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인 사우디 사회를 변화시킨 한 편의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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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사우디 사회를 변화시킨 한 편의 영화
  • 김정명 (아랍지역학과 교수)
  • 승인 2016.05.09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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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사우디 사회를 변화시킨 한 편의 영화

보수적인 사우디 사회를 변화시킨 한 편의 영화

 
 

지난 2012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제작된 한편의 영화가 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하이파 알 만수르라는 여성감독이 만든 영화 ‘와즈다’가 그 주인공이다. 이 영화는 사회적 금기에 도전한 여자 어린이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이슬람 사회 가운데서도 가장 보수적인 나라로 알려진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오래전부터 여성의 사회 활동을 제약해 왔고 심지어 자전거를 타는 것조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이 영화는 평범한 가정의 10세 소녀 와즈다가 자전거를 사기 위해 1천리얄의 상금이 걸린 쿠란 암송대회에 출전한다는 내용을 다루었다. 주인공 와즈다는 “왜 여자는 자전거를 탈 수 없나요?”라고 질문을 던짐으로써 사우디아라비아의 변화를 촉구했다. 일반적으로 이슬람 문화권은 외래문화를 경계하고 변혁에 대해 소극적인 은둔의 세계로 알려졌다. 그러한 이슬람권 국가 중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나라는 어디일까? 아마도 대부분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꼽는데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8세기 중반 등장한 ‘와하비즘’이라는 신학 교리를 바탕으로 국가의 체제를 갖추기 시작했다. 와하비즘은 쿠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야 하며 모든 사회적 관행은 이슬람의 창시자 무함마드의 시대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수적인 와하비즘 교리는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욱 많은 사회적 제약을 가해왔다.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에서 히잡의 착용은 개인의 취향에 따른 선택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법적으로 외출 시에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또한, 오래전부터 사우디아라비아는 종교적인 명분을 내세워 여성에게 자동차는 물론 자전거 운전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전통적인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종교계의 주장으로 인해 음악, 무용, 연극, 영화 등 오락 및 대중예술도 허용하지 않는다. 실제로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영화관이 없으며 영화도 거의 제작되지 않는다.

 

이같이 척박한 환경에서 하이파 알 만수르라는 여성 감독이 여자 주인공을 내세워 종교계의 권위에 도전하는 영화를 만든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 그녀가 이 영화를 찍는 데에는 5년이나 걸렸다고 전해진다. 처음에 투자자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했고, 리야드에서 촬영할 때는 남녀가 함께 있으면 안 된다는 제약 때문에 혼자 트럭에 들어가 무전기로 지시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와즈다는 2012년 밴쿠버영화제에서 신인 외국어영화상을 받는 등 2012년과 2013년에 무려 14개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휩쓸었다. 이 영화가 만든 기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영화의 히트 덕분에 쏠린 국제적 이목에 부담을 느낀 사우디 정부는 영화 제작 1년 후인 2013년, 법을 개정했고 결국 여성의 자전거 타기가 공식적으로 허용됐다.

 

영화 와즈다가 일궈낸 ‘작은’ 기적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양성평등 실현을 위해서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이슬람 사회 전체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직도 이슬람 국가 중 유일하게 여성에게 자동차 운전을 허용하고 있지 않다. 또한, 2015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남녀평등지수보고서>에서 조사대상 145개국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134위)를 비롯한 카타르(122위), 이집트(136위), 이란(141위), 시리아(143위), 파키스탄(144위), 예멘(145위) 등 이슬람권 국가들이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다. 상기 보고서에서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한국 역시 115위로 이슬람권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지만 똑같이 하위권에 속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이슬람권을 포함한 온 인류가 성별, 인종, 사상, 종교의 차이로 인해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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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명 (아랍지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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