 생각이나 혁신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배경 정보를 어떻게 다양한 방식으로 고려할 수 있을지, 또는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는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 이를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다. 이제 더 열심히 실천으로 옮기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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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성(인문대학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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