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현상, 더 이상 지켜보기만 할 문제가 아니다
상태바
혐오현상, 더 이상 지켜보기만 할 문제가 아니다
  • 정재원 기자
  • 승인 2016.05.17 18: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혐오현상, 더 이상 지켜보기만 할 문제가 아니다

혐오현상, 더 이상 지켜보기만 할 문제가 아니다 


얼마 전, 우리대학 페이스북 커뮤니티인 ‘명지대학교 대나무숲’에 한 게시물이 올라왔다.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의 유저와 여성을 혐오하는 내용에 대한 글이었다. 해당 게시물에는 글쓴이를 맹비난하는 댓글들이 달리며 뜨거운 설전이 벌어졌다. 최근 들어 우리대학 뿐만 아니라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위와 같은 사례를 쉽게 접할 수 있다. 2016년 지금 우리 사회는 이성에 대한 혐오뿐만 아니라, 계층혐오, 지역혐오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리며 서로 간의 예를 중요시 여겼던 우리가 왜 이렇게 서로를 싫어하게 됐을까.


혐오, 너 어디에서 왔니?


혐오란 자기 신체의 안정과 정결함을 위해 인간이 갖는 본능적인 감정으로 자신의 신체 또 는 정신을 오염시킬 수 있는 ‘더러운 것’으로부터 보호하려는 방어 기제다. 

혐오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은 관용 정신의 부재를 꼽을 수 있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인정하 고 그들을 받아들이기 보단, 그들을 공격해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이러한 관용정신의 부 재는 우리나라 사회가 전세계 여느 나라보다 심각하다. 2010~2014 세계가치관조사에 따르 면 대한민국의 타인에 대한 관용과 존중도는 45.3점으로 OECD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한국 사회는 타국가보다 인구밀도가 높고 관계 망 자체가 좁아 집단주의가 팽배한데, 여기에 관용의 부족이 더해져 집단 혐오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성혐오, 계층혐오, 지역혐오 등 혐오의 대상이 다양한 것도 이 때문이다. 관용 부재의 원인은 소통 부족에서 찾을 수 있는데, 기술의 발달로 계층 간, 집단 간, 개인 간의 소통이 부족해지면서 서로를 이해할 기회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성균관대학교에 재학 중인 박순찬(신소재공학과 11) 학생은 “평균 수명의 증가, 여성의 지위 향상 등 과거보다 다양한 계층이 사회 전반에 등장해 활동 범위가 넓어졌고 구성원 간에 서로 같이할 기회가 많아졌다. 그러나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소통 시스템은 함께 구축되지 못했다”며 “이러한 소통의 부재가 개인의 문제 시 사회적 관용의 부재를 만든 것으로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 사회에 깊숙히 뿌리내린 혐오

▷급식충 맘충 蟲蟲蟲! 

지난해부터 우리나라 인터넷 세계에는 급식충, 맘충, 설명충, 일베충, 틀딱충 등 특정한 단어에 벌레라는 뜻의 충(蟲)자를 붙이며 비하하는 세태가 급속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인간을 '충'(蟲)으로 부르며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사람이나 특정 집단을 벌레라는 극단적인 말로 표현하는 것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듯 무엇이든지 이유만 가져다 붙이 면 벌레가 될 수 있다. 집단은 물론이거니와 개인, 하나의 계층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가령 ‘맘충’이란 자신의 아이만을 귀하게 여겨 잘못된 육아로 갖가지 사회적 부작용을 만드는 젊은 엄마들에 대한 경멸의 표현이며 ‘설명충’은 ‘모든 일에 농담 등 없이 진지하게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뜻한다. ‘진지충’은 농담을 목적으로 게시한 글에 사뭇 진지하게 답글을 단 이들을 비꼬기 위해 만들어진 말이다. 최근에는 지성의 산실이라 불리는 대학에서도 이러한 ‘충 현 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역균형이라는 제도로 선발되었다는 이유로 명명된 ‘지균충’이나 수시 제도를 통해 선발된 사람을 일컫는 ‘수시충’이 대표적이며 대학생 자신이 스스로를 학식만 축내는 벌레인 ‘학식충’으로 비하하는 경우도 잦다.

▷여혐과 남혐사이
사진2.jpg
초기의 여성혐오는 일부 몰상식한 행동을 하는 여성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됐다. 이러한 분노는 성차별, 여성에 대한 부정, 여성에 대한 폭력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다. 최근 들어 여성 혐오 현상이 우리사회의 담론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메르스 사태 때 나타난 사건이 대표적이다. 메르스라는 병이 확산 하면서 인터넷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에 메르스 갤러리가 생성됐고, 이 메르스 갤러리에서 여성 혐오 에 대한 글들이 올라오게 됐다. 홍콩에서 메르스 증상을 보인 한국 여성 2명이 격리조치를 거부했다 보도기사가 그 시작이었다. 많은 네티즌들이 ‘한국 여성이 나라 망신 다 시킨다’는 등의 원색적인 비난을 일삼았다. 하지만 이 여성들이 격리를 거부했다는 보도가 오보로 밝혀지면서 온라인상에서 여성들의 반격이 시작됐다. 메르스 갤러리 내에서 여성들이 이번 일 을 주도했던 남성들에 대한 혐오를 나타내는 글을 게시하기 시작했으며 ‘메갈리아’라는 반(反) 여성혐오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이 메갈리아 사이트를 통해 여성들은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는 주제로 활동하기 시 작했고 ‘김치녀’에 대항하는 ‘김치남’, 한국 남자는 벌레라는 의미의 ‘한남충’등 단어를 만들어내면서 온라인상에서 남성과 여성의 서로 간 이성혐오 현상은 점차 심화됐다. ‘김여사’, ‘김치녀’, ‘한남충’ 등은 이성 혐오의 대표적 단어로 자리 잡았다. 여성혐오가 남성혐오를 낳은 셈이다. 이성 혐오 현상은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으로 더욱 친목을 도모하고 소통하는 시대에, 다수의 정서로 자리 잡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금수저와 흙수저 계층혐오현상
사진3.jpg
금수저, 흙수저, 헬조선, 갑질횡포 등 사회 계층에 대한 혐오 또한 만연하다. ‘한국형 사회 갈등 실태 진단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민은 일상과 직장, 사회 이슈 등에서 심각한 차별과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의 소득계층별 혐오현상을 살펴보면 상류층의 경우 하류층에 대해 “전쟁이나 터져서 깽판으로 살자, 너도 죽고 나도 죽고” 식의 부류가 많다고 답변했고, 서민층의 경우 상류층에 대해 “상류층에 해당하는 부자들이 도덕을 얘기하지만, 실제 자기들이 저지르는 부패 등을 보면 전혀 도덕적이지 않다. 도덕적 해이가 굉장히 심각하다”고 평가했다. 서로 간 불신이 팽배한 것이다. 

갑질 논란도 대표적인 계층혐오의 예다. 지난해 있었던 ‘백화점 모녀’ 사건의 경우 갑질 논란의 대표적 사례다. 주차요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참기 힘든 모욕 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전 국민이 분노했다.

그러나 이러한 분노에도 불구하고 날이 갈수록 계층 혐오 현상은 심화하고 있다. 소득, 임금, 부의 격차 등이 초래한 구조적 불평등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분노가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 공감대를 얻어 계층 간 혐오라는 사회적 현상으로 이어진 것이다. 

▷홍어? 갱쌍도? 지역혐오현상
캡처.PNG
특정 지역 혐오 현상은 과거 우리 지역 사회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전라도와 경상도로 대표되는 지역감정이 온라인의 발달과 맞물리며 더 심각해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인터넷 밖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전라도를 비하하는 말인 ‘홍어’, ‘전라디언’ 등은 이미 온라인 외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게 됐고 이에 맞서 경상도를 비하하는 ‘흉노’, ‘갱쌍도’ 등도 생겨났다. 그외에도 제주도를 비하하는 ‘감귤국’, 강원도를 비하하는 ‘감자국’이나 흉악 범죄가 많이 일어난다는 이유로 ‘고담대구’, ‘안산드레아스’ 등도 대표적인 지역 비하 발언이다. 인터넷이 중요한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면서, 해당 지역의 일반적인 주민들도 이러한 지역 비하 발언에 동참하는 일도 빈번해졌다. 최근에는 정치적 현상에 무관심하고, 다른 지역과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던 학생들조차 지역 비하 용어를 자주 사용하면서 지역 혐오 현상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차별받는 이주민

이주민 혐오 현상은 국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주민에 대해 개방적이던 유럽 사회조차 IS 등 이슬람 단체의 테러 행위나 난민들의 범죄로 극우정당의 득세, 반무슬림 현상 등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로 확실시 되는 트럼프 또한 이주민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출한 바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주민에 대한 관용이 부족하다. 국내 거주 중인 외국인들의 강력범죄가 연일 보도 되며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고 몇몇 단체에서는 이주민을 향해 ‘불법범죄시민’, ‘무임승차시민’이라는 등의 수식어를 붙이며 반(反)이주민 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심지어 19대 국회에서 이주민을 대표했던 이자스민 전 의원을 향해서는 “고향인 필리핀으로 돌아가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일삼기도 했다. 

우리 사회에 다문화 가정이 생겨난 지 어느 덧 20년 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은 현재 약 190여만 명이다. 이미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약 3%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주민 혐오 현상은 아직까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사진5.jpg


혐오현상,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사회에서 어느덧 일상화됐다. 혐오에 대한 문화가 특정 집단을 넘어서서 지배적인 정서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일베와 메갈리아로 대표 되는 이성혐오 현상은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까지 번지고 있고, 최근에는 대표적 동성애자인 김조광수 감독의 초청 간담회에 일부 기독교 반동성애 세력이 들어와 직접적으로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 러한 혐오 현상과 갈등은 한국사회에서 더욱더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과거와 달리 사회적 기득권층에 대한 저항보다는 약자에 대한 집단 공격이 성황하는 것이 그 대표적 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마녀사냥’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약자는 자신이 강자처럼 행동하며 또 다른 약자를 공격하고, 그것을 통해 허약함을 감추며 불안을 해소한다. 결국, 한국 사회 는 약자가 약자를 공격하는 행동을 반복하며 문제의 원인을 타인에게로만 돌리고 있다. 

혐오 현상의 원인 중 하나인 집단 극화의 사례 또 한 현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거 ‘광우병 파동’처럼 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이 진실로 여겨져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참여하게 한다거나, 인터넷상에서 한 사람의 행동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알려져 많은 사람 들이 진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채 그 사람을 비난 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자신만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스트레스를 분출 할 공간은 익명이라는 가면을 쓸 수 있는 인터넷 공간 이다. 따라서 인터넷 공간에서 혐오 현상을 더욱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시작 했지만, 이러한 행동은 공감대를 얻어 ‘헬조선’ 등의 단어로 국가에 대한 불신까지 조장하게 됐다.


혐오 현상, 모두의 노력이 필요해


이러한 현상이 심화되고 사회적인 해결 없이 방치 될 경우 더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최근 심화되고 있는 ‘우발적 범죄와 묻지마 범죄’등이 이를 증명한다. 혐오를 통해 사회적인 연결망이 낮아졌고, 사회에 대한 분노로 이어져 아무런 죄 없는 사람을 향해 범죄를 일으키는 묻지마 범죄와 충동적으로 범죄를 일으키는 우발적 범죄 등이 늘어났다. 삶 자체에 대해 여러 가지 상실감을 느끼게 되고 실제 좌절을 겪게 되면서 분노를 폭발하는 형태의 혐오행동이 나오게 된 것 이다. 국민대학교에 재학중인 김진우(사회학과 11)학생은 “사람들의 자기방어 기제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다원화된 복잡한 세상에서 무언가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 대한 합리화인 것이다. 자신과 다른 것들을 비판하고 혐오하면서 자신은 올바른 행동을 하고 있고, 타인의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남을 혐오 하며 자기위안을 얻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인터넷의 발달이 이루어지면서 자신과 관계없는 상황을 많이 보게 됐다. 따라서 전까지는 혐오 로 생각하지 않았던 상황에 대해 타인들의 의견을 듣게 되며 큰 혐오로 보게 된 것 같다”고 전했다.

이러한 혐오 현상의 심화는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가치관을 뒤흔들고 있다. ‘틀딱충(틀니를 딱딱거린다 는 의미로 나이든 사람을 칭함)’이라는 말로 아무런 이유 없이 노인 세대를 비하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급식을 먹는 중, 고등학생들을 향해 ‘급식충’이라는 타이틀을 붙인다.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서로에 대한 존중은 필수적으로 형성되어야 할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지만 국회의 차별금지법 논의는 여전히 표류 중이다. 유엔인권이사회가 2012년 국가별 정례 인권검토 심의에서 대한민국의 차별금지법 제정 권고를 냈지만 국회 소관위 심사 상태에 머무르고 있고, 19대 국회 임기 만료에 따라 자동 폐기될 것으 로 보인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10월, KBS 공감 토론에서 “우리 사회가 물질적으로 풍요롭다고 하더라도 내부 구성원이 불행하면 불행한 것이다. 따라서 이런 범죄가 나타나고 혐오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물질적 객관 지표의 상승을 위해 정부가 정책화하는 노력을 하는 것보다는 내부 구성원들의 주관적 심리적 태도의 상승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는 입장을 밝혔다. 덧붙여 이 교수는 “혐오적인 태도 나 표현은 그러한 불행한 사회에서 벌어진다. 일자리 정책 등 근본적인 정책도 중요하지만, 행복을 높일 수 있는 정부의 세세한 정책과 노력이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사진7.jpg

정재원 기자 prodigo@mju.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인문캠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거북골로 34 (명지대학교) 학생회관 2층
  • 자연캠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명지로 116 학생회관 2층
  • 대표전화 : 02-300-1750~1(인문캠) 031-330-6111(자연캠)
  • 팩스 : 02-300-175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승환
  • 제호 : 명대신문
  • 창간일 : 1954년 11월
  • 발행인 : 유병진
  • 편집인 : 송재일
  • 편집장 : 한지유(정외 21)
  • 디자인·인쇄 : 중앙일보M&P
  • - 명대신문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명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jupress@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