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역사교과서’는 없다
최근 사회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국정교과서’이다. 대통령 曰 “올바른 역사 교과서”. 우리 명지대에서도 반대 대자보를 붙이는 학생도 있고, 국정교과서 반대집회에까지 나가는 학생도 있다. 나 역시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학생들 중 하나로 이번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이번 이슈에 대해 잘 정리한 기사였다.
역사는 누가 기록하는 것일까? 소비에트의 국부, 블라디미르 레닌은 승자(勝者)가 역사를 기록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레닌의 말과는 달리 칭기즈 칸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패자(敗者)인 아랍인이 기록했다. 아니, ‘누가 기록하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나쁜 질문이다. 역사는 그 어떤 누구라도 기록할 수 있어야한다. 승자와 패자, 권력자와 민중, 부르주아와 프롤레탈리아. 누구나 역사를 기록할 수 있다. 심지어는 내가 쓰는 일기장조차 필요하다면 역사적 배경의 이해를 돕기위해 쓰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소녀가 쓴 ‘안네의 일기’처럼. 이렇게 모두가 기록한 역사는 후손들의 교차검증에 의해 평가되고 확정된다. 후손들의, 교차검증에 의해, 평가되고, 확정된다.
역사서는 아니지만 좋은 예시가 바로 ‘성경’이다. 그 중에서도 ‘복음서’. 교회에서 인정하는 복음서는 네 가지가 있다. 마태오복음서, 마르코복음서, 루카복음서, 요한복음서. 이 네 가지의 복음서는 전혀 다른 시점으로 예수를 서술한다. 예수를 가까이서 본 유대인들이 쓴 마태오복음서. 예수와 약간 떨어진 비유대인들이 쓴 루카복음서. 예수의 인간성과 삶을 중점으로 서술한 마르코복음서와 예수의 신성과 기적을 중점으로 서술한 요한복음서.
이렇게 네 가지의 복음서는 모두 전혀 다른 관점으로 예수를 바라본다. 그러나 이는 모두 정경에 속한다. 성경의 틀에 벗어나지 않고, 교차검증을 통해 하나의 예수를 그려낼 수 있으니까. 이 정경복음서 이외에도 복음서는 많다. 교차검증이 불가능하거나, 기존의 이해에서 동떨어진 예수를 그리는 복음서들. 이러한 복음서들은 교차검증을 통한 ‘후손의 평가’에 의해 위경으로 취급, 정경으로부터 도태된다.
국정교과서 문제도 난 이와 마찬가지라고 본다. 내가 평가할 수는 있지만 내가 내린 평가를 다른 이에게 주입시킬 수는 없다. 내가 쓴 ‘올바른 역사교과서’는 남들이 보기에 ‘올바르지 않은 역사교과서’일 수 있다. ‘올바른’은 객관적인 단어가 아니라 주관적인 단어니까. 그렇기에 나는 명대신문의 기사와 마찬가지로 국정 교과서를 반대한다.
손재범(디미 14)학우