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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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얀 이야기
  • 관리자
  • 승인 2009.10.0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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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얀 이야기

카라얀 이야기

내가 인생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은 나의 천직인 가르치는 것과 공연예술을 통해 여가를 즐기는 것이다. 원래 전공인 역사, 문명 이외에도 공연예술에 대한 과목을 가르치고 있고 또 음악, 연극, 영화를 즐기며 살고 있으니 나는 어느 의미에선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한 학기 동안 명대신문의 칼럼 연재를 통해 명지인들과 나의 음악에 대한 사랑을 공유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이번호는 지난해 탄생 100주기를 맞았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모차르트의 고향이기도 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태생의 이 천재음악가는 자타가 공인하는 20세기 후반을 장악했던 ‘음악계의 황제’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를 모델로 한 ‘명품’ 광고가 텔레비전에 계속 나올 정도로 그는 잘 알려져 있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의 클래식 음악이 생명력을 유지하는 데는 그의 역할이 지대했기에 이 위대한 지휘자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하려고 한다.  
프랑스의 거장 감독 ‘클로드 를루슈Claude Lelouche’는 2차세계대전을 주제로 한 영화 만들기를 즐겼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라는 이름으로 방영된 초대형 작품에서 ‘에디트 피아프Edith Piaf’와 ‘글렌 밀러Glenn Miller’와 같은 인물들을 묘사했다. 그가 묘사한 인간의 군상에는 히틀러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나치에 협력해 종전 이후 음악계의 황제노릇을 하는 인물이 있었다. 그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인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영화 속 인물처럼 카라얀만큼 음악계에서 애증의 대상이 됐던 인물은 많지 않다. 음악계의 황제, 흥행의 천재, 그리고 천박한 대중영합주의자, 독재자, 폭군, 나치 협력자……. 수많은 악평이 그에게 쏟아졌다. 훗날 나치 협력문제는 카라얀처럼 히틀러 치하에서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떠나지 않고 활동을 계속했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Wilhelm Furtwngler’, ‘카를 뵘Karl Bhm’,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Elisabeth Schwarzkopf’와 같은 다른 거장 음악가들을 괴롭히는 사안이 되기도 한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강규형(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서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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