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맨부커상, 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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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맨부커상, 노벨상
  • 전미경(방목기초교육대학 인문교양) 교수
  • 승인 2016.05.3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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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맨부커상, 노벨상

한강, 맨부커상, 노벨상

유명 작가의 표절 논란이 잠잠해진 이후로 별다른 이슈가 없었던 2016년 5월 한국 문학계에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작가 한승원의 딸로 알려진 소설가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노벨문학상과 프랑스의 공쿠르 문학상과 더불어 세계 3대 문학상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었다. 맨부커상은 1969년에 영국의 종합물류 유통회사인 부커 사가 제정한 문학상으로, 영국과 아일랜드 등의 영연방 국가 내에서 영어로 쓴 소설과 영연방 이외의 국가에서 발표된 작품으로 나누어 영어권 출판업자들의 추천을 받은 소설 작품을 후보작으로 하여 권위 있는 평론가와 소설가 및 관련 학자들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수상작을 선정하는 영국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이다. 출판과 독서 증진을 위한 독립기구인 북 트러스트의 후원을 받아 부커 사의 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가 2002년부터는 세계 최대 상장 대체투자 운용사 중 하나인 맨 그룹(Man Group)이 스폰서로 나서면서 명칭이 맨 부커상(The Man Booker Prize)으로 바뀌었고, 상자에게 주어지는 상금도 대폭 상향되었다. 맨부커상 후보에 오른 작가들을 위해서는 그들 작품의 특별 한정판을 제작해 주고, 최종 수상자는 상금과 함께 소설가로서의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다. 한강이 수상한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은 세계 우수 소설 번역 작품을 선정, 작가와 번역가 모두에게 트로피와 함께 상금 2만 5000 파운드(약 4340만 원)를 지급한다.

여기에서 눈여겨 볼만한 것은, 시상에 있어 작가와 함께 번역자에게도 동일한 대우를 해준다는 사실이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한 이는 데보라 스미스 (Deborah Smith)라는 여성으로, 런던대학에서 한국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고 알려졌고 그녀는 ‘채식주의자’를 번역하여 작가와 동일한 액수의 상금과 트로피를 받았다. 한글로 써진 ‘채식주의자’를 영문판 The Vegetarian 으로 충실하게 옮긴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보이드 톤킨(Boyd Tonkin)은 “압축적이고 정교하고 충격적인 이야기로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를 보여줬고……한강의 작품은 독자의 꿈속에서도 남을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하였다. 2007년에 출간된 ‘채식주의자’에 대한 국내 평단의 대체적인 평가는 단아하고 시심 어린 문체와 밀도있는 구성력이라는 작가 특유의 개성이 고스란히 살아 있으면서도 상처 입은 영혼의 고통을 식물적인 상상력에 결합시켜 섬뜩한 아름다움의 미학을 완성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결국 ‘채식주의자’가 세계 권위를 자랑하는 맨부커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작품의 정수가 영어 문화권에 제대로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데보라 스미스의 놀라운 번역에 의해 이 기묘하고 빛나는 작품이 영어로 제 목소리를 완벽하게 찾았다”라고 한 보이 톤킨의 말처럼 ‘채식주의자’라는 작품이 아무리 인상적이고, ‘독자의 꿈에 남을’ 정도라고해도 그것이 탁월한 번역의 과정을 거쳐 독자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면 그 가치는 한국어를 모르는 영미권의 독자들에게 전달될 방법이 없었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근 몇 년간 우리나라 문학계에서는 노벨상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였다. 멀리까지 갈 필요 없이 같은 아시아권 국가인 일본이나 중국의 노벨상 수상의 예를 거론하면서 노벨상과는 인연을 맺지 못한 우리 문학계를 되돌아보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다시금 번역의 중요성을 거론하게 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번역은 외국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행위만이 아니라 우리말을 외국어로 옮기는 작업도 포함한다. 이번 ‘채식주의자’의 맨부커상 수상을 통해, 우리나라 문학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그것이 온전하게 번역되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우리 사회에서나 학계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하는 번역의 가치와 의의를 다시금 일깨운 것이다. 인류가 공유할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노고만큼이나 그것을 인류가 온전하게 공유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번역가의 노력도 동등하게 평가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 수상을 한 한강과 함께 트로피를 들고 포즈를 취한 한국학을 전공한 벽안의 젊은 영국 번역가는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한 노시인의 분투로 손에 잡힐 듯했다가 다시 요원해져 버린 한국인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한 답도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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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경(방목기초교육대학 인문교양)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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