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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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몰랐습니다”
  • 정성철(정치외교학과 교수)
  • 승인 2016.04.1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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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줄 몰랐습니다”

“이럴 줄 몰랐습니다”

 

마치 떠나버린 애인에 대한 푸념 같았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직후 방문한 우크라이나에서 만난 어느 전문가의 말이었다. 소련이 붕괴하고 독립하면서 자발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할 당시 이러한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국제정치는 비정하다. 어느 학자(Tanish M. Fazal)의 조사에 따르면 1816년부터 1992년까지 무려 50개의 “국가 사망(state death)” 사례가 있었다. 그중 35개 국가는 폭력이 수반된 과정에서 외교권을 잃었다. 우리 역시 20세기 초 국망을 맞이했지만, 해방과 분단의 놀랍고 쓰라린 경험 속에서 국가는 생존과 번영을 위해 자구(self-help)해야 한다는 원리를 깨달았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는 어떠한가? 올해 초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미국은 유례없이 강경한 대북제재를 주도하면서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중국은 비록 대북제재에 동참하였지만, 북미 평화협정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일본과 러시아는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지만 미국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취한다. 이러한 국제 사회의 움직임에 대항해 북한은 무력시위와 비난 성명으로 맞서면서 힘겨루기를 이어간다. 과연 북한발 갈등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김정은 정권은 경제와 외교 고립 속에서 핵과 경제의 병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인가? 미국은 대통령 선거 이후 오바마 행정부의 미결 과제인 북한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중국은 북한을 언제까지 자국에게 필요한 완충국으로 바라보고 지원을 지속할 것인가?

 

향후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사이의 외교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 문제가 심각해지고 장기화할수록 두 강대국은 갈등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합의(deal)를 시도할 필요성이 커진다. 냉전이 끝났지만, 미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 속에서 한미 및 미일 동맹을 강화하자 중국은 자국 주도의 지역 질서의 건축을 시도하면서 러시아와 파키스탄 등 주변국과 조심스러운 연대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핵무기가 제공한 “공포의 균형”과 경제협력이 형성한 “상호의존” 속에서 미중 양국은 충돌 대신 합의를 지향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 최근 미국의 한 학자는 미국과 중국이 주한미군 철수와 북한지원 중단을 서로 주고받는 구체적 협상안을 공개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Andrew Kydd, “Pulling the Plug: Can There Be a Deal with China on Korean Unification?” The Washington Quarterly 38.2).

 

하지만 미중이 합의하는 한반도가 우리가 희망하는 미래인가? 강대국 정치 속에서 “한국 배제(Korea passing)”가 현실화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19세기 한반도의 비극이 21세기에 재방송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한국은 선거 열풍으로 뜨겁다. 공천을 둘러싼 잡음과 정치인 이합집산 속에서 미래의 비전과 전략에 관한 이야기는 들리지 않는다. 금배지를 향한 아우성뿐인 듯하다. 하지만 ‘안’이 엉망일 때 ‘밖’의 문제를 풀 수는 없다는 것을 100년 전 역사에서 배우지 않았는가. 꼼꼼히 살펴보고 투표하러 가야겠다.

정성철_증명사진.jpg 

정성철(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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