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들이 사는 세상 - 차카시나의 매트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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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주성 ‘98%를 위한 스포츠 칼럼 원모어스푼’ 저자
  • 승인 2015.11.30 0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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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사는 세상 - 차카시나의 매트 키스

 

그들이 사는 세상 – 차카시나의 매트 키스

 

 

사람은 자신의 경험으로 세상을 본다. 걸어온 길이 다른 만큼 세상도 저마다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스포츠 선수들이 사는 세상은 어떨까? 팬들이라면 한 번쯤 궁금해 할만하다. 스포츠 경기 중계를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빙판 위에 서 있는 김연아가 되거나 그라운드를 누비는 메시가 되는 상상을 해보았을 법하다.

하지만 그들이 스포츠 선수로서 느꼈을 생각과 감정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평범한 사람이 평생을 스포츠와 함께한 이들의 마음을 짐작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저 우리와는 많이 다를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그런데 이제는 기억에서 희미해진 2012 런던 올림픽에서 그들이 사는 세상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짧은 장면이었지만 1시간짜리 토크쇼보다 더욱 명료하게 스포츠 선수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장면을 연출한 사람은 벨라루스의 리듬체조 선수 차카시나다.

 

차카시나의 키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리듬체조는 모처럼의 관심을 받았다. 한국 선수로는 처음 결선 무대에 진출한 손연재 선수 때문이다. 그런데 손연재의 활약을 보기 위해 TV를 시청한 한국 사람들을 감탄하게 한 선수가 있었다. 러시아의 카나예바였다. 카나예바는 리듬체조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알아볼 정도의 월등한 기량을 선보였다.

카나예바의 실력과 손연재의 인기에 가려, 벨라루스의 차카시나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한국에서 차카시나는 손연재 선수와 크게 점수 차이가 나지 않는 ‘그저 그런’ 선수일 뿐이었다. 하지만 차카시나에게 2012 런던 올림픽은 특별한 무대였다.

9살에 리듬 체조를 시작한 뒤로 벨라루스의 차카시나는 착실하게 경력을 쌓아나갔다. 여러 번에 걸쳐 세계 선수권과 유럽 챔피언십 무대에서 메달을 따냈다. 비록 종합 금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2011년에 열린 유럽 챔피언십에서는 개별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하지만 올림픽 무대에는 아직 실적이 없다는 점이 흠이었다.

사실 차카시나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도 출전했으나 예선 성적 15위에 그쳐, 10명의 선수가 진출하는 결선 무대는 밟지 못하고 대회를 마쳤었다. 차카시나에게 런던 올림픽은 4년 만에 찾아온 기회였다. 여기서 차카시나는 예선 5위를 기록하며 결선에 진출했다. 결선 무대에선 아제르바이젠의 가라예바 선수와 경합을 벌인 끝에 동메달을 따냈다. 종합점수로는 불과 0.125점 차이. 그동안의 경력에서 아쉬웠던 점이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동메달을 결정짓는 마지막 종목인 리본에서 차카시나는 그야말로 혼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듯이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음악과 연기가 동시에 끝났을 때, 차카시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몸을 숙여 방금까지 연기했던 매트 위에 키스했다. 리본체조 선수로서는 많은 25세라는 나이, 올림픽에서의 마지막 무대라는 것을 암시하는 세레모니였다.

 

매트에서 자란 사람이 보는 세상

차카시나에게 매트는 어떤 존재일까? 다른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길고 힘든 매트 위에서의 시간들이 차카시나에겐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땀과 눈물, 기쁨과 슬픔이 모두 묻힌 매트를 떠나면서 차카시나는 키스를 보냈다. 그녀의 리듬체조에 대한 애정이 절절하게 묻어나오는 키스였다.

그녀가 사는 세상에서, 세상의 땅바닥은 흙이 아니라 매트로 이루어져 있었을 것이다. 차카시나가 가장 빛나던 순간에 그녀가 딛고 있는 바닥은 항상 매트였다. 깊은 좌절을 맛볼 때도 발 밑엔 매트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한 매트 위에 키스할 때, 그녀가 살고 있는 세상이 잠시나마 어떤지 느낄 수 있다. 비록 체조선수가 되어 매트 위에 서 본적은 없지만, 그 위에서 연기를 하며 가졌을 감정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고 물러나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치열한 승부나 화려한 승리와는 또 다른 차원의 아름다움이다. 차카시나의 매트 키스는 이를 넘어서 스포츠 선수의 삶까지도 보여주었다. 멋진 일이다. 이것이 우리가 스포츠를 보고 즐기는 수많은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의 저서, "98%를 위한 스포츠 칼럼, 원모어스푼"(아이웰콘텐츠)의 내용을 재구성하였습니다.

장주성의 운동화.jpg

 

장주성 dragonraja1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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