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그 미묘한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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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그 미묘한 차이
  • 윤덕노 음식문화칼럼니스트
  • 승인 2016.09.0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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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그 미묘한 차이

커피, 그 미묘한 차이

방법을 놓고 대립한다. 둥근 쪽을 깰 것인지 뾰족한 쪽을 깰 것인지 놓고 전쟁까지 벌였다. 여러분은 어느 쪽으로 깨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커피도 소인국 달걀과 크게 다를 것 없다. 커피에 물을 타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우유를 타서 마시는 것이 더 맛있을까? 아니면 물이나 우유에 커피를 탈까?

가만히 보면 아메리카노는 웃기는 커피다. 멀쩡한 에스프레소에 물을 타서 마신다. 그래서 촌스럽다는 놀림까지 받았다.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이 증거다. 카페 아메리카노의 줄임말로 미국식 커피 내지는 미국인이 마시는 커피라는 뜻에서 생겼다. 많이 알려진 것처럼 제 2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에 상륙한 미군 병사들이 현지인이 마시는 에스프레소가 너무 쓰고 진하니까 물을 타서 마신 것에서 비롯됐다. “커피도 제대로 마실 줄 모르는 미국 촌놈”이라는 이탈리아 사람들의 뒷담화가 어원이다.

사실 미국인이 에스프레소에 물 탄 것처럼 커피를 연하게 마신 역사는 꽤나 오래 됐다. 미국 독립전쟁의 발단이 된 보스턴 차 사건이 계기다. 영국이 동인도회사에 차 무역 독점권을 주자 식민지 지도자였던 차 무역상이 반발해 동인도 회사 소속 선박에 실린 차 상자를 바다에 집어 던지며 영국산 홍차 불매운동을 벌였다. 홍차 마시는 사람은 영국의 앞잡이, 비애국자로 매도한데다 홍차 값마저 비싸지자 네덜란드와 프랑스가 이틈을 노리고 커피를 싼 값에 미국시장에 풀었다. 미국인들이 이때부터 홍차 대신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유럽식의 진한 에스프레소는 그동안 익숙했던 홍차를 대신하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대신 커피를 연하게 끓였더니 커피 색깔도 홍차와 비슷하고 맛도 부드러워졌다. 미국 커피가 유럽에 비해 훨씬 연해진 까닭이다. 이런 배경을 무시하고 유럽에서는 커피에 물 탄 것처럼 마신다고 아메리카노를 흉봤다.

에스프레소에 물 탄 것이 아메리카노라면 물에 에스프레소를 섞으면 롱 블랙(Long Black)이다. 엄격하게 구분하면 그렇지만 사실 커피에 물을 타나 물에 커피를 타나 같아 보인다. 그러나 여기엔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다.

에스프레소에 물 타 마신다고 뒷담화한 유럽인들은 물 대신 우유를 타 마신다. 카페오레와 카페라테, 카푸치노와 마키아또가 에스프레소와 우유가 조합을 이룬 커피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

원칙적으로 카페오레와 카페라테는 에스프레소에 스팀 우유를 섞는다. 커피가 부드러워진다. 굳이 구분하자면 단어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프랑스식이냐 이탈리아식이냐의 차이다. 카푸치노는 에스프레소에 스팀 우유를 붓고 그 위에 거품 우유를 얹는다. 알다시피 맛이 훨씬 더 부드러워진다. 카푸치노라는 이름은 수도원의 수도승 복장에서 비롯됐다. 여러 설이 있지만 커피 색깔이 17세기 오스트리아 카푸친(Capuchin) 수도원의 수사들이 입었던 옷의 색상과 비슷해서 생긴 이름이다.

마키아또는 아메리카노와 롱 블랙의 차이처럼 에스프레소와 우유 중 어느 것을 베이스로 하느냐의 차이다. 에스프레소를 베이스로 우유를 섞는 카페라테 계열과는 반대로 마키아또는 우유를 바탕으로 에스프레소를 타서 마시는 커피다. 마키아또(macchiato)라는 이름도 여기서 비롯됐다. 이탈리아어로 ‘얼룩졌다’라는 뜻으로 우유에 커피를 부어 흰색이 커피색으로 얼룩졌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캬라멜 마키아또는 여기에 캬라멜 시럽을 뿌렸을 뿐이다.

보통 사람의 상식과 입맛으로는 커피가 먼저인지 아니면 물이나 우유가 먼저인지 순서의 차이라는 게 걸리버 여행기의 달걀 깨기만큼이나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전문가 의견은 다르다. 순서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커피 거품인 크레마(crema)의 변화 차이 때문이라는데 커피는 이렇게 제조순서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신기한 음료라는 주장이다.

어쨌거나 걸리버 여행기에서는 작은 차이를 놓고 전쟁을 벌였지만 커피의 세계에서는 미묘한 차이를 인정하니 큰 변화가 생겼다. 순서를 바꾸니 다양한 커피 종류가 만들어지면서 메뉴의 영역이 한층 넓어졌다.

푸드인문학 칼럼 인물 사진.jpg

윤덕노 음식문화칼럼니스트
ohioyoon9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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