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폐 리뷰
다른 나라의 화폐를 받아들면 신기해서 자꾸 들여다보게 되지만 막상 여행하면서는 돈 계산을 위해 지폐 위에 적힌 ‘숫자’만 본다. 낯선 이미지와 화폐 가치. 현지에서 정신을 차리면 허둥지둥 돈을 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필자는 여행을 마치고 외국 화폐를 다시 원화로 환전하기 전에서야 지폐 속 그림들이 의미 있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대만에서 현재 통용하고 있는 화폐인 신타이완 달러 중 관심을 끈 지폐는 NT$500, NT$1000이었다. NT$500 앞면은 ‘어린이 야구팀’ 그림이 있고 NT$1000 앞면에는 ‘초등교육’ 그림이 있다.
으레 지폐라 하면 세종대왕이나 신사임당 같은 역사적 위인이나 그 나라를 대표할만한 ‘급’을 소재로 한 그림이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만 지폐에서는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 아이들이 지폐에 등장했다. 오히려 대만의 국부라고 불리는 쑨원은 NT$100에, 국민당 정부를 타이완으로 이전한 장제스는 NT$200에 있었다. 그림 속 야구팀은 경기에서 승리했는지
모두가 모자를 하늘 위로 던져 올리며 기쁨을 만끽하고 있고, 아이들은 지구본을 보며 서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필자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만 사람들이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 귀중한 나라의 미래로 보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더불어 대만의 가까운 미래를 살짝 엿본 것 같았다.
익숙함에서 조금 벗어났을 때, 당연했던 것들이 새로워지는 순간이 있다. 단순히 지폐를 장식하는 기능이라고 여겼던 그림들에서 그 나라와 역사를 보게 되는 경우가 그 중 하나일 것이다. 화폐는 그 나라 사람들의 생각이 반영되어 역사뿐만 아니라 국민 자체를 담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원화도 다시 보게 됐다. 만 원 권에 있는 조선의 천문학을 나타내는 ‘혼천의’도, 오만 원 권에 있는 ‘매화’도 이제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