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 믿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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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 믿지 마라
  • 누다심 심리학칼럼니스트
  • 승인 2016.05.30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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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 믿지 마라

혈액형 믿지 마라

사람들은 자신이나 타인의 마음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마음을 예상하고 추측하기를 좋아한다. 추측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말이다. 마치 심리학자처럼 가설을 세우고 증거를 모은다고 해서 Naive Psychologist(나이브 사이콜로지스트)라고 하는데, 굳이 번역을 하자면 ‘어설픈 심리학자’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심리학자라면 나름의 이론이 있어야 하는데, 어설픈 심리학자에게는 그럴 듯한 이론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제대로 된 심리학 이론은 너무 전문적이어서 어렵게만 느껴진다. 그래서 제대로 된 어려운 정보보다는, 정확하지 못하더라도 쉬운 정보를 찾아 가설을 세우곤 한다. 어설픈 심리학자들이 사용하는 논리와 근거는 대부분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고정관념인 경우가 많은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혈액형 심리학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혈액형별 성격유형. 사람들에게는 세상을, 그리고 사람을 예측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가 아무리 틀리다고 말해도, 사람들은 ‘아무리 생각해도 맞는 것 같은데요’라고 말한다. 왜 그럴까? 바넘 효과(Barnum effect) 때문이다.

19세기 말 미국의 쇼맨이었던 바넘( P h i n e a s Barnum)은 사람들의 성격과 특징을 알아내는 마술을했다. 사람들은 그가 속임수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속임수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에는 실패했다. 1세기가 지난 후 바넘의 놀라운 능력을 밝힌 사람은 심리학자 포러(Bertram Forer)였다.

포러는 사람들에게 성격 검사를 실시하게 했다. 일주일 후 학생들의 이름이 적힌 검사 결과지를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결과지에는 개인의 성격이 묘사되어 있었다. 포러는 검사 결과가 자신의 실제 성격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0점에서 5점까지 점수를 매겨 보라고 했다. 0점은 ‘전혀 맞지 않다’였고, 5점은 ‘매우 정확하다’였다. 학생들의 점수는 평균 4.26점이었다. 검사 결과가 자신의 실제 성격과 매우 일치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는 성격 검사가 정확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사실 학생들이 받은 결과지는 모두 동일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모두들 자신의 성격을 잘 묘사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포러가 학생들에게 알려주었던 성격 검사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당신은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하거나 존경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비판적인 경향성이 있다. 당신은 장점으로 살리지 못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비록 약점도 있지만 그것에 대한 대응책을 가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스스로를 잘 통제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 때때로 당신은 옳은 결정을 했는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하곤 한다. 당신은 변화와 다양성을 선호하지만 한계에 부딪힐 때면 만족하지 못한다. 당신은 자신이 독립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고 기기 때문에 확실한 증거가 없이는 사람들의 말을 수용하지 않는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때로 당신은 외향적이고 붙임성 있으며 사교적이지만, 때로는 내향적이고 사람을 경계하며 위축되기도 한다. 소원 중 어떤 것들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안전은 당신의 인생에서 주요한 목표 중 하나이다.

혈액형별 유형론도 같은 원리다. A형은 소심하다는, B형은 바람둥이 기질이 있다는 둥 모호한 표현으로 득 차 있다. 사실 그 누구라도 어느 정도는 소심하고 느 정도는 바람둥이 기질을 가지고 있다. A형만 아주 심하며 일편단심인 것도 아니고, B형만 아주 대범하며 바람둥이 기질만으로 가득한 것도 아니다! 결국 자기 혈액형에 대한 성격묘사를 들으면 자신과 조금이라도 맞는 부분을 떠 올리게 되는 것이다. 혈액형별 유형뿐이겠는가? 우리 삶에서 바넘 효과는 넘쳐나고 있다.

사실 혈액형이 성격과 연관된 이유는 1901년 오스트리아의 생리학자 란트슈타이너(K. Landsteiner)가 혈액형을 발견한 이후 독일의 내과의사 둥게른(E. von Dungern)과 폴란드의 생물학자 힐슈펠트(Ludwik Hirszfeld)는 <혈액형의 인류학>이라는 논문에서 혈액형에 따라 인종간 우열이 존재한다는 이론을 펼치면서 부터다. 당시에는 인종간 우열을 기정사실처럼 믿는 과학자들이 많았고, 자신들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서 온갖 생물학적 증거를 갖다 붙이기에 급급했다.
 

이 영향이 일본까지 미치게 되어 1927년 일본의 한 철학자가 <혈액형을 통한 기질 연구>라는 논문에서 처음으로 혈액형과 인간의 성격을 연관시키기 시작한 이후 일본에서는 이력서에 혈액형을 써 넣는 칸이 생길 정도로 열풍이었다. 그리고 일본은 식민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한 연구의 일환으로 혈액형을 연구했다. 즉 ‘일본인이 조선인보다 인종적으로 우월하다’는 주장을 전파하기 위해 한국사람들의 혈액형 분류에 집착한 것이다. 2013년 2월 한림대학교 일본학연구소 정준영 교수는 논문을 통해 “우리가 무심코 따져보는 혈액형 얘기 속에 식민지적 근대를 관통하는 지식과 권력의 계보가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래도 혈액형과 성격을 연결시키고 싶은가? 혈액형에 따라 사람의 성격을 구분하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가슴 아픈 역사를 품고 있는 차별이자 우리 민족의 수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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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다심
심리학 칼럼니스트
www.nudas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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