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지키는 장송(長松)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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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지키는 장송(長松)처럼
  • 성열각 우리대학 총동문회장(법학 69)
  • 승인 2016.03.0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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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지키는 장송(長松)처럼

고향 지키는 장송(長松)처럼


어언 40여 년 만에 전해들은 안부였다.


학창시절 연모(戀慕)하던 이성 친구로부터 보내온 기별 인성 싶기도 했다. 참 오래간만에 접한 소식인지라 문득 내 나이를 생각하는 순간이기도 했으니까.


‘그’와의 만남은 모교에 입학하고서도 퍽 시간이 지나서였다. ‘글 잘 쓰고 학업성적 우수’한 친구들이 만든다는 것쯤은 ‘수습기자 모집요강’을 통해 알고는 있었다.


때가 되면 교정 입구쯤에 쌓여있던 학보를 한 부씩 챙겨 읽었던 시절이 지금은 빛바랜 추억으로 접혀져 있다. 모교 학보와 나의 인연은 그런 정도였다. 그랬던 그의 나이(紙齡)가 1천 호가 되었다니 놀라움과 함께 고맙다는 느낌이 뒤섞였다. 문득 고향 뒷산에 우뚝 솟아 마을을 지켜보고 있는 아름드리 장송(長松)의 늠름한 모습이 떠올랐다.


근자에 이르러 모교신문이 가깝게 여겨진 인연은 총동문회장에 취임하고서부터였다. 그 전에는 모교 소식이야 동문회를 통해 얼추 알 수도 있었지만, 사회생활에 파묻혀 보내는 터라 관심 밖의 일이라 여겼던 것이다.


그런 던 차에 동문회장을 맡고 보니 자연스레 모교 소식이 일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모교 신문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래서였다. 후배들이 만든 신문이 정겹게 다가왔다.


거기 실린 소식을 통해 세대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후배들이 어떻게 호흡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의 축적이 되기도 했다. 특히 그들이 보는 기성세대에 대한 시각과 문제에 대한 예리한 비판 속에 이 시대의 자화상을 보는 것 같아 신선한 충격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후배들과 어울리는 상상도 하게 되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학보만큼 학교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그릇도 없을 터다. 지금이야 사이버공간에서 온갖 뉴스가 생산되는 시대이긴 하지만 그때 그 시절, 학보는 우리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비춰주던 투명한 거울이 아니던가. 학우들의 생각과 요구가 무엇인지를 일러주고 제시하는 기획기사를 통해 언론으로서의 기능이 엿보이기도 했다. 아울러 학교를 운영하는 당국자가 모교발전을 위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제시해주는 대변지로서의 몫도 마땅해 보였던 것이다.


명대신문이 그것만으로도 존재이유가 있다. 이제 올곧은 생명력으로 또 다른 1천호를 향해 힘차게 나아갈 일이다. 다시 한번 지령 1천 호를 축하하며 모교의 역사를 후배들에게 전하기 위한 의무를 다하길 기원한다.

성열각 총동문회장.jpg 

 

성열각 우리대학 총동문회장(법학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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