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백마문화상 소설부문 당선작 - 비둘기 기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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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백마문화상 소설부문 당선작 - 비둘기 기자들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15) 김진영
  • 승인 2015.12.07 0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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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백마문화상 소설부문 당선작

이 편지는 제가 몸담고 있는 직장 데일리 트루스의 실태를 고발하기 위해 보내는 편지입니다. 편지를 쓰고 있는 와중에도 수십 마리의 비둘기들이 집 앞 마당을 빙 둘러싸고 앉아 제가 무얼 하는지 감시하고 있지요. 커튼이란 커튼은 다 쳐서 놈들의 감시를 피하기는 했지만, 언제 날아 들어와서 편지를 쓰는 저를 발견할지 모릅니다. 부디 내용을 끝까지 읽어주시고 신속히 데일리 트루스의 내부 실태를 조사해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데일리 트루스라는 거대한 언론사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비록 비정규직이지만, 열심히 일해서 정규직까지도 노려볼 생각이었죠. 인턴이 하는 일은 딱 한 가지, 인터넷 기사를 쓰는 일입니다. 현장에 나가서 기삿거리를 취재할 필요가 없어요.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일백백 기사만 쓰면 그만인 거죠. 취재는 바로 ‘비둘기’의 몫입니다. 서울 도심가에 흔히 돌아다니는 비둘기 말입니다. 평화를 상징한다죠. 실제로 서울에 서식하는 대부분의 비둘기들은 우리 회사 소속입니다. 그들은 새우과자 부스러기를 받고 우리 회사에서 일한답니다! 흔히들 비둘기가 무식한 새라고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비둘기들을 잡아온 뒤 전문 사육사에게 1년간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을 거친 녀석들은 현장 특파원이 됩니다. 그런 다음 비둘기들의 눈에 촬영이 가능한 첨단 렌즈를 씌우죠. 기자로 거듭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비둘기는 서울 전역으로 날아가 취재할만한 장면을 모조리 포착합니다. 가로등 위에서, 보도블록에서, 고층빌딩 창문에서, 자동차 위에서, 녀석들은 언제 어디서나 CCTV처럼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돈 가방이 마약과 스리슬쩍 맞바꿔지는 거래 현장이나 국회의원의 은밀한 로비 현장 정도는 아주 쉽게 포착할 수 있죠. 조그만 발로 뽈뽈뽈 걸어 다니는 비둘기들은 기자라고 하기엔 꽤나 귀여운 모습이기 때문에 아무도 비둘기가 자기를 쫓아다닌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테니 말입니다. 게다가 비둘기의 빛깔도 회색 빌딩으로 가득한 서울 도심과 비슷해서 눈에 잘 띄지도 않습니다. 이쯤 하면 비둘기들이 왜 우리 회사에 필요한지 알 수 있으실 겁니다.

물론 비둘기를 고용해서 생긴 번거로움도 있습니다. 신문사에 똥을 퍼붓는 것이 녀석들을 기르는 데에 있어서 가장 불편한 부분이죠. 비둘기들은 취재를 마친 뒤 빌딩 옥상에서 기자를 기다립니다. 기자들은 옥상으로 올라와서 취재 사진이 담긴 렌즈를 비둘기의 눈에서 뺀 뒤 새것으로 갈아 끼워줍니다. 그런데 얌전히 옥상에 있으면 될 것을 녀석들은 영역 표시라도 하듯 꼭 빌딩 주변에 똥을 싸질러놓고 가지 뭡니까. 언제부턴가 방송국에 새똥이 많다는 사실을 안 누군가가 의심을 품을 수도 있기 때문에 비둘기들의 배변은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지만, 사람처럼 똥구멍을 자유자재로 여닫지 못하는 비둘기들에게 똥을 가려서 싸라는 명령은 무리가 있긴 합니다. 그래서 비둘기 프로젝트와 관련된 모든 관계자들은 신문사에서 일하는 모든 청소부들에게 높은 보수를 주고 매시간 마다 신문사 주변에 있는 공영주차장이나 공원을 청소하도록 시킨답니다.

그리고 비둘기들은 장난이 심해서 사람들의 사사로운 생활까지 모조리 간섭하려 든답니다. 녀석들은 사람들의 은밀한 생활을 훔쳐보고 싶어 하는 관음증이 있죠. 유출되면 감당하지 못할 사진들을 찍어오는 바람에 제가 몇 번이고 비둘기에게 주의를 주었지만, 새대가리들이라 그런지 도무지 알아듣지를 못 합니다. 모르는 건지 간사한 건지 알 수가 없죠.

 

뭐, 이런 점만 빼면 비둘기들은 상당히 쓸 만한 녀석들입니다. 특히 성실성만큼은 다른 기자들이 비둘기를 따라오지 못 합니다. 다른 언론사 기자들이 한 기삿거리를 물고 늘어뜨리다 지쳐버려 철수할 때면, 비둘기들은 흔히 짐승이 먹잇감을 발견하면 끝까지 추격해서 잡아먹을 때와 같은 끈질긴 집념을 보여줍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근무 공간인 2412호실은 두 팔을 간신히 뻗을 수 있는 좁은 공간입니다. 방 안에 있는 것이라곤 사무용 데스크와 간이의자와 컴퓨터 한 대. 옥상과 연결된 개인용 엘리베이터뿐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이 산하라는 친구에 관한 겁니다. 오후 여섯 시까지가 근무시간인 저는 정시가 되면 칼같이 퇴근합니다. 어느 날은 하행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비상구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산하와 마주쳤습니다. 산하는 저와 근무를 교대하는 야간제 인턴입니다. 또 유일하게 회사에서 안면을 튼 친구이기도 하고요. 그 친구의 얼굴이 그날따라 유난히 창백하더군요. 누가 그에게 차가운 우유라도 부어놓은 듯 핏기가 없는 백지장이었습니다. 또 온몸을 부르르 떨기까지 했죠. 숨을 헐떡거리는 걸 보니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듯 급박해 보였지만, 24층까지 계단을 타고 오르는 것에 힘이 들었을 것이라고 어림짐작했죠. 산하가 희미하게 혼잣말을 하더군요.

“잠을 설쳤어…. 비둘기들, 그놈들 때문에…”

산하는 몸을 축 늘어뜨리고 힘겹게 걸어가더니 이내 2412호실로 들어갔습니다. 산하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지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저는 그동안 갖은 업무로 피곤했기 때문에 좌우지간 주변 일에 관심을 내비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산하는 제가 처음 데일리 트루스에 입사했던 시절 많은 도움을 주었던 동갑내기 친구입니다. 비둘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았던 산하는 제게 비둘기 다루는 법이나 기사를 맛깔나게 쓰는 방법을 가르쳐주곤 했죠. 빵을 굽듯 갓 구워낸 따끈한 기사를 올려야 트래픽이 올라간다는 사실. 그런 기사들의 수명은 오래 가봐야 네다섯 시간(하루살이보다 못한 짧은 명줄이죠). 그런 기사를 쓰기 위해 기자들의 손가락은 부단하게 움직여야만 한다는 사실. 산하는 남의 기사 베끼기, 검색하면 잘 나오는 키워드 기사, 선정적 기사, 이 세 가지 종목을 얼마나 능숙하게 써내느냐가 인터넷 기자로서 가져야 할 사명이라고 저에게 일러주었죠. 산하는 그 누구보다 자신이 맡은 일에 능숙한 친구였습니다. 그런 산하가 며칠 전부터 생기를 잃은 모습으로 회사에 출근하더군요. 퀭한 눈에 핼쑥한 얼굴은, 초주검이 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예전처럼 사람들을 몰래 취재하며 쾌락을 느끼지도 않았고, 거짓으로 포장된 기사를 쓰는 것에 재미를 붙이지도 않았습니다. 산하가 걱정되기는 했지만 제 앞가림을 하기에도 급급했기 때문에 오직 제 일에만 집중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비둘기를 효율적으로 다룰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기사를 번지르르하게 쓸지를 고민하는 게 우선이었죠.

새벽 일찍 서울 도심가로 날려 보낸 비둘기들은 이변이 없는 이상 보낸 지 삼십 분 만에 신문사로 돌아옵니다. 저는 때맞춰 옥상으로 올라가 비둘기들의 날갯죽지를 잡은 다음 녀석들의 눈에 덮인 렌즈를 빼내죠. 렌즈를 갖다가 저희 회사에서 만든 디지털 리더기에 올려다 놓으면 취재 파일이 컴퓨터에 뜹니다. 중소기업 직원의 횡령 한 건, 마약 투여 혐의를 받고 있는 연예인의 출소 현장, 광장시장 화재, 마지막으로 지나가는 행인이 동전 몇 푼을 흘렸다는 보고…. 행인이 동전 흘렸다는 보고는 아주 쓸데없는 소식이지만 비둘기들은 이따금 기삿거리도 되지 않는 사소한 소식을 큼지막한 봉투에 넣어서 보고할 때도 있죠. 그럴 때면 비둘기들의 실수이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취재자료를 쓰레기통에 구겨 넣곤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나머지 취재 보고서를 한 장 한 장 살펴보곤 하죠. 조회수를 잘 뽑아낼만한 기삿거리가 있는지 확인해야 하거든요. 예를 들어…, ‘연예인의 노출’같이 사람들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기사들 말입니다. 유명 아이돌 가수 S가 옷 사이로 맨살이 드러나는 시스루룩을 입고 출국하는 모습, 이런 건 기사 중에서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는 기사입니다. 조회수가 웬만한 정치 기사보다 훨씬 많죠. 이런 선정적 기사를 쓰는 팁이 하나 있다면, 여자의 특정 부위를 강조해 제목을 쓰는 것입니다. 포털사이트를 대충 눈으로 훑는 사람들이 1초 안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끔, 성적인 것과 관련된 단어를 마구 갖다 붙이는 것이죠.

그 다음으로 인기가 많은 기사는 사람들이 무차별적으로 비난할 수 있는 장면, 예를 들어 유치원에 방문한 교육감 후보 최 씨가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는 장면을 교묘하게 찍는 거죠. 아이를 들어 올릴 때 순간적으로 힘이 들어 표정을 찡그리는 후보의 얼굴을 포착하는 겁니다. 순식간에 교육감 후보를 ‘아이를 무척이나 싫어하지만, 좋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서 부단히 연기하는 정치인’으로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사실 여부를 따지지 않고 국회의원 최 씨를 마녀사냥 하듯 맹렬한 비판을 담은 기사를 쓰면 당연히 조회수가 하늘을 찌를 수밖에요. 마음껏 물고 뜯을 대상을 찾지 못해서 안달난 개들 마냥 기사를 둘러싸고 열을 올리는 사람들 덕분에 기사는 한동안 뜨거운 이슈거리가 되곤 합니다. 데일리 트루스가 워낙에 큰 언론사여서 그런지, 다른 소형 언론사들은 우리가 작성한 기사를 거의 그대로 따라 쓰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다수가 같은 목소리를 내면 그게 곧 진실이 되는 세상이죠. 아무리 터무니없는 기사를 내도 수많은 언론사가 같은 기사를 써내면 사람들은 진짜인 줄 안다니까요. 대중을 속이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편지를 쓰고 있는 지금도 비둘기들이 집을 둘러싸고 시끄럽게 울어대는군요. 이렇게 많은 비둘기들을 보내 저를 감시하려는 장본인은 다름 아닌 최 지부장입니다. 최 지부장은 데일리 트루스 서울지부의 우두머리이자 제 삼촌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유명 대학을 졸업했는데도 마땅히 들어갈 직장이 없어 방황하던 제게 삼촌은 한 가닥의 빛이었죠! 대학을 졸업하기 전, 추석을 맞아 큰아버지 댁에 삼촌을 비롯한 친척들이 다 함께 모인 적이 있었는데, 제 딱한 사정을 들은 삼촌이 자기 직장에 빈자리를 하나 마련해둘 테니 조만간 찾아오라더군요. 그때 저로서는 삼촌의 말씀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당장이라도 삼촌을 부둥켜안고 싶을 정도였죠.

한 번은 사장실에 가기 위해 상행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문을 닫으려는데 산하가 버튼을 누르고 부리나케 뛰어 들어왔습니다. 산하가 버튼을 누르지 않는 걸 보니 저와 같은 곳에 가는 것 같았죠. 꼭대기 층에 엘리베이터가 다다르자 산하는 또다시 엘리베이터를 빠르게 빠져나갔고, 저도 덩달아 산하를 따라 걸었습니다. 산하는 저보다 먼저 사장실에 들어갔고, 문을 열려고 했지만 이미 잠긴 상태였지 뭐에요. 안에서는 최 지부장과 산하의 말다툼이 들려왔습니다. 저는 귀를 문에 바짝 대고 듣기 시작했죠.

“지부장님, 언제까지 저를 감시할 생각입니까? 비둘기들이 하루도 쉬지 않고 집에 찾아오는 것도 다 지부장님 지시죠?”

“그러니까 자네가 기사만 제대로 썼어봐, 내가 굳이 이렇게까지 했을까? 조회수 올리는 기계밖에 안 되는 주제에, 대체 내게 와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 그것이 자네가 늘 강조하던 기자의 사명 아닌가? 더 많이, 더 빨리, 더 광범위하게…”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행동하신다면 차라리 나가서 회사 기밀을 다 폭로할 겁니다! 제가 못할 줄 아세요?”

문짝에 바싹 기대서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저는 문을 열고 나온 산하와 마주쳤습니다. 산하는 제 팔을 붙잡고 저를 어딘가로 끌고 가려고 했습니다. 저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단숨에 팔을 뿌리쳤죠. 어딜 가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산하는 대답 대신 저를 뚫어져라 바라볼 뿐이었죠, 그리고는 저를 지나쳐 어딘가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회사에 불이 났지 뭐에요. 산하가 저지른 짓이었죠.

화가 끝까지 오른 최 지부장은 근무 중이던 모든 직원에게 불을 진화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조용히 화재를 진압해야 했죠. 불이 난 곳이 지하 25층 깊숙한 공간에 있는 비둘기 사육장이었기 때문에 119를 부를 수도 없는 일이었거든요. 비둘기는 회사의 기밀사항이니까요. 저와 동료들은 불을 끄기 위해 소화기를 들고 부리나케 사육장으로 내려갔습니다. 주황색 불빛을 내는 알전구가 문득문득 매달려 있는 어두컴컴한 공간에는 비둘기들이 갇혀 있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철장이 층을 이뤄 겹겹이 쌓여 있었죠. 다행히 큰불은 아니었지만 철장에 갇혀 있던 비둘기 몇 마리가 불에 타서 구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최 지부장은 산하를 끝까지 쫓아가서 끝장을 내겠다고 노발대발했죠. 손에 잡히는 물건은 죄다 던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답니다.

바로 그날 산하와 함께 회사에 사표를 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산하는 회사를 그만두고 난 뒤 경쟁 언론사 뉴스베이의 인터뷰를 자처해 데일리 트루스 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고백했습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 중 일부입니다.

 

-비둘기라고 하셨습니까?

-네, 비둘기요.

-비둘기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한다고요?

-정말입니다. 아주 기이한 방법으로 사람들의 사생활을 낱낱이 파고드는 거죠. 당신의 하루가 비둘기의 눈 속에 담겨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당신이 어디서 일하고, 점심은 무얼 먹는지, 애인은 누굴 만나는지, 부모보다 당신을 더 잘 알고 있는 놈이 바로 비둘기입니다. 데일리 트루스는 정부의 발밑에서 꼬리 흔드는 감시기관이지 언론 기관이 아닙니다.

-꽤 오랫동안 근무하셨던 걸로 아는데, 어떻게 회사의 비리를 고발할 생각을 하셨나요?

-비둘기들이 제 가족과 이웃과 친구들을 찍어왔더군요. 기분이 언짢았지만 우연이겠거니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비둘기들은 도를 넘어서 제가 살고 있는 집에 날아 들어와 온갖 사진을 찍고 갔더군요. 녀석은 그걸 자랑스럽게 제게 보고했습니다. 최 지부장에게 가서 비둘기들의 사적인 영역 취재를 자제시켜달라고 부탁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는 말 뿐이었습니다.

 

산하의 인터뷰는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데일리 트루스의 진상 규명을 원하는 단체까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대형 언론사의 음모와 횡포라며 경찰의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담은 서명운동이 온라인으로 퍼졌지요. 데일리 트루스와 대적하던 많은 언론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기사를 대문짝만하게 실었습니다. 회사가 위기를 맞았습니다.

얼마 후 최 지부장이 산하와 관련된 모든 직원들에게 간단한 심문을 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산하와 가깝게 지내던 동료들은 하루에 한 번씩 조사를 받기 위해 최 지부장에게 다녀가야 했고, 저를 포함해서 비둘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사람들은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프로젝트의 보안을 더욱 철저히 해야만 했지요.

많은 동료 직원들이 사장실에 다녀갔습니다. 저는 심문을 무사히 통과한 덕분에 마음을 한시름 놓을 수 있었습니다. 평소와 다름없이 2412호실에 박혀서 기사를 써 내려가는데, 호출음이 울렸습니다. 최 지부장의 부름이었습니다. 잘못이라도 한 걸까. 순간 저는 과거의 기억을 빠르게 되짚어나갔죠.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의심이 갈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저는 침을 꿀꺽 삼키고 2412호실을 빠져나와 엘리베이터에 올랐습니다. 사장실로 발걸음을 옮기는 동안 등에 땀이 줄줄 흐르더군요. 와이셔츠가 흥건하게 젖을 정도로 쉴 새 없이 흘렀지 뭡니까! 산하와 무슨 사이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하지? 나를 산하가 심어놓은 반동분자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그건 아닐 거야. 여긴 공산주의 독재국가가 아니다. 삼촌이 나를 의심할 만한 여지가 있다면 오해를 풀면 된다. 침착하자, 나는 이제 산하와 아무 사이도 아니다. 그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저는 끊임없이 마음을 진정시켰죠.

문을 세 번 두드린 뒤 사장실에 들어갔습니다. 삼촌은 정장을 입고 어딘가로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너 잘 왔다. 산하 그 녀석 조사를 부탁할까 해서 말이야. 그 자식이 태어나서 지금까지 남겼던 모든 기록을 샅샅이 조사해봐. 어디서 살았는지, 학교는 어디 다녔는지, 병원 기록, 대학 기록, 군대 입영 기록, 가족들은 무슨 일을 하는지, 전과 기록은 있는지, 꼬투리를 잡을 수 있을만한 건 모조리 조사해봐. 알겠어? 싹 다!”

저는 강한 긍정의 자세를 보여야 했으므로 그 자리에서 북한 군인이라도 된 듯 두 발을 딱 붙이고 통나무처럼 뻣뻣한 자세로 서서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그 녀석의 머리카락 한 가닥이라도 놓치지 않겠습니다!”

“좋아, 좋아, 그런 자세 마음에 들어. 이번 일 잘 해결해서 나 좀 구해줘. 오늘도 경찰에 조사받으러 나가게 생겼다고”

경리가 밖에서 연신 문을 두드리며 삼촌이 얼른 나오기를 재촉했습니다. 삼촌은 재킷 단추를 막 잠근 상태였습니다. 나가기 직전 삼촌은 전신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나서는, 탁상에 놓인 인공 눈물 앰플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나서 미끄러지듯 사장실을 빠져나갔죠. 저는 너무나 긴장했던 나머지 식은땀조차도 흘리지 않다가, 긴장이 풀리자 땀방울이 두 뺨을 타고 대리석 바닥으로 수도 없이 떨어져 내렸습니다. 속눈썹에 매달린 땀방울조차 훔칠 겨를도 없이 저는 사장실 창가에 있는 소파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죠. 산하만 무너뜨리면, 삼촌의 완전한 신임을 받는 것은 물론 승진의 기회까지 잡을 수 있기에 저는 산하를 버릴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상부의 명령을 거부함으로써 얻는 불이익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비둘기가 들어 있는 스테인리스 철장을 들고 빌딩 옥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자물쇠를 열고 뚜껑을 열자 몸이 뒤엉켜 있던 비둘기들이 날개를 힘차게 푸득거리더니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지요.

2412호실로 돌아온 저는 휴대폰에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온 것을 확인했습니다. 모두 산하의 연락이었지요.

‘같이 싸우자’

저는 문자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삭제 버튼을 눌렀습니다. 혹시라도 동료나 상사에게 들킨다면 단번에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이참에 산하와 했던 모든 통화나 문자 기록을 지우고 있었는데, 문자 한 통이 새로 날아오더군요.

‘혼자선 아무런 힘이 없어’

저는 남은 문자를 차마 지우지 못하고 휴대폰 홀드를 잠갔습니다. 일단 마음을 다잡아야 했죠. 내가 옳은 일을 하고 있는 걸까…. 하기야, 그건 의심할 여지도 없었죠. 산하가 괜히 미쳐 날뛰는 게 확실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사로운 불만이 있었겠지. 월급을 제대로 못 받았나? 상사가 못살게 굴었을까? 아니면 동료 기자와의 불미스러운 스캔들이라도 난 걸까? 뻔하지 뭐. 셋 중 하나일 거야. 저는 되도록 단순하게 생각하려고 노력했죠. 이번 기회에 산하를 혼내줘야겠다고, 그러면 산하도 정신을 차리고 많이 반성할 거라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삼촌한테 잘 말해서 산하를 다시 복직시키는 방향도 생각해 둬야겠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던 겁니다!

 

「데일리 트루스의 내부고발자로 화제가 되고 있는 인턴 기자 K(가명ㆍ27ㆍ남), 과거 정신과 치료기록 사실 확인…. 네티즌들 ‘술렁’」

「유명대학 신문방송학과 출신 K, 허위 학력으로 밝혀져…, 데일리 트루스에 어떻게 들어갔나?」

「K 母, “아들 5년 전부터 허언증 증세…. 꾸준히 치료 중”」

「데일리 트루스 회장, “인턴 기자 K 과거 철저히 조사” 지시…. K의 행방은?」

 

저는 미친 듯이 기사를 써내려갔습니다. 순식간에 산하는 검색어순위 1위로 올랐고, 데일리 트루스에게 집중되었던 논란은 산하에게로 돌아가는 듯싶었죠. 때마침 휴대폰이 짧게 두 번 진동하더군요.

‘기사 그만 쓰고 나한테 와. 시간 허비하지 마’

산하의 문자였습니다. 처치 곤란한 문자를 자꾸만 보내는 산하 때문에 골치가 아팠지만, 옛정을 생각하니 산하를 무시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저는 곧 만나자는 답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카페에서 산하를 만났습니다. 저는 산하에게 되도록 회사에 돌아올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산하는 되레 화를 냈고, 점점 말다툼으로 번졌습니다. 저는 화가 난 나머지 카페를 떠났습니다. 도무지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거죠. 아뇨, 사실은 겁이 났던 겁니다. 혹시라도 가담했다간 저에게까지 어떤 위협이 가해질까 봐, 겁이 나서 카페를 떠난 겁니다. 제 자신이 얼마나 초라해 보이던지, 산하의 얼굴을 올려다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산하를 만나는 내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해 애를 먹었죠. 저는 다시금 회사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2412호실의 문을 열자 최 지부장이 제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있었습니다. 어딜 갔다가 오는 거냐고 묻더군요. 제 시선이 휴대폰으로 향하자 최 지부장이 휴대폰을 책상에 슬쩍 내려놓고 태연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웬일로 여길 다…”

“일 잘하고 있는지 한 명 한 명 둘러보고 있었지”

최 지부장은 손으로 제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는 2412호실을 나가더군요. 저는 얼른 책상 위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 들어 최 지부장이 뭘 보았는지 확인했습니다. 산하와의 문자를 미처 지우지 못했는데, 설마 대화 내용을 확인한 것은 아닌지 두려웠죠. 만약 그가 확인했다면 당장 사장실로 달려가서 변명을 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휴대폰에는 아무 기록도 남아 있지 않더군요. 최 지부장이 산하와 저의 문자 기록을 빼가거나 지워버린 것입니다….

그때는 오후 여섯 시. 비둘기들이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이므로 옥상에 올라가 놈들의 렌즈를 교체해주었습니다. 먼저 잡은 녀석은 렌즈를 적어도 일주일은 착용했던 모양이더군요. 2412호실로 내려와 렌즈를 리더기에 올려놓은 뒤, 첫 번째 사진부터 훑어보았습니다. 한 젊은 남자가 친구로 보이는 다른 남자와 카페테라스에 앉아 얘기를 주고받는 장면이더군요. 저는 왠지 사진 속 남자가 제 모습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좁은 어깨, 큰 키에 마른 몸, 그리고 유달리 튀어나온 뒤통수, 어딜 봐도 제 모습이었습니다. 옆에 있는 남자는 내부고발자로 낙인찍힌 산하고요! 며칠 전, 산하가 제게 협조를 구하러 왔던 그날의 만남이 비둘기의 눈에 고스란히 찍힌 것입니다. 산하와 제가 만났다는 사실이 비둘기에게 포착된 것도 모자라, 이곳으로 전송되었다는 것은 분명 예사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사생활을 사찰했던 저는, 정작 제 모습이 찍힌 사진을 받아들고 나니 회사가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이 만약 외부로 유출되기라도 한다면, 저는 분명 최 지부장에게 불려가 심문을 받을 것이 뻔했습니다. 내부고발자로 낙인찍히는 것이죠! 저는 이래저래 생각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찢어버렸죠. 갈기갈기 찢어 새우과자 봉지에 넣고 휴지통에 버렸지만, 모든 일이 순식간에 마무리 되었지만…. 빠르게 뛰는 심장만은 어떻게 묵인할 수가 없더군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시선을 컴퓨터로 옮겼습니다. 새우과자 부스러기를 손가락으로 찍어 먹으며 어제 날려보낸 비둘기들의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죠. 때맞춰 봉투 한 개가 굴뚝을 타고 내 책상으로 떨어지더군요. 회사 지하실에서 산하와 제가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찍힌 사진 여러 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다분히 일이라도 꾸미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모습이었죠. 비슷한 장면이 찍힌 사진들이 굴뚝을 타고 수도 없이 떨어지더군요. 이미 다른 기자들도 사진을 받았을 것이 뻔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데일리 트루스 1면에는 이런 기사가 올라왔죠.

「데일리 트루스 인턴 기자 A 모씨, K와 접촉 사실 드러나…. K가 심어놓은 또 다른 내부고발자로 추정」

동료 기자들이 합심해서 저에 대한 기사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슬슬 두려워지기 시작했죠.

누가 붙잡기라도 할 것 같아 불안했던 저는 뛰어나오다시피 회사를 빠져나온 뒤 집으로 향했습니다. 문이란 문은 모두 걸어 잠그고 방에 들어가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는데, 창밖으로 비둘기 한 마리가 어딘가에서 날아오더니 마당 울타리에 가만히 앉더군요. 집으로 날아오는 비둘기는 점차 늘어나더니 나중에는 수백 마리가 마당을 둘러싼 채 저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세 시간 가량을 집 안에서 버티고 있었습니다. 비둘기들은 이제 창문에 대고 부리로 사정없이 쪼아대고 있습니다. 참다못한 저는 결국 기진맥진하여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옵니다. 정말이지, 저는 이제 비둘기라면 진저리가 날 것 같습니다. 아! 이제 막 누군가가 집에 온 모양입니다. 초인종이 쉬지 않고 울리는군요. 목소리를 들어보니 동료 기자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 밖에는 동료 기자들뿐만 아니라 용역까지 도착하여 대기 중인 것 같습니다. 이제 저는 끝입니다. 어디로 붙잡혀 들어갈지 모르겠습니다. 차라리 죄를 저질러서 교도소에 가면 좋으련만…. 청장님, 얼른 저를 이곳에서 꺼내주십시오. 비둘기 한 마리를 잡아두었으니 녀석에게 편지를 물려주어 경찰청으로 날려 보냅니다. 답신은 받지 못할 것 같습니다.

 

경찰청장 앞으로 장문의 편지 한 장이 도착했다. 대형 언론사인 데일리 트루스 소속 기자로부터 발송된 편지였다. 그러나 경찰청장은 한창 공금횡령에 연루되어 골머리를 앓고 있었기 때문에 자잘한 편지에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청장은 편지를 다른 우편물과 함께 휴지통에 버렸다. 그 모습을 청장실 창밖 너머 비둘기가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재빠르게 날아갔다.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15)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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